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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Feb 27. 2023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심이고 의지이다.

결혼 1주년차에 깨달은 사랑의 의미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다. 사랑은 결심이고 의지이다."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리히 프롬의 말이다. 


 얼마 전 결혼 1주년을 맞았다. 말이 1주년이지 함께 한 세월을 따지자면 자그마치 9년이다. 20대를 통째로 함께 보낸 셈이다. 대학교 CC커플이었던 우리는 함께 공부했고 서로가 졸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졸업 후 홀로 서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도 우리는 함께였다. 강아지를 공동 양육하며 거의 4년여간을 한 지붕 아래 살았다. 워낙 오래 알고 지냈기에 결혼이 뭐가 대수일까 싶었다. 그저 원룸 혹은 미니 투룸이었던 집과 가족관계가 두배로 넓어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둘 사이에는 큰 변화가 없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연애때와는 달랐다. 가족, 친척 그리고 친구들과 지인들까지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표를 하고 나니 구속감이 생겼다. 좋게 말하면 맘 놓고 의지할, 어디에도 가지 않을 가족이 딱풀처럼 곁에 달라붙어서 한결 안심되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말하면 '구속'이다. 이제 이 결혼이라는 굴레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겠구나 하는. 


 1년간은 아무 탈 없이 지나갔다. 사회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하느라 신혼 생활은 으레 생각하듯이 충분히 알콩달콩하지는 않았다. 이미 함께 한 세월이 세월인지라 두근거리는 감정이 거의 사라진 탓도 있었으리라. 설렘이란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생기기 마련이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우리 사이에 설렘이 싹트기란 어지간해선 힘든 일이었다. 


 가족이라는 한 팀으로 미래를 설정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일에만 열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 줄었다. 반려인도 나도 점점 살이 불어 옆으로 퍼졌다. 잘생겼다 소리 꽤 듣는 반려인의 얼굴에서 점차 과거의 영광이 사라져 갔다. 나 또한 딱 붙는 바지를 입으면 옆구리살이 삐져나오는 사람이 되었다. 신혼여행 때 먹방을 찍느라 찐 살은 점점 늘기만 하고 다시 빠지지 않았다. 자연히 서로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일이 줄어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청결이었다. 나는 지저분한 환경에 대한 역치가 상당히 낮은 사람이다. 물건이 어질러 있어도 포토샵으로 자체 블러 처리를 한 것처럼 잘 보지 못한다. 어쩌면 굳이 보지 않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반려인은 너저분한 환경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청소와 정리는 거의 그의 몫이 되었다. 원룸이나 미니 투룸에 살 때는 공간이 좁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리가 빨리 끝났다. 이제 그보다 두 배 넓은 집에서 살게 되자 짐도 늘고 할 일도 배로 늘었다. 반려인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요목조목해야 할 일을 시켰지만 나는 '지금은 너무 잠이 오니 내일 하겠다.'는 둥의 핑계를 대며 일을 미루기 일쑤였다. 결혼 1주년 기념일 주간 즈음이 되어서 갈등이 폭발했다. 늘 다정한 말투로 내게 일을 시키던 반려인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또 다른 문제는 서로의 성격적 단점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감정 기복이 심한 분이다. 내가 어릴 때는 지금보다 한창 더 감정 기복이 심하셨다. 주 6일 하루 10시간씩 일하는 노동 환경에 지쳐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여덟 살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외출을 하셔서 아버지가 끓인 라면을 함께 먹으려고 밥상 앞에 앉아 있었다. 어렸던 나는 아빠를 놀려 먹어 보겠다는 생각에 "아빠 라면은 엄마 라면보다 맛없다!" 하며 장난을 쳤다. 아버지가 먹지 마라고 고함을 버럭 지르셨다. 라면이 뜨겁지만 않았다면 상이라도 엎을 기세였다.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별 것 아닌 일에도 활화산처럼 폭발했다가도 본인 기분이 좋을 때는 한 없이 다정했다. 문제는 내가 아버지의 그런 단점을 고스란히 흡수했다는 점이다. 


 며칠 전 가족 나들이를 가는 길에 주유소에 들른 적이 있었다. 반려인이 나를 보더니 카드를 좀 달라고 했다. 깜빡 잊고 집에 지갑을 두고 왔단다. 무언가를 생각할 틈도 없이 자동반사적으로 버럭 화를 냈다. 화를 내고 난 후 아차 싶었다. 방금 전 내 모습은 어린 딸의 농담에 버럭 소리를 치며 화를 내던 아버지의 그 자체였다. 서둘러 사과를 했지만 이미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 후였다. 우리 아버지도 뭔가에 씐 듯이 화를 내고 나서 "내가 대체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시곤 했다. 아마 아버지도 성장 과정에서 나와 똑같은 일을 겪으셨을 거다. 나는 아버지의 감정 기복에 몸서리를 치며 거부반응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그런 아버지를 마음속 깊이 이해했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반려인은 어머니를 닮아 잔소리가 꽤 있는 편이다. 칠칠맞은 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반사적으로 꼬투리를 잡을 때가 많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 맞는 말이지만 인간이란 원래 꼬투리 잡히는 걸 싫어하게 마련이다.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하면 반려인은 늘 "칠칠치 못하게 구는데 어떻게 말을 안 하냐."라고 한다. 그의 말이 맞다. 남편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길 게 분명하다. 하지만 왜 이렇게 하라는 대로 하기가 싫을까. 평생을 해오던 버릇을 누군가 옆에서 자꾸 뜯어고치려 하니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모양이었다. 뭐든 그렇듯이 '변화'는 힘이 드는 법이니까. 왜 자꾸 날 힘들게 하는 거야! 제발 좀 내버려 둬!


 한바탕 서로 눈을 흘기며 불만을 토로한 끝에 다짐을 했다. 반려인은 잔소리를 할 때 예쁘게 말하기로 했다. 나는 거부감을 잠시 내려놓고 반려인이 원하는 부분을 조금씩 맞춰주기로 했다. 정신과를 꾸준히 다니고 약도 꼬박꼬박 먹으며 감정 조절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피부에 차갑고 축축한 게 닿는 걸 워낙 싫어하는 지라 반려인이 그토록 원하는 피부 관리를 일절 하지 않았던 나지만 꾹 참고 주1회 팩 하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반려인도 내가 좋아하는 탄탄한 몸을 만들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매일 조금씩 운동을 하는 중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심이다. 상대방과 함께 호흡을 맞춰 걸어가겠다는 결심,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겠다는 결심이다. 해이해질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진짜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마음을 낼 때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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