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로운 콩새 Apr 01. 2021

북한에 있는 나의 '라이벌' 친구를 생각하며

북한에는 "재수" 제도가 없다.






누구나의 인생에 라이벌 한 명쯤은 기억되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기억되는 라이벌이 있다. 

라이벌이기는 하지만 경쟁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우던 기억보다 사실 지금은 안쓰럽고 아픈 기억이 훨씬 더 크다.


나는 북한에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초급단체 위원장을 했다. 북한은 한국과  달리 학급에서 반장이라는 직책 외에 초급단체 위원장이라는 직책이 있다. 학급 반장이 학급의 행정을 총괄한다면 초급단체 위원장은 행정을 포함한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일종의 학생단체의 당비서격이다. 

학급 반장도 초급단체 위원장의 지시를 받고 초급단체위원장은 학급내 거의 모든 상황을 주관하고 통제한다.   

초급단체 위원장 아래에 직속 부위원장이 두명 있는데 바로 조직부위원장(학급 반장에 해당)과 사상부위원장이다. 그리고 부원으로서 몇 명의 학습담당 위원, 위생담당 위원, 꼬마계획담당 위원 등이 있다.   

   

여기서 새삼스럽게 초급단체 위원장을 했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초급단체위원장을 할 당시 사상담당부위원장이었던 나의 유일한 라이벌- 한유정이라는 친구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참으로 부족한 점이 없었던 친구이다. 그 친구는 수학과 같은 자연과목(한국의 이과)을 잘했고 나는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설명하는 사회과목(한국의 문과)에 관심이 많았다.

     

그 친구와 나는 라이벌 중 진짜 라이벌이었다. 우리는 학급에서의 1, 2등은 물론이고 전교에서의 1,2등. 그리고 구역(한국의 한 개 ‘구’에 해당)에서의 1,2등을 다투는 사이었다. 두 명 다 공부도 잘했고 노래도 잘했다. 발표력도 뛰어나서 거의 모든 토론 때마다 두 사람이 아니면 아무러한 진행도 안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기억으로는 그 친구가 나보다 조금 앞선 것 같다. 항상 나 자신이 조금 밀리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물론 이것은 내 개인 생각이다.) 성적이 잘 나오는 친구였고, 나는 그야말로 피타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 성적이 잘 나오군 했었다.   게다가 그 친구는 수학 과목에서 선생님이 못 푸는 수학 문제도 가끔 풀어내서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선생님들까지 당황하게 만들군 했었다. 지정된 수학공식에만 대입하여 답을 이끌어 내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그야말로 수재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5년간 계속 내가 위원장을 하고 그 친구가 부위원장을 한 것을 보면 이미 어떤 운명적인 힘이 나의 손을 들어주길 작정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주변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는 내 성격이 차지하는 몫도 있었으리라.


       이 친구의 장래희망은 오로지 의사였고 나의 장래희망은 그냥 변호사 또는 교사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장래 희망은 내 것이 되었고 

       내가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장래희망은 또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었다.   


   




북한에도 한국의 수학능력 고사에 해당하는 정무원 국가시험이라는 제도가 있다. 

다음 해에 졸업을 앞둔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 전해 12월에 전국적으로 같은 시간에 시험을 치르게 된다.(지금은 정무원 국가시험제도는 사라졌다고 한다. 다만 대학에 직접 가서 입학시험을 치르는것은 여전한 상황이다.) 그 시험 성적에 따라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최우선으로 하여 리과대학(이과대학-수재들만 가는), 

김책공업종합대학, 의학대학(한국의 공식명칭은 의과대학) 순위로 수험표를 배정받게 된다. 


북한과 남한의 대학입시에서 다른 부분은 그렇게 받은 수험표를 가지고 해당 대학에 가서 정식 입학시험을 다 치르게 되며 거기에서 합격, 불합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는 '재수' 제도가 없다. 


한국은 수능에서 떨어지면 다음해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재수, 삼수 등의 기회가 있지만, 북한은 한번 시험쳐서 불합격하면 그것으로 모든상황이 종료된다. 즉 다시 기회는 없다.  


서론을 이렇게 장황히 설명하는 것은 단 한번의 기회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북한의 답답하고 불합리한 시스템에 대한 안타까움때문이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 인재가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스러져 인생이 짓밣힌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통해 사회제도나 시스템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완전히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나의 '라이벌'친구 한유정은 정무원 국가고시 성적이 나보다 더 높아서 누구나 가고 싶어 했던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공부를 좀 한다고 하는 학생들은 누구나 다 가고 싶은 대학이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 정식 대학입학시험을 다시 치르어야 하는 북한의 시스템속에서 그 친구는 정작 입학시험에서는 떨어졌고 단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결국 총명하고 영리한 친구는 함경북도 시골의 탄광 막장으로 배치를 받게 되었다.  

이후 결혼생활도 행복하지 않아 딸을 데리고 이혼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나에게는 그 친구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의학대학 시험 자격이 주어졌고 입학시험에 까지 합격하면서 결국 지금도 의료인으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그 친구와의 인연을 떠올릴때마다 사회제도나 시스템이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새삼스럽게 자주 생각하게 된다. 갇혀있는 제도의 협소한 틀에서 타인에 의하여 조종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래서 펼칠 수 있는 날개를 활짝 펼칠 수 없었던 나의 라이벌 친구의 인생이다.

처한 환경에 따라서,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겠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 사회제도나 시스템은 얼마나 중요한가. 

  

     



   

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 그 친구를 만나고 싶다. 예전에, 철 모르던 때의 날카로운 경쟁심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나를 만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상처나 괴로움으로 인지 될까 봐 솔직히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처럼 대한민국과 같은 시스템 속에서 한 번은 살아보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군 한다.

물론 대한민국이 완벽한 나라가 아니다. 

막혀있는 시스템때문에 나는 정착 초기 숨막히는 답답함 속에서 고통스럽게  견뎌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은 자신의 삶에 도전, 또는 재도전 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진다. 
      

더불어 남한의 젊은 친구들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복 받은 삶인지 깨닫고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에서 살아가는 안타까운 인생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지금의 선택이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아닐지라도 다시 '재수, 삼수'와 같이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상황인지 알고 있는가.     

 

획일화된 조건 속에서 지정된 일만 해야 하고,  자신이 꿈꾸고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회가 북한 사회이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고, 여행가고 싶으면 언제,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살면서도 가끔 작은것에도 불만과 투정을 부리는 일부 경우들을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군 한다.

      

물론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자신이 처한 현실이 다르고 원하는 목표가 다르기때문에 나름의 목표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속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남한 사회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도전을 해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는가.  그 시스템의 부족함은 모두가 노력하면서 완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설사 지금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회가 남한 사회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북한 사회에서 살다 온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남한 사회는 선택의 여지가 너무나 많고, 


자신의 꿈을 언제든지 펼칠 수 도전을 해볼만한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북한보다는.


한국처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에서 태어났더라면 그 친구의 인생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사진 :         Image by Jess Foami from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북한 사람은 하지 않는 남한 사람들의 "거짓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