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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Nov 19. 2022

ADHD인의 2세에 대한 생각

-feat.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를 읽고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켰다. 네이버가 6년 전 사진을 보여주겠노라 하길래 눌러보았다. 

2016년에 먹었던 음식, 사 모았던 물건 등 갖가지 사진이 마음속 서랍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기억들을 불러일으켰다. 슬라이드의 끝에 다다를 무렵, 낯설면서도 낯익은 어떤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그녀의 얼굴은... 바로 6년 전의 나였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며 거울 속 내 얼굴을 보았다. 6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선이 분명하게 살아있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보름달 한 덩이가 둥그렇게 떠 있었다. 체중계에 올라가 보았다. 6년 전 보다 분명 6킬로는 더 불었으리라. 신혼여행에 다녀온 후 부쩍 오른 살은 10개월이 다 되도록 빠지지 않았다. 그 시절만 해도 마음먹고 식단을 조절하면 금세 살이 빠졌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 두 배는 노력해야 겨우 살이 빠질 뿐 아니라 당장 먹는 게 부족하면 에너지가 부족해 하루를 잘 보내기가 힘들다. 


문득 내가 아는 몇몇 얼굴들이 떠올랐다. 이런 말을 하면 미소를 머금은 눈에 욕 한바가지를 담고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라고 할 언니들의 모습이었다. 그렇다. 아직 30대 초반에 불과한 나는 분명 아직 젊다. 하지만 6년 전 날렵한 얼굴과 비교해 봤을 때 이제는 더이상 잘 빠지지 않는 살이 증명하듯이, 마냥 젊기만 한 나이는 아닐지도 모른다. 미래의 아이를 생각하면 더욱 더. 


 



ADHD는 물론이거니와 우울증도 가족력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들 한다. 나는 그 둘 다를 보유한 사람이다. ADHD인 사람들이 공존 질환을 함께 갖는 경우가 많다 하니 알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좋은 엄마가 되기에 만만한 조건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병원에서 정식 검사를 받은 건 아니지만, 신랑도 ADHD로 의심되는 요주의(?) 인물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공상에 빠져 멍을 자주 때렸으며, 시끄러운 소리에 아주 민감하고 하나에 몰두하면 중간이 없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사람이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ADHD인들이 그러하듯 일상의 소소한 일을 처리하는 데는 서툴다.  


우리의 이런 전적으로 볼 때, 아이가 ADHD를 가지고 태어날 확률은 다른 부모들에 비해서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얘기를 신랑에게 했더니 그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게 뭐 어때서? ADHD는 특별한 거잖아. 너무 사랑스러울 것 같은데?" ADHD 증상을 가진 탓에 어린 시절을 비롯해 지금까지도 꽤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는 2세가 같은 증상을 겪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했다. 부모인 우리가 잘 도와주면 될 일이라는 식이었다. 


같은 ADHD(물론, 반려자의 경우 정식으로 진단받은 것은 아니다.)인 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의 ADHD에 대한 인식은 꽤 많이 달랐다. 일상생활을 비롯해 사회적인 성과를 이루는 데 있어서 ADHD 증상의 악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둘이 비슷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달랐다. 반려자는 그 어려움을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마치 RPG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 같다고나 할까. ADHD 증상으로 생활의 불편함이 있다면 그걸 보완해 줄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어려움을 이겨내고 레벨 업을 한다, 는 식이었다. 타고난 기질로 인해 일이 어그러져도 태연히 미소 지을 만큼 마음이 너그럽진 않지만, 적어도 그것 때문에 우울감에 빠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자신을 '특별하다'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비록 식당에 지갑이며 가방을 자주 놓고 다니고 멍 때리고 있다가 하루의 반을 날릴 때도 많지만 그만큼 감각이 예리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서 만큼은 끝장을 볼 만큼 주의력이 깊은 자신을 긍정했다. 그에게 ADHD 증상은 있을지언정 우울의 그림자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에 나는 약을 먹지 않은 나를 도무지 긍정하기가 어려웠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오전 시간을 멍하게 흘러 보내기 일쑤인 나의 '증상들'을 핸디캡이라고 여겼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ADHD를 가진 사람들은 평균 소득이 낮고 우울증 등의 공존 질환을 가질 확률이 높다고 했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가 나를 닮아 ADHD를 갖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이가 ADHD를 가진다고 쳐.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를 안 사랑할 거야? 그건 아니잖아.'


그랬다. 아이가 나를 닮아 ADHD를 가지느냐 안 가지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그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수 있느냐 하는 게 진짜 당면해야 할 문제였다. 


곰곰이 따져봤다. 정말 내가 가진 '핸디캡'이 그저 삶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일 뿐이었는지. 

정답은 '노'였다. 


아침에 눈 뜨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을 살면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중 하나가 '인생은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어딘가 삐걱대며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평생 굴리며 살아왔기에, 나는 온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 신화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노력의 여하도 물론 있겠지만 일이 잘 풀린다고 해서 반드시 개인이 노력했기 때문은 아니란 것, 세상에는 그 노력조차도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처럼,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요구하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기에 오히려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자격을 하나 정도 손에 쥐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바로 삶이 내 맘대로 안 되듯 내 자식 또한 그럴 것이며, 그럴 마음을 갖고 아이를 키워서는 안 된다는 깊은 '느낌'이다. 반려자와 내가 비슷한 증상을 가졌으면서도 그 증상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공존 질환의 유무가 다르듯, 결국 핵심은 마음 건강이다. 어떤 아이가 내 곁에 와도 엄마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그 아이가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있는지, 가슴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있는 지를 세심히 살피는 것 이리라.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님의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 육아>>에서 이런 대목을 보았다. 

 

교수님은 수년간 난임 치료를 받으면서 노력했음에도 자녀를 갖지 못했다. 그런 마음을 어머니께 토로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이고 나영아, 자식은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다. 자식 니 맘대로 안된대이. 자식은 내가 키우고 싶은 대로 기르려고 낳는 게 아니다."

"응?"

"자식은 사랑하려고 낳는 기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 육아>>, 지나영, 21세기 북스, p.280)    




ADHD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은 사랑받으려고 태어난다. 이 점만 잊지 않으면 나도 행복한 엄마, 사랑으로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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