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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Apr 03. 2023

오리는 비교를 하지 않는다


 여느 때처럼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알람을 끄기가 무섭게 카톡으로 눈을 돌렸다. 채팅창에 새로운 알림이 떠 있었다. 친구가 공유한 그 글은 누운 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만큼 재미있었다. 순간 '부럽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글의 저자는 나처럼 지방 미대를 나온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우리의 경험은 무대만 다를 뿐 같은 선상을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했고 비슷한 통찰을 했을지언정 그와 나는 달랐다. 나는 내가 겪은 일들을 그처럼 생생한 언어로 쓸 줄을 몰랐다. 소위 말하는 '글빨'이라는 게 내겐 없었다. 


 어릴 때는 곧잘 글짓기 상을 받곤 했다. 책벌레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또래보다 책을 많이 읽었으며 일기도 즐겨 썼던 덕일 거다. 내 글쓰기 실력이 수직하강한 시기는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책을 읽지 않고 글쓰기를 게을리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 후 과제할 때를 제외하곤 성심을 다해 글을 쓴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브런치팀에서 나를 뽑아준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금도 나의 필력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평타 이상을 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읽었던 그 작가의 생생한 지방 미대 체험기는 내 마음속에 깊은 공감과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부러움의 파도 속에 잠겨 있기를 잠시, 번뜩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우주가 머릿속에 펼쳐진 것이다. A가 B를 부러워한다 - B는 C를 부러워한다 - C는 D를 부러워한다 - D는 E를 부러워한다 - E는 F를 부러워한다............. - Z는 A를 부러워한다 - 또다시 A는 B를 부러워한다 - 그리고.........


 이 우주에는 끝이 없었다. 어릴 적 잠들기 전에 늘 하던 상상처럼('세상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우주 다음에 우주 우주 다음에 우주 우주 다음에 우주 우주 다음에 또 우주.........) '부러움'의 우주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가 그 사람의 필력을 부러워했던 만큼 어떤 사람은 또 나의 뭔가를 부러워할 것이다. 서로의 어떤 점을 두고 '부럽다'라고 생각한 이 사람들은 각자 머릿속으로 '남을 두고 부럽다는 생각을 이렇게 자주 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뿐일 거야.' 하는 착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한다는 사실 따윈 까마득히 모른 채.



 



 오늘 아침 버스를 기다리다가 오리 두 마리를 봤다. 유유히 헤엄치며 사이좋게 아침 식사를 즐기는 녀석들의 모습에서 '저 녀석은 먹이를 잘 찾아서 좋겠다.' 라든가 '저 녀석이 방금 잡은 먹이가 내 것보다 더 크네. 부럽다.' 따위의 고뇌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오전 8시 30분의 햇살을 기분 좋게 머금은 채 얕은 물살을 물갈퀴로 가로지르며 때때로 목도 축이고, 그러다 먹이를 발견하면 가져다 부지런히 입에 넣을 뿐이었다. 


 새들의 세계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들은 분명 친구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굳이 먹잇감이 풍부한 곳에 혼자가 아니라 둘이 돌아다니며 먹이를 나눠 먹진 않을 테니까. 너무 인간의 시각에서 하는 얘기 같기도 하지만, 아무리 (명백히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오리일지라도 굳이 좋아하지도 않는 녀석과 중요한 아침 시간을 함께 보낼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삶에서 중요한 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이 활동이며 광합성을 하는 일이다. 백세 시대라곤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간의 삶인 것을, 비교 같은 걸 하며 시간을 축내기에는 너무 아깝다. 남이 나보다 돈을 잘 벌든, 말을 잘 하든, 글을 잘 쓰든, 얼굴이 예쁘든 상관하지 않게 되면 오히려 그 사람의 참모습이 보인다. 저마다 다를 것이 분명한 오리들이 우리 눈엔 다 비슷해 보이듯,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본 인간의 모습은 다 까만색 점에 불과할 것이다. 오리는 오리, 사람은 그저 사람. 오리든 사람이든 그저 생물. 생물은 그저 태어나 살다가 죽는 게 운명. 비교하는 것도, 부러워하는 일도 이 한 생애에 국한된 한정된 에너지를 쏟기에는 한없이 시시한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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