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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Mar 15. 2023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리에 대하여


 제각기 다른 지문만큼이나 사람은 저마다 개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고로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얼핏 들었을 때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쉽게 간과한다. 


예를 들어 누구나 이런 말을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다 하는데 너만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니?" "다른 사람들 하는 만큼은 해야지."와 같은 말들.


 동물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다. 물론 그들 세계에도 자손을 남기기 위한 피 터지는 짝짓기 전쟁이 있고 먹고살기 위한 고난을 수도 없이 치러야 하지만 그럼에도 쉴 때 쉬고 놀 때 노는 법을 그들은 안다. 그들은 자기 개성대로 살아간다. 인간이 주는 먹이는 좋지만 인간 자체는 싫은 녀석들은 먹을 건 먹고 잡으려 하면 잽싸게 달아나는 방식을 취하고 인간도 좋고 먹이도 좋은 녀석은 순순히 인간의 손에 붙들려 함께 살아간다. 그들의 세계에는 '다른 개들도 다 인간과 함께 사는데 왜 너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지 못하니?'따위의 말이 없다. 각자 타고난 대로, 각자의 감각대로 살 길을 찾을 뿐이다. 


 인간이 모두 같은 종(種)이라고 해서 같은 능력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만약 인간이 같은 능력, 같은 개성, 같은 성격을 타고났다면 지금처럼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지구라는 행성의 지배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현재 이토록 번성한 개체가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각자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MBTI를 예로 들어보면 이해가 쉽다. I(내향형)과 E(외향형) 두 가지를 두고 봤을 때 외향형이 더 우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 자신을 더 잘 드러내는 사람이 여러모로 각광받는 시대이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외향형만 가득하다면 어떻게 될까? 우열을 떠나서-애초에 우열을 가른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만 득실거린다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먼 옛날 새로운 땅을 찾아 길을 떠났던 선조들 무리에는 과감하게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길 사람(아마도 주로 외향형)과 다가오는 위험을 세심하게 감지할 사람(아마도 주로 내향형) 두 유형이 모두 필요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가는 길을 다 같이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 삶의 방식에 '정답'이란 것이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을까? 실상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르고, 다르기 때문에 이토록 번성했는데 말이다. 




 가령 나의 경우에는 외향적인 환경에서 쉽게 피로를 느끼는 편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피로가 쌓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괜찮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인간 친화적인 동시에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스트레스를 잘 받는 복합형 인간이다. 따라서 나는 일을 적게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외에도 적게 일하는 삶의 방식을 택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금쪽같은 내 새끼'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들마다 각자 기질에 따라 주어지는 솔루션이 다르다. '기질'적인 면에서 나는 평균보다 스트레스 역치가 낮은 편이다. 함께 사는 반려인의 말에 따르면 나는 개복치 혹은 몽골인이다. 개복치는 유리멘탈로 유명한 생선인데 어디서 유래했는지 정확한 정보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개복치의 사망 원인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아침햇살이 강렬해서 사망

2. 바닷속 공기방울이 눈에 들어가 스트레스로 사망

3. 바닷속 염분이 피부에 스며들어 쇼크로 사망

4. 바다거북과 부딪힐 것을 예감하고 스트레스로 사망

5. 근처에 있던 동료가 사망한 것에 쇼크 받아 사망

6. 동료가 사망한 장면을 목격한 스트레스로 사망

7. 피부의 기생충을 떨구려고 점프했다가 수면에 부딪혀 사망

8. 민첩한 선회를 할 수 없어 바위에 부딪혀서 사망

9. 너무 깊이 바다 아래로 내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

10. 수면 근처에서 일광욕 중에 갈매기에게 쪼여서 사망

11. 자고 있다가 파도에 휩쓸려 육지로 떠밀려서 사망

12. 물고기 뼈가 목구멍에 걸려서 사망

13. 새우나 게를 먹다가 껍질이 내장을 찔러서 사망  




 몽골인을 비유로 든 이유는, 아사노 타다노부 주연의 영화 '몽골'에서 몽골인은 감옥에 가두면 견디지 못하고 죽고야 만다는 대사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이 워낙 인상 깊었던 나머지(오? 감옥에 가두면 못 견디고 죽는다고? 신기하네)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자 그들은 입을 모아 '네 얘기네.'라고 했다. 어쩌면 조상 중에 몽골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가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을 택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억지로 참아가며 조만간 시행될지도 모르는 주 69시간 노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성향과 기질을 따져 봤을 때 이는 수명을 깎아 먹거나 혹은 더 운이 없다면 골골대며 늙어가기 위한 지름길임에 틀림없다. 


 이쯤 되면 "남들은 다 하는데 너는 못한다는 건 핑계다. 누군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아느냐"와 같은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남들은 다 하는데 너는 못한다는 건 핑계다."에 관해서는 그래서 당신은 남들처럼 살아서 행복하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체 그 '남들'이 누구냐고 묻고 싶다. 겉으로 보아선 모두가 비슷해 보여도 알고 보면 속사정은 하나같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아느냐."에 관해서는, 나도 안다. 내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세상에는 살고 싶은 방식을 택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이 많다. 내가 지금과 같은 생활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건강하시고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집안에 큰 빚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이토록 큰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세상에 빚을 진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언젠가 마음과 때가 무르익으면 세상에 보탬이 되는 활동으로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람은 각자 개성이 다르다. 때문에 사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 사회에, 조직에 나를 끼워 맞춰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인만큼 각자가 개성대로 삶의 방식을 운용할 수 있도록 사회도 조직도 조금은 유연해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선은 한 사람 한 사람 사회 구성원부터 '자신'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자기 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려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인간이라면 그 정도 지적 사치는 부려도 좋지 않을까. 당장 길 고양이들도 햇빛에 따라 어느 자리에서 식빵을 구우면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지 시험하러 온 동네를 쏘다니는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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