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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Nov 16. 2022

누구나 하루에 한 번쯤은 멍을 때려야 한다

- 깊은 호흡과 멍 때리기의 연관성에 대하여



"나는 매일 밤 열두시까지 일을 해. 그런데도 이렇게 생생하잖아? 히초미는 너무 약해. 나보다 한참 젊은 사람이 내가 하는 일의 반 만큼도 안하면서 골골거리면 어떡해."


정확히 나보다 두 배 나이가 많은 분이었다. 같은 연배의 다른 중년 여성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늘씬한 몸매며 언제 봐도 파이팅 넘치는 태도가 인상적이 분이었다. 그런 분을 상사로 두고서, 그보다 한참 어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내가 그보다 몇 배는 게으르게 살면서 온갖 병이란 병은 다 달고 다니니 말이 나올 법도 한 상황이었다. 할 말이 없어 배시시 웃고 있으니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흡사 속사포랩을 하듯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그 분의 말하기 방식을 보고 있자니 몸과 마음이 한치의 빈틈도 없이 빠듯하게 채워진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조직을 이끌어가는 일이란게 그만큼 쉽지 않다는 증거일까.


일방적인 대화(?)의 끝은 영양제 추천이었다. 자신은 온갖 영양제와 몸에 좋다는 건 다 먹는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젊은 사람이 활력 있고 바쁘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몸에 좋은 제품들을 입이 마르도록 추천하는 그 분의 호의가 어쩐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 분 딴에는 좋은 의도로 한 얘기였지만 듣는 내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남의 이야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각종 영양제를 먹어 가면서 유지하는 그의 생활 방식은 그가 선택한 길이지 내 길이 아니었다. 고급 영양제를 살 금전적 여유가 없다는 나에게 아직 채 눈을 뜨지 못한 (나의)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지금보다 배는 더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며 한사코 권유를 그치지 않는 그를 겨우 뿌리치고 방을 빠져나왔다.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더 쑤시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 요가원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가량이다. 지역이 달라서 그런지 버스 대기 시간도 2-30분 가량으로 꽤 긴 편이다. 제때 시간 맞춰 나가지 않으면 지각이 확정되는 까닭에 늘 노심초사하기 일쑤다.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해도 되지만 반드시 갈아타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에 되도록이면 한 번에 쭉 가는 특정 버스를 이용하려고 노력한다.


겨우 때 맞춰 버스에 탑승하면 30개 정류장을 지나야 하는 꽤 기나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저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데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 이동 시간이 평범한 축이라는 얘기도 어디서 들었기에 이 정도면 하고 싶은 수련을 하는데 크게 손해 보는 투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주위의 반응에 맞닥뜨릴 때면 어김없이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나 역시 이동하는데 소요되는 그 한 시간이 몹시 아깝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자기 개발에 도움이 될 일까진 하지 않더라도 잠이라도 한 숨 더 잘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까닭에 버스에서의 시간을 알차게 쓰고자 1분 1초도 아끼지 않은 적이 있었다. 책을 읽거나 밀린 업무를 하거나 혹은 영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버스에 탑승한 직후부터 내릴 때까지 한 번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지만 생각한 것 만큼의 만족감은 들지 않았다. 버스 좌석에 앉아 있는 약 50분 가량의 시간이 하루하루 쌓여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알게 된 것에 기뻐야 마땅했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갖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 둔 탓에 요가를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오롯이 호흡과 신체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시간이 활성화 모드가 된 뇌 덕분에 잠시도 쉼표를 찍지 못했다. 결국 요가 하러 가는 길에 온갖 소일거리를 집어 넣는 일을 멈췄다. 요가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아까운 시간을 버린다는 생각은 여전해서 이 역시 만족스럽지 않았다. 사람들 말대로 정말 괜한 짓일까? 널린게 요가원인데 굳이 집에서 먼 곳을 가려는 자체가 쓸데없는 욕심에 불과한 건 아닐까. 어쩌면 요가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을 보다 더 생산성 있는 일에 쏟아 붓는게 현명할지도 몰라.





수 개월의 공백 끝에 다시 요가를 시작했다. 우울이 다시 깊어지는 경험을 하며 나도 모르는 새 마음 속에 스며든 생산성의 논리를 내려놨다. 잠시도 쉬지 않고 하루를 쓸모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마음을 안정시키기 보다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었다. 뒤쳐질까 두려운 마음으로 하는 노력은 깨진 도자기에 물을 붓는 것 처럼 해도해도 모자랐다. 눈 앞이 캄캄했다. 이도 저도 아닌 자신을 긍정하기가 힘들었다. 자기 부정이 쌓이자 안그래도 약해진 마음의 둑이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흔들렸다. 건강한 상태였다면 툭툭 털어버렸을 일에 한 달여 이상을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요가원에 등록했고 우울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온갖 책들을 빌렸다.


 


보란듯이 자랑할 만한 성과를 이루고 싶었다. 불행히도 내게는 특출난 재능이나 그걸 덮고도 남을 만한 악바리 정신이 없었다. '너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니 나이가 몇인데.'하는 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불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의 결과물은 눈에 띄는 성장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이었다. 한 달여를 쓰라린 아픔에 시달리고나자 하루 빨리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성장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오로지 '사람 사는 것 처럼' 살고 싶을 뿐이었다.



  



오늘도 어김 없이 버스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본다. 날이 갈수록 해가 나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어둑한 거리에는 이른 아침부터 차들이 사람을 싣고 나른다. 차와 함께 흔들거리며 도로를 지나간다. 창가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떠 밖을 바라봤다가, 다음 정류소를 알리는 안내음성에 귀를 기울여 본다. 이 시각에도 사람들은 버스를 오르내린다. 각자 자신만의 사정이 있겠지, 하고 마음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가끔 지나가는 고양이나 새를 발견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별다른 볼거리 없이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금새 지루함이 덮쳐오곤 한다. 폰을 꺼내서 신문 기사라도 읽을까 하다가 그만 둔다. 앞으로 가득 채울 일만 남은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틈을 둬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일정 시간 멍을 때려주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몸의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라. 정신 없이 꽉 채운 하루에는 어김 없이 숨가쁜 호흡이 따라올 것이다. 깊고 안정된 호흡과 빈틈 없는 하루는 양립할 수 없다. 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나는 공백을 긍정하기로 했다. 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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