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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Mar 30. 2023

오래된 주택가를 좋아하는 이유


 

 오전의 햇살이 살갗에 고스란히 다가온다. 아직 봄이 지나지 않은 지금, 햇빛이 사뭇 부드럽다. 

본래 그림을 그리려고 얻은 작업실이었다. 헌데 그림은 몇 달 그리다 말고 그만두었다. 부동산에도 내놓았으나 2층인 데다 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인지라 몇 달째 공을 쳤다. 결국 마음을 내려놓고 이곳에서의 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족히 30년도 넘어 보이는 작업실 창문은 여름에 태풍이라도 오면 깨질 것처럼 위태롭다. (실제로 금이 간 한쪽면을 새로 갈았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라보는 풍경 역시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얼기설기 늘어져있는 전깃줄, 벽돌 혹은 타일로 겉면이 뒤덮인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는 이 동네의 연식을 가늠하게 한다. 주변에는 배달음식점이 많아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다. 그런 가운데 재잘대는 새소리가 들리고, 어린이집에 등원한 아이들 목소리와 그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합창곡을 이룬다. 작업실 창문에는 80년대에 유행했을 법한 투명한 장미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비행기와 오토바이가 함께 지나간 탓에 잠시 귀가 먹먹하다. 


촌스러움과 빈티지 그 사이 어드메를 지향하는 장미꽃무늬



오토바이 때문인지 혹은 낯선 사람 때문인지 건너편 건물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쾌적한 동네는 아니다.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대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공부하기 좋은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나는 신축 대단지 아파트보다 이 동네가 더 좋다. 사람 사는 냄새 같은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는 냄새야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나는 법.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도 쾌적함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배달 오토바이가 성행했던 시대는 아니니 소음은 덜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외에는 닮은 구석이 많다. 


 여름에는 찌는 듯 덥고 겨울에는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집이었다. 집 바로 앞은 차가 다니는 도로여서 어린아이가 통학하거나 놀기에 적합하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 동네에는 무지개가 자주 떴다. 거실과 부엌이 따로 분리되지 않은 방 한 칸짜리 집 안에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며 무지개를 참 많이도 봤다. 쌍무지개, 기우뚱한 무지개, 커다란 무지개, 작은 무지개...... 햇살이 유난히도 따스해서였을까. 



 이 동네 역시 무지개가 자주 뜰 법한 햇살이 맑은 동네다.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냐고 묻는다면 시원하게 확답할 수는 없다. 어릴 적 이 비슷한 환경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어느 동네가 더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면 편안하고 안전한 계획도시의 신축 단지보다 오래된 구도심 쪽을 택할 거다. 그곳에는 세상이란 곳을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의 첫 햇살과 첫 공기와 첫 무지개, 첫 이웃 아주머니, 처음 사귄 친구, 처음으로 마주친 길고양이들과의 만남의 기억이 묻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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