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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Mar 24. 2023

지속 가능한 밥벌이에 대한 고민


 


  시간 부자가 되고 싶어 파트 타이머의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5시간을 일하나 9시간을 일하나 피곤함의 정도는 비슷했다. 체감상 노동 시간이 4시간을 넘어가면 그 두배로 일을 할 때와 매 한 가지로 퇴근 후 채 풀리지 않은 피로의 찌꺼기가 남았다. 보상 심리로 넷플릭스를 켜는 일이 없도록 개운하게 퇴근하려면 노동 시간이 4시간 이하여야 했다. 하지만 고용되어 일하면서, 전문직이 아닌 일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시간을 일해 생활비를 번다는 건 불가능했다. 내 기준 최소 생활비와 긴급 경조사비를 충당할 만한 돈은 적게 잡아도 7~80만 원이었다. 4~50만 원은 생활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되었든 하루 4시간 이상 노동은 필수인 셈이다. 



 5시간이나 9시간이나 피곤하기는 매 한 가지일 거 차라리 풀타임 일자리를 구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실 지금도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있다면 해볼 마음이 없지는 않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쏙 드는 일자리란 세상에 없겠지만, 적어도 몇 가지 조건만 갖춰진다면 금쪽같은 시간을 투자해 볼(?) 생각이 있다. 



 그 조건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감정 노동이 있더라도 그것이 당연시되지 않고 분위기상으로나 시스템상으로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둘째,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의 도덕성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한다. 셋째, 배울 점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넷째, 직원의 의견을 수용할 의지가 있는 상사가 이끄는 조직이어야 한다. 



 위의 조건들은 중요도 순이 아니다. 하나같이 우열을 가리기 힘든 위의 조건들 중 하나라도 갖춰져 있지 않으면 풀타임으로 근무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이와 같은 바람이 배부른 소리로 들릴 거라는 걸 잘 안다. 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말이 바로 지금도 양귓 가에 꽂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쉽게 내 시간을 풀타임 근무에 허락(?) 하지 않는 이유는 내게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타이틀을 거머쥔 것도 아니고, 입이 떡 벌어질만한 전문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의 가치를 폄훼하고 싶진 않다. 어느 누구나 그러하듯 나라는 인격체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존중받으며 일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쉽게 '사회 생활은 원래 힘든거야. 다들 힘든데 먹고 살려고 참고 사는 거지.'라고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죽지 못해 일하는 삶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위의 네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 스스로 그런 사업 모델을 구상해 볼 만한 아이템이나 비전도 아직은 희미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먹고살 만큼만 노동하며 최대한 소비하지 않는 삶이다. 하지만 이 삶 또한 근본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금에야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집에 빚이 없으니 나름의 철학에 따라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 삶이 이어질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강아지가 아플 수도 있고, 어쩌면 아이가 생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가 걱정이 되어 불안을 과로와 맞바꾸고 싶진 않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건강하게 낳아주셨으니 현재 선택한 삶의 방식 안에서 최선을 다해 지속 가능하면서도 내가 가진 재능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개발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만든 규칙에 보다 엄격해져야 한다. 꿀의 달콤함을 오롯이 느끼려면 우선 깨끗한 물로 입을 헹궈야 하는 법이니. 


ps. 어제처럼 밥 차리기 귀찮다는 이유로 9,800원짜리 샐러드를 사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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