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셋 말하기
학창시절에 방송반에서 아나운서를 해 본 이들은 알겠지만, 학교마다 정형화된 안내 방송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방송반의 경우에도 그랬다. "잠시(↗) 안내방송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영어듣기 방송을 실시할 예정이오니....↗"라는 짧은 문장에도 특정한 음율이 있었다. 대체로 아나운서는 여학생이 맡았고, 비음을 많이 써서 곱게, 예쁘게 내는 것이 포인트였다. 나다운 소리를 발굴하는 작업과는 꽤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내 목소리가 교실 곳곳에 울려퍼진다는 것은 정말 짜릿했다.
고등학교 동아리에 있어 가장 큰 권력을 갖게 되는 2학년이 되어서는 저녁시간 교내 라디오방송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다른 아나운서 친구와 둘이서 진행을 하기도 했고, 단독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작가가 따로 있진 않았으므로 원고를 직접 쓰고 낭독하고, 음악은 인터넷 PC의 '벅스 뮤직'으로 틀었다. 그래서 가끔 윈도우 알림음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그러고는 애써 모르는 척했다). 아무튼 약간은 주먹구구식이었지만 방송 시간은 늘 즐거웠고 지금 보면 조금 부끄럽다만, 내 방송 타이틀도 정성껏 지었다. 엄마의 추천을 받아 지은 '다희의 세잎클로버(행운 말고 행복이 늘 주변에 어쩌고...)',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영감을 받은 '레인보우 칸타빌레(예쁜 단어들을 그냥 조합했다)'와 같은 적당히 예쁜 타이틀부터, 나름 '모던록 소녀' 감성을 드러내고 싶었던 '다희의 Let there be love(나 오아시스도 아는 애야)' 같이 센티멘털한 타이틀을 가진 프로그램까지...
이렇게 여러 프로그램을 거치며 조금씩 나를 조금씩 표현할 수 있었다. 초반에는 누구누구가 말한 명언, 어디서 한 실험 같이 남의 이야기가 소재였다면 점점 나의 이야기를 하는 법을 알게 되기도 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은 크리스마스 때였다. 내가 어렸던 IMF 시기에 우리 집이 한동안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때의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추억을 짧게 풀어봤는데 그 작업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에세이 쓰기의 즐거움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게 아닐까? 글을 쓰면서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해지고 위로도 되고... 더군다나 내가 쓴 에세이를 직접 읽고 관련된 음악을 선곡한다니! 어쩌면 라디오를 전혀 듣는 편이 아니었으면서도 이때부터 라디오 DJ라는 직업에 사랑을 품게 되었지 않았을까.
어렴풋이 ‘기획'이라는 것도 해보았던 것 같다. 내가 고2였던 2008년, 누구보다 앞서서 '레트로 콘셉트'를 표방하여, god나 신화 같이 전성기가 살짝 지난 그룹들의 음악을 틀었는데, 그런 날에는 급식소에서 그 음악들을 들으며 밥을 먹는 학생들이 아주 즐거워했다. 한창 인기를 얻던 원더걸스가 신곡 'so hot'을 발표한 날에는 제빨리 청소 시간에 선곡했다. 나의 선곡과 이야기에 기뻐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아주 많이 설렜었다. 무엇에 설렜을까? 다른 이들을 기쁘게 했다는 것, 나의 역량으로 좋은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었을까? 물론 엉망진창인 구석도 있었다. 어떨 때는 사실 노래를 한 5곡 연달아 선곡해놓고 급식소로 뛰어가 밥을 먹기도 했었으니(와우).
아무튼 이야기가 잠시 샜지만, 다시 ‘말하기'라는 주제로 돌아오면, 이 때 나의 말하기는 지금과는 아주 다르다. 예쁘게 말하는 습관이 박혔다고 해야할까? 이런 부자연스러운 톤에 이후 아나운싱 훈련까지 더해져 처음 라디오 DJ가 되었을 때 어색한 투를 벗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방송부원으로서 하는 방송은 자유 방송이라기보다 늘 정해진 멘트를 읽는 안내 방송과 정해진 원고를 읽는 방송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이크 앞에서 경직되는 부분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불완전하고 빈틈이 많았을지언정 이후에도 계속해서 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했던 걸로 보아, 그리고 끝내 라디오 DJ가 된 것으로 보아 나는 이 때 아주 행복했던 것 같다. 오로지 즐거움뿐이었을 테니 하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