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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념있는 희애씨 Jun 21. 2019

그럼, 무직이신건가요?

나는 단 한 번도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결혼 생활 1년째. 드디어 내 집 마련을 했다.

이제는 한 곳에 꽤 오랜 기간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이사 가게 되면...’이라는 가정을 두면서 늘 뒤로 미뤄왔던 집 근처 백화점 전용 회원카드를 만들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사회에서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나서 처음으로 ‘신용’ 관련 거래를 하게 되는 것이라 꽤나 긴장을 했던 것 같다. 은근히 주먹을 꽉 쥐게 되는 긴장되는 그 특유의 느낌이 있다. 고객센터의 번호표를 뽑고 한쪽에 놓여있는 관련 신청서를 미리 작성하기로 했다. 이름을 적고, 생년월일을 써 내려갔다. 해결해야 되는 퀘스트를 생각보다 빨리 만나게 됐다. ‘직업’


프리랜서


한 때는 은행원이라는 이름으로 창구에서 수없이 많은 신용 관련 자료들을 봤고, 검토를 했기에 ‘신용’과 관련해서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얼마나 모호하고 유약한 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퇴사 서류에 잉크도 채 마르지 않았다며 남편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프리랜서’라는 단어를 더 꾹꾹 눌러썼다. 현직 은행원인 남편조차 ‘될 것’이라며 웃어넘겼다. 그저 소속이 없을 뿐, 기타 소득 혹은 사업자 소득으로 꼬박꼬박 세금도 내면서 나의 사회활동을 증명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될 것이라는 믿음도 내심 있었다. 나머지 빈칸도 거침없이 채우며 마지막 서명란까지 멋들어진 서명으로 채우고 내 번호가 화면에 비치기를 기다렸다.


내 번호 차례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서류를 내밀었다. “백화점 카드 신규 발급받으려고요.” 직원은 내가 내민 서류를 받아 위에서부터 시선을 옮겼다. 내가 작성했던 순서대로라면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그 다음은 ‘직업’란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직원의 시선은 밑 부분까지는 닿지도 않았다. 그러고는 무심하게, 내가 그 어떤 순간에도 귀에 담고 싶지 않은 단어를 뱉었다.


무직이 신 건가요?


‘소속된 곳이 있어야 한다.’ ‘안정된 직장을 다시 얻어야지’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 후로 엄마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잔소리는, 정말 나를 배려하기 위한 수많은 ‘단어 선택’ 과정이 있었구나 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는 것을 분명 느꼈지만, 펴고서 얘기하고 싶은 기분도 딱히 들지 않았다. “아뇨 아뇨 프리랜서예요. 고정적인 소득도 있고요.” 우리가 입 밖으로 내뱉은 말들을 TV 화면에서처럼 자막과 함께 볼 수 있다면, ‘프리랜서’와 ‘소득’ 부분에서는 밑줄을 진하게 긋고 싶었다. 이번에는 ‘직장 주소’가 문제다. “하지만 직장 주소와 자택 주소가 같으신 것 아닌가요?” 사업자 등록을 할 때에 자택과 사업장 주소를 동일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르냐며 있는 짜증 없는 분노 모두 끌어모아 한 마디를 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괜히 자격지심인가 싶어 되려 차분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네 같은 건 맞죠. 주로 집에서 일을 하고 프리랜서다 보니까요. 프리랜서는 일하는 장소가 일정한 건 아니에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카드 발급은 받았다. 내 이름 석자로 된 카드인 것도 맞다. 하지만 신용은 내 것이 아니었다. 직업란과 직업 주소란에 쓰여 있던 정보는 모두 두 줄이 그여 졌고, 대신 나는 ‘주부’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됐다. 추가적으로 남편의 이름, 직업, 직장 주소 등을 기재해야만 했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을 가진 이에게는 카드를 발급해줄 수 없다는 것이냐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고, 실제 은행에서는 소득 서류를 받고 결정한다며 그나마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금융 지식을 모조리 다 입 밖으로 뱉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카드는 발급받았고, 그 직원은 사실 그다지 불친절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프리’하게 이뤄지는 직업은 직업이 아니라고 치부해버렸을 뿐.


어쩌면 금융기관이 아닌 백화점에서 소득을 증빙하는 서류까지 지참하라고 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레드 테이프’ 같은 과정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레드 테이프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여길 정도로 구겨진 감정 상태를 한동안 추스르지 못했다. “내가 왜 무직이야?”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는 남편에게 이 질문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나만 아니면 된다지만 얼마나 수많은 사람이 저런 취급을 당했을지 모른다며 잔다르크처럼 투쟁이라도 할 기세였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 = 무직


지금도 그 카드는 잘 쓰고 있다. 하지만 쓸 때마다 어딘가 씁쓸한 건 그 날 내 귀에 들어왔던 단어들이 선명하게 기억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나를 오해하고 있는 상대에게 나의 상황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저 무시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글쎄, 나는 언제까지 ‘무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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