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 니는 쓸데없는 일 좀 하지 말고 니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을 좀 해라."
여기서 '가시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지칭하는 3인칭 대명사(?)이며, 위의 발화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우리 어머님이시다. 그녀는 자기 딸이 당신 주장에 따르면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마트 판매 행사 알바 따위를 할 때마다 가슴을 치며 저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엄마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스물대여섯이었던 나보다 어린 친구 하나는 "언니가 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라고 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기세였다. 심지어 마트에서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들까지도 서른 넘은 다른 언니에게 "이런데 말고 좋은 직장 구해서 그리로 가야지."라고 하셨다. 정작 그 언니 본인이 회사 들어갔다가 적성에 안 맞아 다시 판매직으로 돌아왔다고 설명했는데도 말이다.
어린 시절 겪었던 따돌림 경험 때문인지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싫어할 것이고, 혹은 싫어하게 될 것이며 그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어떤 '신념'같은 게 내 안에 있었다. 그 신념이란 몸 속에 켜켜이 쌓인 신체적 감각이었다. 그 당시, 발표를 하려고 칠판 앞에 선 나를 서른 몇명쯤의 눈동자가 노려봤다. 그 기억은 잊을만 하면 올라와 지옥 속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저승사자 같았다.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공포로 각인된 기억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 더욱이 연약한 신체 조건 때문에 홀로 떨어져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무리에서의 이탈'이란 세포 단위에서부터 새겨진 아주 원초적인 공포임에 틀림없다. 사방을 더듬어봐도 붙잡을 게 하나도 없는 낭떠러지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나는 그 시공간을 홀로 버텨야 했다. 그때 새겨진 공포는 그 이후의 인간관계를 비롯해 사회적인 경험을 쌓으려고 할 때마다 내 발목을 잡았다. 남들 보기엔 별 것 아닌 실수에도 '오늘 일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하고 혼자 고민하느라 밤을 새웠고, 스스로의 행동 하나하나에 비판의 잣대를 날카롭게 들이댔다. 이 모두가 두려움 때문이었는데, 나의 두려움 스위치는 조그마한 자극에도 시도 때도 없이 건들리는 유난히도 예민한 녀석이었다. 어쩔 때는 이 모든 걸 견디는 데 넌덜머리가 난 나머지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곤 했다. 아니, 꽤 오랫동안 그런 생각에 빠져 지냈다.
그렇게 사람을 두려워했던 내가 어떻게 판매직 알바를 하게 되었을까?
이 점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어릴 적부터 줄곧 괴짜로 여겨져 (유치원 다니는 어린애가 K사의 진*명*애청자였으니 말 다했다) 친구 사귀기가 요원했던 나, 못 생겼다는 소문(누가 낸 거야 대체)때문에 전학 가자마자 따돌림을 당했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고 늘 소통하고 싶어 했다.
원래는 카페 알바를 하고 싶었다. 깔끔한 앞치마를 입고 손님들에게 살갑게 인사하며 커피를 타주는 모습이 아직 20대 사회초년생인 나에게는 참으로 멋져 보였다. 안타깝게도 나를 자기네 가게에 영입해주는 사장님은 단 한명도 없었다.
"낭창해 보인다는 소리 많이 듣죠?" 어느 카페 면접에서 사장님께 들은 말이다. 정말로 낭창했던 나는 거기다 대고 "네~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라고 대답해 버렸다. ^^; 이거 참. 지금 생각하면 그녀의 뻔뻔스러움과 나의 낭창함을 넘어선 궁극의 호구스러움에 헛웃음만 절로 난다.
결국 '깔끔한 앞치마'에 대한 로망은 성사되지 못했다. 깔끔한 검은색 앞치마 대신 요란한 캐릭터가 그려진 촌스러운 연두색 앞치마를 둘러야했고, 그 앞치마보다 더 끔찍한 머릿수건을 하고 일하는 신세가 되고야 만 것이다.(덕분에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아주 열심히 고개를 돌렸다. 그 사람이 뚫어져라 쳐다봐도 끝까지 모른 척 했다.^^;)
생각해 보면 그 '쓸모없는 일'을 꽤 오래 했다. 장르가 중간중간 바뀌긴 했지만, 시식 시음과 판매 일을 한 세월을 한데 모아 합치면 장장 2년은 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참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났다. 술이라도 따르라는냥 시식잔을 들이밀며 음흉한 눈빛으로 훑어대던 x저씨를 비롯해 낄낄대며 시식용으로 내놓은 두유를 훔쳐 달아나던 고등학생들, 자기 집 개인 하녀(?)라도 되는 양 나에게 쌀가마니가 무거우니 카트에 좀 실으라던 고객님(이라고 쓰고 놈이라고 읽는다), 시식대를 마구 흔들어대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더니 멀리서 뛰어와 "방금 우리 애들한테 뭐라고 했어요?!"라며 죽일 듯이 노려 보던 엄마라는 이름의 여자 등등......(앞의 세 사건은 주변의 행사 아주머니들과 이야기하며 다 풀었지만, 마지막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었던 지라 누구한테 말도 못했다. 시식대 뒤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울던 그 시절이 아직도 종종 생각난다.)
손님들 뿐만 아니라 인력 업체도 무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행사가 취소된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 모 회사와의 일이다. 시간에 맞춰 행사 장소에 가서 담당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 그 행사 취소됐어요. 안 해도 돼요~."하며 별 일 아니라는 듯 사과 한마디조차 없었던 그녀. 호구스럽기 그지없던 그 시절의 나는 대꾸 한마디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우리 엄마는 대학까지 나온 애가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냐고, 네 가치를 인정받을 일을 하라고 가슴을 치며 얘기하셨다.
나는 왜 굳이 그 일을 선택했을까?
무언가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했는데 그 일로 인정받지 못하면 혹은 그 일을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진짜' 내 필드의 직업 세계에 한 발자국을 담그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 안에서 나의 쓸모없음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다는 정체 모를 검고 끈적끈적한 마음속 깊은 골짜기.......
그렇다면 이 모든 '쓸모없는 일'은 정말로 쓸모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일을 하며 온갖 진상들을 만났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은 다음날 아침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맡은 바 임무를 다 하는 사람이더라 하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한 스푼씩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어이없는 일을 겪을 때마다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들과의 수다로 감정을 씻어냈던 경험들, 그들과 나누었던 소소하고도 따뜻한 우정이 인간관계에 대한 나의 왜곡된 인식을 조금씩 바꿔 주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쪽 일을 해봤기 때문에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다른 분들께 보다 살갑게 대하고, 그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비록 돈을 내고 이용한다 한들 사람이 제공하는 무형의 서비스에는 그들의 피와 땀과 마음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지금의 나는 과거의 상처로부터 툴툴 털고 일어나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당당히 걸어 나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선언하고 싶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이란 없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