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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Nov 24. 2022

불안과 우울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비법 세 가지(1)

미술 작업으로 내 마음 바라보기

어제 밤 가슴이 빠르게 뛰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따뜻한 꿀물을 마시고, 곁에 다가온 강아지 옆에 찰싹 달라붙어 달큰한 체향을 흠뻑 들이켜 보아도 놀란 가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후에 받은 스트레스가 밤까지 지속되는 듯 했다. 

뜬 눈으로 누워있기를 한참,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방 베란다 불을 켰다. 주황색 빛깔의 베란다 전등 불빛만으로는 작업을 하기가 어려워 스탠드를 가까이 가져왔다. 

(작은 방 전등이 나간지 벌써 6개월은 된 듯 하다. 극한의 귀차니즘으로 전등을 갈지 않고 스탠드 불빛 만으로 살고 있다. 적응하니 크게 불편하지 않다.)


마침 예전에 그려놨던 그림이 있어 그 위에 물감을 덧 입히며 작업을 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감들을 끌어 모으고 빈 요거트 병에 물을 받기만 하면 준비 완료였기에 행동이 굼뜬 나도 어렵지 않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의 포크송 싱어송라이터 조애나 뉴섬(Joanna newsom)의 노련한 하프 연주와 하프라는 악기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능청스럽게 깨부수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색과 선이 이루는 조화에 흠뻑 빠져들었다. 


새벽을 불태우며 그려낸 만다라. 재료는 아크릴, 크레용 그리고 소량의 반짝이풀.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저 녀석을 '만다라'라고 칭하겠다. 본래 '만다라'라고 하면 일정한 이미지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만다라(Mandala)가 산스크리트어로 '원' 혹은 '중심'을 뜻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중심을 향해 집약되는 성질을 가진 위 그림 또한 만다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만다라 그리기가 마음의 중심을 잡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효과적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장 인터넷만 찾아봐도 다양한 만다라 문양을 찾을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문양을 프린트하면 준비의 반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집에 굴러다니는 사인펜, 색연필, 크레파스 등의 재료만 있으면 언제든지 이 '만다라'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다. 거기에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는 음악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있는 문양에 색을 입히는 컬러링보다 직접 문양을 만드는 쪽이 더 효과가 좋은 것 같다. 혹은 문양과 관계없이 그저 '원형' 혹은 '중앙으로 집중되는' 이미지를 만드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효과가 있다고 본다. 


뜻밖의 사건에 맞딱뜨리거나 무의식중에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이 건들려 마음의 중심을 잃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종이를 꺼내 만다라를 만든다. 크기나 재료는 상관 없다. 오로지 중심으로 들어가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샌가 들떴던 호흡이 가라앉고 생명체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내 안에 실존함을 느낀다. 중심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중심에서 바깥으로 뻗어 나가는 행위를 반복하며, 마음을 사로잡았던 부정적인 생각 패턴에서 벗어나 지금 바로 이 순간의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감사 일기를 쓸 때도 만다라 기법을 활용하면 좋다. 화면 중앙에 감사 일기를 쓰고, 그 둘레를 반복되는 색채와 문양으로 채우면 마치 마음에 울타리를 두른 것 처럼 보호 받는 느낌이 든다. 

반짝이풀, 색종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식용 끈, 스티커 등 집안에 굴러다니는 물건을 총동원 했다. 친근한(?) 악필은 덤^^



관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주변의 사물을 아무거나 정해서 묘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때 잘 그리려는 마음을 먹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오로지 대상 그 자체에 관심을 두고 특징을 묘사하는데만 집중한다. 미래로 앞서나가거나 과거에 사로잡히기 쉬운 인간의 마음을 현재로 돌려 놓는데 있어 미술은 참으로 좋은 도구다. 일부러 마음 먹고 좋은 재료를 쓰려는 것만 아니라면 재료값도 얼마 들지 않고-좋은 재료를 구입한다 해도 한 번 사면 꽤 오래 쓰기 때문에 가성비가 좋다- 별 다른 장소도 필요하지 않다. 종이, 펜, 앉을 공간만 있으면 끝. 나는 가끔 마음의 응급처치가 필요할 때 미술 작업을 하곤 하는데, 요즘 들어서는 그 필요성이 피부에 더 확연히 와 닿는다. 요동치는 마음을 잘 다스리지 않고서는 현재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그림 그리는 행위를 도무지 즐길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미술을 전공하면서 들은 수 없이 많은 평가 때문이었다. '네 감성은 너무 소녀같아. 그걸 잘 살리는 사람도 있는데 넌 안 그러는게 좋을 것 같다.',

'작업은 좋은데... 어딘가 촌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팔리기는 힘들 것 같다.' 등의 말들이 하나하나 뇌리 깊숙히 박혔다. 좋은 의도로 해주신 말들이라는 건 알았지만 역으로 그 '말'이 브레이크가 되어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막곤 했다. '이 색을 쓰면 촌스러워 보일까?'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표현한 건 아닐까.' 나는 끊임없이 내 작업물을 검열했다.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검열이 꼭 필요하다. 때문에 진심어린 조언을 잘 새겨 듣고 반영하는 것은 발전을 위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미술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면, 검열하는 마음은 잠시 넣어두는 게 좋다. 그보다는 이 색을 쓰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이 부분을 그릴 때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등을 잘 관찰하며 순간순간에 몰입하는 것이 이 작업의 핵심이다. 작품의 완결성은 어디까지나 그 다음의 문제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후, 나는 작품의 완결성을 좇는 태도를 잠시 내려 놓았다. 그러자 다시 미술은 내 친구가 되어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고, 거울처럼 내 마음을 비춰주었다. 언젠가 치료 도구로써의 미술과 예술 작품으로써의 미술이 함께 만날 지점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건강하게 자기 검열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미술을 마음의 버팀목으로 이용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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