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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념있는 희애씨 May 23. 2022

야 너 이름이 뭐야?

파트 2. 포기하다


급여 = 사과, 포기, 증발


대학을 졸업할 때쯤 되면 누구나 취업을 갈망하고,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급여가 꽂히는 직장인 선배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하물며 취업준비 시즌이 되면 우리네 엄마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곱씹게 된다. 취업을 성공하다니!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다니!!!


내 나이 26살에 은행원이 됐다. 언론사 필기시험을 뒤로하면서 응시했던 은행은 최종 관문에서 나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은행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몸을 조여 오는 불편함과 매일 아침 뭘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편함이 공존하는 유니폼을 입고, 고객들을 만났다.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취소할 것이 하나 있다. 앞선 글에서 나는 ‘은행 일은 나에게 꽤 잘 맞았다.’라고 표현했던 것, 취소한다. 가능하다면 만년필로 벅벅 소리가 나게 두 줄을 긋고 싶다.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건 인턴 조무래기에게 ‘진짜’ 은행원의 업무를 맡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발 끝만 담가 본 주제에 물 온도를 논했다. 건방진 햇병아리였다.  


은행에서는 유독 직원들의 이름을 궁금해하는 고객들이 많았다. 얼굴이 예뻐서 아들을 소개해주려고? 일을 너무 잘해서 칭찬카드를 써주기 위해서? 물론 아주 가끔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름을 궁금해하는 상황 대부분은 따지기 위해서다. 내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부르면서 언성을 높이기 위해서. 은행원에게 필요한 덕목은 그럴싸한 경제지식도, 누구보다 돈을 빠르게 세는 손도 아니다. 서비스 마인드 그중에서도 ‘사과’. 이 세상 모든 서비스 직이 고개를 끄덕일 일이지만, 적어도 나의 상식 내에서는 은행원이 이에 해당되지 않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세상 일은 경험해보기 전에서는 단정 지을 수 없는 것. 은행원은 이 모든 것의 한가운데에 있는 일이었다.


하루는 말도 안 되게 내점 고객이 많았다. 지점을 고객들이 가득 메웠고, 급기야는 문을 닫는 4시가 돼서도 북새통이었다. 이럴 때면 대출 창구, 일반 서비스 창구 할 것 없이 호출 버튼을 누르면서 고객을 상대하는데, 다음 고객을 호출하려는 순간 구겨진 번호표 한 장이 내 앞에 던져졌다.


“번호 지났어요.”


고객들이 번호를 못 듣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기에 상황을 봐 가면서 빈 창구로 안내하거나 잠시 기다려달라고 안내를 하는 편이다. 마침내 창구가 빈 타이밍이었기에 자리에 앉으라고 안내하려는 순간, 아차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이미 100번이 넘게 지난 몇 시간 전의 번호표를 내밀었던 것. 이런 경우 둘 중 하나다. 실제로 본인이 번호표를 뽑고 다른 볼 일을 보고 왔거나, 좀 전에 와서 쓰레기통 주변의 번호표를 주웠거나. 그 어떤 경우라고 해도, 1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 고객들이 있는 상황에서 ‘누가’, ‘언제’ 뽑은 지도 알 수 없는 번호표를 내민 고객의 업무를 처리해줄 수는 없었다.


“고객님 죄송해요. 번호가 너무 많이 지나서 번호표를 새로 뽑으시거나 내일 방문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해당 고객은 복식호흡을 준비했다. 난 이제 더 이상 해당 은행의 은행원도 아니고, 진상 오브 진상을 ‘고객님’이라고 칭하고 싶지 않으니 ‘진상’이라고 부르겠다. 진상은 언성을 높이고 가져온 통장들을 몽땅 꺼내어 내 앞에 던졌다. 해달라면 해줄 것이지 말이 많네부터 시작해서 만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내 직장생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업무 태도를 논하기까지 했다.


“야, 너 이름이 뭐야? 지점장 나오라고 해!”


여지없이 이름을 묻더니, 진상의 끝판왕 지점장 소환에 이르렀다. 유니폼을 벗고 지점을 나가는 순간 나 역시 누구보다 목소리가 크고, 부당한 것 앞에서 눈 감지 않는 방구석 정의의 사도지만, 유니폼을 입은 나는 힘없는 소시민 아니 소직원일 뿐이었다. 진짜로 지점장이 내 자리까지 올까 싶어 다시 한번 좋게 설명해도 진상의 귀는 이미 막힌 지 오래였다. 결국 지점장은 내 자리까지 와서 진상의 흥분을 받아내고 있었고, 더 가관인 것은 대기하고 있던 고객들이 마치 격투장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관객들처럼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거다.


“아가씨, 지지마! 미친 여자인가 봐!”

“늦게 왔으면 기다려야지, 너만 바쁘냐!”


결국 지점장실에서 지점장과 나, 진상의 삼자대면 타임으로 이어진 이 싸움은 유니폼을 입은 소직원의 ‘죄송합니다.’ 다섯 글자가 입 밖으로 열댓 번쯤 뱉어졌을 때 끝났다. 끝났다고 표현하는 것도 시원하지는 않다. ‘그러니까 이런 데서 일하는 거다.’ ‘이런 직원은 이 은행의 수치다.’ ‘네가 무슨 은행원이라고.’ 급기야는 ‘사과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사과하는 태도조차 꼬집어야 잠이 오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말투로 나의 모든 것을 헐뜯고서야 모든 것이 종료됐으니까.


이런 진상들 때문에 그만둔 건 아니었다. 우습게도 어느 순간부터 이런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렇다고 잊히는 건 아니었다. 이따금씩은 나에게 소리를 질렀던 사람과 비슷한 차림새, 눈빛을 가진 사람이 지나갈 때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기도 했다. 이런 게 PTSD인가.


지금은 ‘월급’과는 다른 개념의 돈을 거머쥐는 프리랜서가 됐지만, 오늘도 누군가의 통장에 입금되고 있는 급여의 동음이의어는 ‘사과’, ‘훼손’, ‘포기’, ‘증발’ 따위의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참내, 이런 건 몰라도 좋았을 텐데. 더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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