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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Nov 30. 2022

불안과 우울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비법 세 가지(2)

-필사가 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힘


1.

꼭 마음이 불안할 때가 아니라도, 좋은 글귀를 만나면 수첩에 한 자 한 자 눌러쓴다.

글의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주로 책에서 읽은 구절을 쓰곤 하지만 간혹 노래 가사나 시를 쓰는 일도 있다. 


싱어송라이터 조애나 뉴섬(Joanna Newsom)의 'Time As a symptom'의 가사를 적었다. 


위와 같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는 글을 베껴 적을 때도 있다. 시적인 노래는, 특히 외국어로 된 가사는 대략적인 뜻을 안다 해도 정확한 뉘앙스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굳이 공을 들여 적는 이유는 간단하다. 음악을 더 깊이 즐기기 위해서다. 가사가 있는 노래라면 대체로 사람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가 읊조리는 언어가 있다. 그 언어의 말소리가 '글'이라는 사회적 약속으로 변환되는 지적인 과정을 가사를 적어봄으로써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또한 음악을 듣고, 가사를 베껴 쓰는 과정에 몰입함으로써 마음 챙김의 효과도 덤으로 얻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내가 언제 이 음악을 들었는지 알 수 있어 아카이빙 역할과 더불어 다이어리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웠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마음챙김으로 우울을 지나는 법』, 존 카밧진, 마음친구, 2021 을 읽으며 기록한 내용.

 

의욕이 바닥을 치던 시절『마음챙김으로 우울을 지나는 법』을 읽으며 기록한 내용들이다. 마음에 와닿은 구절들을 기록해두면 책이 곁에 없을 때 읽고 싶은 구절을 수첩에서 바로 찾아볼 수 있어 편리하며, 책을 읽던 당시 나에게 무엇이 필요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되돌아볼 수 있다. 또한 문장을 베껴 써보는 과정을 통해 읽었던 내용을 한 번 더 읽게 되는 효과도 있다. 이때 필사의 혜택을 제대로 보려면 쓰는 도중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손만 움직이고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면 필사가 주는 기쁨을 반 밖에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문장을 곱씹으며 한 자 한 자 써보고, 마음속으로 한 번 더 읽은 후 소리 내어 다시 읽다 보면 해당 내용이 마음속에 서서히 뿌리내리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도무지 다른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을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하다면, 반쯤 정신이 다른 곳을 향한 채 손가락 운동에만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로지 글씨를 예쁘게-믿기지 않겠지만, 사진 속 글씨는 나름대로 손가락에 힘을 줘가며'반듯하게'쓴 것들이다.-, 정갈하게 쓰는데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가빴던 호흡이 가라앉고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베껴 쓰는 행위를 통해 작은 성취감을 하나씩 쌓다 보면 일상 속 스트레스와 대면할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데도 도움이 된다. 



2.

종종 살아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늘 그런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차 방심하는 사이 결과(혹은 성과) 중심적 마인드가 자아의 세계를 지배해 판단과 지적질의 굴레에 빠지고 만다. 불행히도 성과 중심적 마인드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자동 기계처럼 몸속에 새겨진 이 구조적 함정은, 끊임없이 '너는(존재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게임은 이기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가치를 생산성의 논리 하에 함부로 판단할 권리를, 게임에서 지거나 룰에 걸맞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안과 낮은 자존감을 선물한다. 


개인의 힘으로 사회 전체에 포진한 힘의 논리에 일일이 대항하기란 힘든 노릇이다. 그럴 때 내 편이 되어 줄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직접 사람을 만나고 다닐 심적, 체력적 여유가 없다면 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아군을 만날 것을 권한다. 이런 까닭에, 나의 존재를 세상 속에 더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보석 같은 글귀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칠 수 없음이 당연하다. 인간은 살기 위해 글을 읽기 때문이다. 





3.

필사 노트를 쓰는 법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주제별로 나눠서 필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때그때 손에 잡히는 대로 적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눈에 띄는 종이에 바로바로 적어 내려가든, 수첩 하나를 정해서 적든 '어떻게'와 '무엇을'은 각기 알아서 할 문제이지만 개인적으로 필사한 내용을 여기저기 흩어 놓는 것보다는 한 곳에 모아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필사 노트도 공을 들여서 만들어 놓은 하나의 작업물이므로 작품으로써 대우해주는 것이 옳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작업물을 잘 보존하는 행위는 자신에 대한 존중과도 같다. 만일 눈에 띄는 아무 종이나 집어서 필사하는 스타일이라면 날짜를 적어 상자에 담아 놓거나 커다란 종이에 모아 붙여서 액자에 넣어도 좋을 것 같다. 



필사하는 행위를 즐기는 것 외에도 결과물인 '필사 노트'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각자가 필사한 내용을 낭독하고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는 필사 모임도 좋은 활용법 중 하나다. 읽고 쓴 내용을 혼자 간직하고 있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과 나누다 보면 책에서 얻은 지혜를 삶 속에 녹여내는 일이 한결 쉬워 질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에 와닿는 내용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필사를 시작했다. 모든 책을 구입해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빌려 읽은 책들을 반납하기 전에 마음에 남은 구절을 채집하려 했던 거다. 그러던 와중에 글을 베껴 쓰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심지어는 내적인 힘이 차오르기도 하는 걸 느꼈다. 필사를 하기 전에는 필사를 그저 수많은 공부 방법 중 하나 정도로 여겼던 나였건만, 직접 해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베껴 쓰기 역시 몸을 움직여 결과물을 만드는 행위라서 그런 걸까. 만다라를 그릴 때처럼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면서, 무엇이든 활용하기 나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유명한 공부법 중 하나인 필사가 어떻게 써먹느냐에 따라 명상의 효과를 가져오듯이 일상생활 속 모든 행위가 마음먹기에 따라 스트레스가 될 수도, 마음 챙김을 연습하기에 알맞은 도구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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