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라디오 DJ가 되어 (1)

마인드셋 말하기

by 다이앤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 중, 내릴 정류장이 다가와 하차벨을 누른다. 그러나 버스 기사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여 하차문이 열리지 않는다. 열린 승차문으로 승객들이 들어오고만 있고다. 이제 곧 버스는 다시 출발할 터. 버스 안엔 꽤 많은 승객들이 있고, 소란스러운 편이다.


아마 이 경우 우렁차게 "기사님, 문 열어주세요!"라고 외치는 사람들보다는, 작은 소리로 애타게 몇 번 외치다 포기하는 사람, 망설이다 그냥 한 정류장 더 가기로 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나 또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버스에서 이런 경우에 소리 내어 외치는 게 힘들었다. 용기를 짜내 나름 외쳐봤지만 그 소리가 앞까지 전달되지 않았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이런 경우 무척 민망할 뿐더러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쭈뼛쭈뼛 망설이는 나도, 그러느라 힘이 약해져 모기소리처럼 뱉어진 목소리도, 왠지 희한하게 나가는 말투도, 결국 들리지 않은 결말도 전부 부끄러웠다. 그러다보니 에너지가 적은 날에는 이런 경우에 아예 그냥 체념한 채로 한 정류장 더 가는 걸 택하기도 했다. 많는 시간을 머뭇거렸다.


항상 이런 건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모범생 반장이었고, 그러다보니 '반장' 완장의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에서는, 그러니까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거나 학급 회의를 주재하거나 할 때에는 오히려 내 목소리를 내는 것에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소리가 크진 않았으나 주변인들이 조용해주고 주목해주니까. 그러나 버스에서라든지 친구에게 말을 붙일 때라든지 그 외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나는 내 의사를 전달하는데 서투른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었는데 내 기척조차 알아차리지 못해서 의도치 않게 무시당했던 적도 수없이 떠오른다. 여기에 과하게 주변을 신경쓰는 성격마저 더해지면서(난리났다!) 내가 투명인간이 된 그 장면을 목격한 제3자가 느낄 머쓱함까지 신경이 쓰여, 목격자 분의 민망함을 덜어주기 위해 짓는 '으쓱하는 표정'까지 지으려 노력할 정도였다.


어린이 시절엔 오히려 어른들에게 잔소리를 할 정도로 의사 표현이 확실했던 나의 존재감이 이렇게 투명해져간 것은 10대 시절 내 성격의 변화와 아주 관련이 깊을 거라 생각한다. 관심과 사랑을 찾던 나는, 모범적이고 성적이 좋아질수록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게 나의 마음과 행동은 내 바깥에 있는 타인의 인정, 주목 등에 기반하게 되었다. 마치 배의 키를 놓쳐버린 선장처럼 나의 중심부가 파사삭 스러져버린 것이다. 나의 자아는 마치 산 정상에서 낮은 압력 속에서 만들어진 밥처럼 설익어버렸다. 그렇게 주변을 의식하는 경계 많은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특급 카드인 '성숙한 학생되기'를 기꺼이 수행할수록 내 목소리 톤은 낮아졌다. 차분한 분위기를 얻었으나 생기를 잃었다. 근원적으로 부실한 자신감은 내가 내놓는 말의 힘을 약하게 만들었다. 전달하려는 의지 없이 내뱉어진 말이 상대의 귀에 적중될 리가 없다. 가뜩이나 부실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데,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 빠르고 간단하게 의사를 전달하려 하는 경상도 사투리의 영향으로 특히 발음이 부정확하고 발성이 탄탄하게 뻗어나가지 못했다(경상도 사투리와 말하기에 대해서는 곧 따로 다룰 예정이다). 그런 탓에 10대 때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영상 속 나의 모습을 보면,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노느라 흥분한 상태의 나의 발음은 사실 거의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이다. 지금 내 목소리를 듣는 분들은 아마 상상하기 어려울 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기본 발음과 발성이 약했기에 조금만 텐션이 올라가거나 마음이 긴장되면 금방 무너지는 것이다.


그나마 강점이 있었다면 타고나길 조금은 낮은 편인 목소리 톤과, 강원, 경상 지역 출신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조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차분한 편이었던 점이다. 그리고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은근한 '관종'이었다. 똑똑해보이거나 멋져보이는 게 좋아서 발표 시간엔 세련된 명언을 이용해 썩 괜찮게 들리는 말투를 따라해 발표를 하곤 했고, 그럴 때마다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관심이 기뻐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방송반에 지원해 교내 아나운서가 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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