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실패하려는 것

PD 다이어리

by 다이앤

서울로 이사온 지 한 달 반쯤 지났고, 새 일을 시작한 지도 한 달여가 지나간다. 그 사이에 나는 뉴미디어 PD로서 연출, 구성한 영상을 두 개 발행했다. 부산에 살 때보다 요리 해먹는 빈도도 늘고, 과일과 채소도 대체로 잘 챙겨 먹고, 최근엔 운동도 시작했다. 두 달도 안 되는 시간에 꽤나 적응한 것이다. 물론 서울살이가 처음은 아니다만, 6년 머문 곳을 떠나와 다시 0점에 맞추고 시작한 것 치고는 훌륭한 적응력 아닌가? 첫 상경을 앞둔 스무살 겨울, 고향과 가족을 두고 떠나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소중한 건 곁에 있다는’ 조용필 노래 가사를 눈물 흘리며 곱씹던 나에서 한참은 발전한 듯하다. 열 두 해가 흘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만.


아무튼 나름 순조롭게 적응이 되어가는 와중에, 불현듯 그것이 다가왔다.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함께 있으면 불편한 우울 말이다. 나의 우울은 꽤나 양상이 분명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의 마음을 의심하게 되고, 이에 대한 서운함을 참기 힘들어지고, 내 존재가 짐스럽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불안해하고, 그 순간에서 나를 잘 구출시키지 못한다. 많이 나아졌기에 근 1년 사이에는 만날 일도 거의 없었는데… 이번엔 예상치 못한 시점에 오는 바람에 한 주가 피로했다.


잘 적응해가고, 다음 영상 아이템도 잡아놨고, 어려울 게 없는데… 왜 이런 시점에 우울이 왔지? 뭔가 어렴풋이 알 듯한 이 느낌… 기억이 날듯 말듯 하여 몇 해 전 쓴 글들도 뒤적여보았는데, 한 글에서 나는 ‘성취 불안’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아… 나 이런 게 있었지, 이 부분에서 취약했지, 모처럼 나에 대해 들여다본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성취 불안’은 쉽게 말하자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반쯤 마취된 채로 무기력하게 있겠다는 적극적인 지향 같은 것이었다. 뭔가를 성취하는 것보다도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차라리 심적으로 편안하기에, 오히려 성취하게 되는 상황을 불안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성취하는 게 좋은 거 아닌가 싶겠지만, 무언가를 성취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필요하고, 그 사이 사이 실패와 좌절도 겪고 자괴감도 느껴야 하는데 당시의 나는 이런 부침들이 벅찼던 시기였다. 차라리 나를 은근한 무기력에 감싸서 그냥 나태하게 근근히 먹고 살게만 만들면 (기쁨도 없지만) 좌절도 없이 지낼 수 있었기에, 그냥 가만히 머무르길 택하는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가만히 있기 위해서 아주 교묘하게 심리적 공작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글 속의 상황은 이러했다. 다가오는 주말 양일에 오전 9시 요트 수업 일정이 있는데, 그 주 초반부터 서서히 평소보다도 더 늦게 잠들기 시작해 그만큼 더 늦잠 자고… 그렇게 루틴이 망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자정방송을 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오전부터 부지런 떠는 게 부담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난 요트 운전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요트를 탈 때마다 틀림없이 행복했었기에, 한 주 정도 잘 관리하면 하루 이틀 정도는 소화해낼 수 있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나의 바람이나 이상과는 다르게 한 편에서는 내심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체력적으로 소화하기 힘들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추측하자면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는 모드’가 켜지는 것에 부담을 크게 느꼈던 것일 수 있다. 요트 수업을 잘 받고 활력이 생기면 더 정력적으로 살게 될 것이고, 그럼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무언가를 쟁취해야 하고… 분명히 선순환인데, 나는 이 선순환이 무섭고 두려웠다.


어쩌면 공부 잘하는 10대 시절, 내가 노력해 얻은 성취에서 기쁨보다는 부담을 더 느꼈던 것 때문일 수도 있다. 그때의 나는 내 행복과 즐거움에 무딘 편이었고, 가족의 평화나 엄마의 행복 등이 더 중요했었다. 삶의 중심 추가 ‘나’에게 있지 않고 외부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감각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나의 선전이 가족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어서 안도했고, 나의 성취로 엄마가 대리 만족을 느낀다는 것에 무엇보다 의미를 느꼈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를 위한 성취를 느껴본 경험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성취라는 것에 긍정적인 감정이 바로 따라오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성취를 유지해야한다는 부담과 손에 쥔 걸 놓칠 것 같은 불안이 컸던 듯하다.


다행히 이 글을 썼던 것이 5년 전이고, 그 사이에 나는 많이 자랐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주 무겁긴 했지만 많은 도움으로 내딛을 수 있었다. 다른 요인에 공을 돌릴 수 없는 온전한 나의 성과들이 쌓였다. 라디오 DJ로 일하면서도 1년 반 동안 교양 프로그램 작가 일을 썩 잘 해냈다. 보이스 트레이닝 강사로서 학생들로부터 괜찮은 평을 받았다. 직접 백화점 문화센터에 커리큘럼을 제안해 강의를 오픈했고, 그 덕에 백화점에서 라이브 커머스 방송 진행을 제의받기도 했다. 프리랜서 성우로 온라인 마켓을 뚫어 일을 확장했다. 이런 경험들 덕에 라디오 DJ 일을 그만둔 후에도 예능 프로그램 보조 작가 일을 잠시간 경험할 수 있었고 라이브 커머스 진행도 제대로 해볼 수 있었다. 유튜브 채널도 운영했다. 그리고 이 성취들을 쌓으며 나는 아주 즐겁고 기뻤다. 어떨 땐 눈물이 날 정도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노력. 직접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올리는 노력은 비로소 한 사람을 탄탄하게 만들어준다. 새로 열린 많은 가능성들에 습관적으로 우울이 오려했으나, 나는 5년 전보다 나를 훨씬 잘 이해하고 있다. 앞으로 서울 이곳에서 나는 다양한 도전과 기회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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