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다이어리
문득 요즘 <포켓몬스터>의 피카츄가 된 것만 같다. 요새 포켓몬빵이 유행이어서? 정전기가 심하게 생겨서? 아니다. 몸통 박치기를 쉼 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통 박치기’는 피카츄의 주요 기술 중 하나이다. 전기 포켓몬인데다가 몸통도 작은 피카츄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엔“가랏 피카츄! 몸통 박치기!”라는 대사가 나오곤 했다. 고급 기술들도 좋지만 급할 때 이 기술 만한 게 없기 때문이 아닐까? 가장 단순한 것이 최선의 방법일 때가 있으니까.
뜬금없이 스스로를 피카츄에 빗댄 이유는 하루하루 어딘가 깨지고 부딪히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유튜브 콘텐츠 기획자로 새로운 일을 시작한 이래로 취약한 부분들이 제대로 건드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는 다음 세 가지 부분에서 그렇다.
1. 끊임없는 지적
나는 지적에 약한 편이다. 기본적으로 예민한 편이고, 다른 이들의 평가에 민감한 편이다. 20대 때만 해도 업무에 대한 지적을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 오인하곤 했다. 외부의 지적과 평가가 수반되어야만 성장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완벽하고 반듯한 모습으로 보여야 사랑받고 관심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모범생 시절 때문인지, 작은 부분이라도 지적을 받으면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의 품이 넓어지게 되었고, 새 일터에 와서도 마음가짐을 잘 가지기 위해서 계속해서 내 인지를 수정해왔다. 그렇지만 약효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곳에선 지적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아이템 제안, 기획안 작성, 완성된 영상까지 매 단계마다 지적을 받는다.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니까. 나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 나의 아이디어를 점검 받아야 한다.
그런데 마음 단단히 먹은 것도 몇 주가 지나고 새 공간에 적응하랴, 영상 기획하랴 이래저래 부단히 에너지를 쓰다보니 면역력이 떨어졌다. 하루는 제안한 아이템 모두가 통과되지 않았는데, 마침 피곤했던 터라 모처럼 마음이 무척 속상하고 좌절스러웠다. 처음 작성한 영상 구성안도 부족한 점들이 많아 여러 얘기들을 들어 피로가 쌓인 상황이었다.
한번 마음이 위축되면 상습적으로 구겨지게 마련이다. 내 체력과 마음을 잘 살펴서 지적에 열려있도록, 일에 대한 지적을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겠다. 내 성장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
2. 계속되는 부탁
5~6년 간 쌓아온 나의 경력을 내려놓고 다시 신입이 되었다. 가뜩이나 완전히 새로운 분야인데다가 젊은 조직이다보니 처음부터 적응할 부분이 꽤 많았다. 업무 툴부터가 익숙지 않아서 편안해지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고, 스스로 기획, 구성, 연출, 소스 찾기까지 해야 하는 긴 과정에서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나에게 모든 걸 친절히 알려줄 인력이 없기에, 동료들에게 번갈아가며 물어 물어 습득하는 과정도 꽤나 괴로웠다. 딱 봐도 바빠보이는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며, 혹시 이거 어떻게 하냐고 묻는 게 힘들었다.
스스로 알아서 해내는 편이고, 도움을 받는 것보단 도움을 주는 게 훨씬 편안한 성격이라 더욱 그랬다. 게다가 모르는 게 많으니 협력해 일하는 감독, 편집자, 인턴 분들에게도 폐를 끼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촬영 시간은 길어지고, 인턴 분에겐 급하게 일을 드리게 되고, 노하우가 부족해 너무 길어진 스크립트 때문에 편집자 분에게도 힘듦을 주고... 이런 고민을 동료 분에게 털어놓으니,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말했다.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한 롤이니 각자 자기 일을 한다 생각하고 너무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부탁하고 성가시게 하는 게 괴롭겠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조금 지나면 알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게 다른 이에게 폐가 아닐까? 지나치게 의식하는 건 주객이 전도된 것일 수 있다. 내 일이 잘 되고 있는지에 집중을 한다면 사실 그 외의 것들은 덜 중요할텐데, 주변을 많이 의식하다보니 일의 진행 그 자체보다도 일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에 더욱 신경을 쓴 것이다.
미안할 일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사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미안하다는 건 내가 누군가에게 빚졌다는 뜻이니까. 주변에 도움을 적극적으로 청하며 사는 건 아주 건강한 태도라고 했다. 담백하게 부탁하고 특별한 경우엔 마음을 담아 잘 보답하면 된다. 나도 분명 도움이 되는 구석이 있을 거니까. 다른 이의 선의를 믿자.
3. 날것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후두둑
희한한 습관이 있다. 내가 올린 SNS 게시물 댓글을 읽기 힘들 때가 있다.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의 댓글도 마음이 내킬 때 비로소 몰아서 읽곤 한다. 아마 이 또한 평가에 예민한 성격 때문인 듯하다. 안 좋은 댓글이 올라올 일이 별로 없는데도 대체 뭐가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그런데 유튜브 매체에 영상을 올리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 이 습관이 제대로 직면하게 된 상황이 된 것이다. 댓글 수와 댓글 내용이 중요한 평가 척도이기에 당연히 살펴야하고, 혹시나의 상황에 대비해 자주 자주 챙겨봐야한다. 정체 모를 두려움에 회피하는 습관을 이젠 청산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나를 해칠 수 없다고 생각하도록 하자. 누군가 남긴 한 문장이 내 기분을 좌우할 수는 없는 거라고. 나는 훨씬 크고 강한 존재임을 떠올리자. 그러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하다. 회피하고 싶을 수록 더 열어 봐서 나를 단련하자. 그러다보면 조금씩 좋은 쪽으로 무뎌질 것이다.
몸통 박치기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면 '어? 아무렇지 않은데?'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언젠가 훌쩍 성장해있을 나를 기대해본다. 일종의 진화라고 해야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익숙한 대로 사고하고 행동하기보다는 뭔가가 달라져야 한다. 마음을 고쳐 먹는 거다. 그것부터 시작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