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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Mar 23. 2023

자신의 능력을 인정한다는 것


 나는 현재 어린이 영어 학원에서 매니저 겸 보조 강사로 일하고 있다. 일 때문에 힘을 다 뺀 나머지 개인 시간을 챙기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루에 다섯 시간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말이 하루에 다섯 시간이지 출퇴근 시간과 출근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족히 여섯 시간 반 정도를 일 관련으로 소비한다. 시간 부자가 평생의 꿈인 나에게는 남들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한 그 시간조차도 아깝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건 우선은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고, 그나마 이 일을 하면서는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되어하는 여느 일이 다 그렇듯이 나의 이상에 완벽히 부합하는 일은 아니다. 


 우선, 나는 유아 조기교육에 찬성하는 입장이 아니다. 굳이 반대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놀이처럼 맛보기 정도로 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학습이라고 느끼지 않을 만큼, 자율성을 존중해 주면서 체험하게 하는 것까지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이에서 벗어나 '학습'이 되면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개인적으로 정답과 오답을 꼼꼼히 체크하는 학습식 교육은 만 7세부터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어 말하기, 듣기 교육의 경우에도 아이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5,6세의 너무 어린 나이부터 억지로 시키는 것은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나는 유아 조기 영어 교육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영어와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치관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적성에는 꽤 맞는 셈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좋아함에도, 스스로 아이를 '잘 다루는'이상적인 선생님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 머릿속 이상적인 선생님은 '카리스마'에 그 기준이 있었다. 아이들을 잘 집중시키고, 필요할 때는 따끔하게 주의를 줄 줄 알며 아이들 간의 다툼에 있어서 아이 눈높이에 맞게 깔끔하게 조정하고 해결하는 능력 있는 선생님. 










 그에 비해 나는 '만만한' 선생님에 가까웠다. 어딜 가나 아이들은 나를 편하게 대했다. 수줍은 아이들도 나만 보면 곧잘 장난을 걸곤 했고, 소위 말하는 '약은'아이들은 내 만만함을 첫눈에 파악하고는 이것저것 요구하기 일쑤였다. 전에 일했던 영어 유치원의 원장 선생님은 나더러 "아이들을 휘어잡아야지 애들한테 휘둘리면 어떡하니."라고 하셨다. 이상적인 선생님 기준에 한참을 못 미치는 선생님, 그게 바로 나였다. 




 어제도 여느 때처럼 아이들이 내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한 놈은 허벅지에 자리를 잡았고 다른 세 아이들은 등 뒤며 왼쪽 오른쪽 팔에 꼭 붙어 키득키득거렸다. 그 상태에서 영어를 한 자라도 더 말하게 시키려고 세 마리 원숭이들과 눈을 맞추며 학습 문장을 반복했다. 메인 티처인 원어민 선생님과 '어휴...' 하는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장난을 치면서도 우리를 따라 문장을 말해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때 갑자기 어떤 깨달음이 왔다.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은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던가. 미술 학원에서 일했을 때는 '화를 내지 않는 천사 선생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을 그만 두면 개인 번호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고, 유치원 나이대 아이들에게는 '엄마'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돈가스며 자장면 같은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으러 가고 싶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의 '만만함'은 곧 '마음이 넓은'과 같은 의미였다. 어지간히 버릇없이 구는 게 아닌 이상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열 번 가르쳐 준 걸 열한 번째 틀릴 때도 저번보다 나아졌다며 하이파이브를 했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이를 볼 때도 화가 나기보다는 어리숙해서 귀엽다고 느꼈다. 등하원하는 아이들에게 꼬박꼬박 잊지 않고 인사하는 건 기본이요, 우는 아이에게 품을 빌려주는 건 다반사였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내 품에서 눈물을 뚝 그치곤 했다. 그뿐인가. 아이가 실수로 바지에 응가를 지렸을 때도 나는 그 무엇보다도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데 집중했다. 그 순간만큼은 똥이 더럽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사고를 전환하고 보니, 나는 노련하진 않아도 썩 괜찮은 교육자였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지구별에 온 지 얼마 안 된 초심자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친절히 잘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내 가슴속에 본능처럼 박혀 있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는 왜 스스로를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아이들 줄 세우는 일, 집중시키는 일에 서툴렀다. 다수의 아이들을 반별로 모으는 등 질서를 가르쳐야 할 때 아이들은 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단체 수업을 진행할 때 아이들이 지루해하는 기색이 보이면 덩달아 풀이 죽곤 했다.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휘둘리는'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질은 얼마든지 후천적으로 키울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애초부터 타고난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결국 남이 가진 능력을 부러워하느라 내가 무얼 가졌는지는 알지 못한채 스스로를 구박했던 셈이다. 이만하면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 


 세상에는 간혹 나르시시스트들이 있다. 그들은 타인을 자기 잘난 걸 돋보이게 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 정도로 엇나가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어느 만큼은 자기 잘난 걸 뽐내며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세상 각각의 '나'들에게는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마음의 문을 조금만 더 열면 자신이 얼마나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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