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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Mar 14. 2023

필수불가결(?)한 사치

 아침 5시 15분쯤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몇 가지 간단한 운동을 한 후 카페에 왔다. 집 근처 강 건너편에 있는 이 카페는 주변에서 유일하게 8시부터 문을 여는 카페라 나처럼 아침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알맞다. 

 아침형 인간이 된 지도 벌써 2개월이 다 되어 간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한 달 넘게 이어지니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찍 일어날 수 있다는 자신이 붙었다. 일찍 일어나기로 한 이유는 오후에 일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야 요가로 몸 건강을 챙기고 강아지 산책 등의 의무를 다 하며 미래에 직업적으로 홀로 서기 위한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 언급한 일들은 밤에도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 앞자리에 3이 붙고 나니 새벽 늦게 잠이 드는 일은 명을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피부에 와닿는다. 명만 재촉하면 다행이지 병이라도 들면... 벌써부터 골이 지끈거린다. 그런고로 늦게 잠드는 무모한 짓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게다가 일찍 일어나면 천연 우울증 치료제인 햇빛을 실컷 들이킬 수 있다. 반려인 말에 의하면 365일 중 300일이 우울한 나 같은 사람에게 광합성은 그야말로 필수다. 햇빛을 쬐고 장 건강을 위해 요거트를 먹고-지금도 카페에서 요거트를 먹고 있다- 요가를 통해 호흡 훈련을 하는 등은 모두 우울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이다.

 

 사람은 저마다 독특한 기질을 타고난다고 한다. 오은영 박사님 가라사대 기질은 아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 하셨다. 외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나는 우울해지기 쉬운 기질을 애초에 타고 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우울증 약을 먹고 아침형 인간으로 탈바꿈도 하였다. 기질에 맞는 삶으로 행복을 거머쥐기 위해 에피쿠로스 추종자(?)가 되기로 마음먹기로 했다. 비록 아주 최근에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집 밥의 소박한 맛을 즐기는 법을 익히고 있다. 이전에는 밥을 먹은 후에 꼭 간식을 먹어야 했고, **쮸같은 자극적인 씹을 거리를 손에서 못 놓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요즘은 웬만해서는 간식에 손을 대지 않고 밥과 반찬만으로 만족을 얻으며 배가 살짝 덜 찬 상태에서 자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에피쿠로스는 필수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그 이상으로 얻는 충족감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만찬을 즐긴 후 프랑스 출신 전문 파티시에가 만든 마카롱 한 입을 베어 물면 말 그대로 천국에 간 기분이겠지만, 그가 만든 고급 마카롱 100종을 종류별로 하나씩 더 먹을 때마다 행복이 배가 되진 않을 테니까. 과식 후의 지독한 배탈까지 즐길 정도로 디저트를 사랑한다면야 인정하겠다만.


    




 내게 있어 분위기 좋은 카페, 특히 이른 아침의 조용한 카페는 우울한 기분에 특효약이다. 집에서는 도무지 이 기분을 느끼기가 힘들다. 진정한 에피쿠로스 주의자라면 집 안에서도 예쁜 카페 못지않게 만족감을 누릴 수 있어야겠지만 나의 내공으로 거기까지 가긴 한참 멀었다. 적어도 지금의 내 살림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살림 내공이 어느 정도 쌓이기 전까지는-한마디로 지금은 집이 너저분하다는 말!^^- 이른 아침 카페에 가는 사치 정도는 허락해 주기로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크다. 강을 건너는 일은 정신 건강에 좋다!


동네 하천에 서식하는 오리 식구들


 

 버릇처럼 울적했다가도 돌다리를 건너며 유유자적 헤엄치는 오리 식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밝아진다. 


물 위에 앉아 있던 오리가 불현듯 솟구치더니 날아올랐다.


 물인지 먹이인지를 먹으려고 고개를 처박고 통통한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오리, 저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삼삼오오 모여 떠들며 둥둥 떠다니는 오리들, 혼자 뚝 떨어져 뭘 하나 싶었더니 불현듯 날아올라 돌다리 건너편에 제트기처럼 멋지게 착륙하는 오리 등... 


 나와 다른 신체를 가진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어쩜 저리 멋진 생물체가 있을까, 감탄하게 된다. 새삼 하늘을 뒤덮은 양털 모양 구름이 손에 만져질 듯하다. 구름, 새, 강물 그리고 물속에 비친 하늘과 새와 그리고 나. 이 모든 풍경을 마음속에 품고 카페에 들어와 차를 한 잔 시켜 아직은 텅텅 비어 넘쳐나는 좌석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 잡는다.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거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는다.......


 세상에 이만한 사치가 또 있을까? 진정 내공 있는 쾌락주의자가 되려면 사는 집을 멋지게 가꿔 자족을 통한 만족을 누리는 법을 익혀야겠지만 우선 지금은 이 정도 사치는 허용하려 한다. 왜냐고? 기분이 좋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 기분에 책임을 질 필요가 있고 특히 성인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나처럼 기분이 시도때도 없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은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생활의 모든 것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어린아이 돌보듯이, 하지만 다 큰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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