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다이어리
이번 아이템은 내 관심사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평소 사람들의 말씨나 사용하는 어휘에 관심이 많기에, 세대 차이 나는 부모님의 말하기는 자주 나의 분석 대상이 되곤 한다. 예상치 못한 데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유래 모를 영어 단어-캄프라치, 스페아-들도 그렇고, 지금은 잘 안 쓰이는 고유어들도 그렇고, 일본어 영향을 받았을 것이 자명한 특이한 발음들도 그러하다. 최애는 토마토를 도마도라고 하는 발음이었는데, 원래 단어보다 왠지 세련됨이 덜어내지고 구수함이 생기는 듯한 그 느낌에 정이 갔다. 친구들 주변에도 그렇게 발음하는 분들이 꽤 있었던지, 장난끼 많은 친구들과 대뜸 상황극을 하면서 경상 사투리 어조로 "하루에 도마도 두 개씩 먹어야해요, 으이?"하며 깔깔깔 웃곤 했다.
그렇지만 이 아이템으로 발제를 할 때에는 자신이 없었다. 나만 재밌는 거 아닌가? 다른 분들도 공감할까? 하지만 의외로 피드백 회의에서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좋아하는 소재를 영상으로 다룬다는 것, 재미있는 영상이 만들어질 거란 기대에 즐거웠다. 전문가 섭외에서 막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왜 토마토를 도마도라고 하는지에 대해서 전문적인 의견을 주실 국문학 전문가를 모시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일본의 영향이라 추측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말을 연구한 전문가의 설명을 청취하기에는 기획이 가벼웠으니까 말이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왜색을 경계하고 있기도 해서 그런지, 총 세 분의 교수님이 응하지 못하겠다고 하셨고, 한 분은 다른 전공자를 컨택하길 제안하시고, 국립국어원에서도 정확한 근거자료를 제시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라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금방 좌절하고 말았다. 사실 아이템물을 구성할 때 가장 힘든 게 섭외인데, 그간 운 좋게도 섭외가 순조롭게 되었던 터라 내가 잠시 방심을 했던 모양이다. 계속 거절만 당하고, 코로나19 때문인지 대학 연구실들도 전화를 잘 안 받고 몇 시간 끙끙대다가 기진맥진해지고 말았다. 기운이 빠진 채 아무런 소득이 없이 퇴근을 했다.
그러다 주말을 푹 쉬고 돌아와 한 동료의 조언으로 일본어학 전공자로 방향을 틀었고, 무작정 포털 검색창에 ‘일본어학과'를 쳐서 전화를 돌리다 정말 상냥한 목소리의 한 교수님과 연결될 수 있었다. 그동안 퇴짜 맞은 걸 보상 받았다 느낄 정도로, 설명력도 친절함도 훌륭하신 분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궁금하는 것에 대해 본인의 전문 지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즐거워하셨다. 이것 저것 자료도 찾고 주변 일본인에게 질의도 하면서 답변 내용을 구성해 주셨다.
‘토마도’가 ‘도마도’가 되고, ‘오토바이'가 ‘오도바이'가 되고, ‘유튜브'가 ‘유츄브'가 되는 그 이유는 몹시 흥미로웠다. 대충 짐작만 했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게 이토록 재미있을 줄 몰랐다. 어떤 건 같은 로마자를 표현해도 일본어와 우리말의 발음이 사뭇 달라서이고, 어떤 건 일본어의 한정된 모음 체계 때문이었다. 결정적으로 ‘폼클렌징'이 ‘폼크린싱'이 되는 건, 과거 특정 브랜드가 쓴 표기때문이었다. 가타카나로 ‘쿠린싱구'라 적혀있는 화장품 용기를 찾았을 때, 아, 짜릿했다. 그래서 엄마가 ‘크린싱'이라고 하는구나...
지식이 쌓인 것도 좋은데 왜인지 영상 마지막, ‘불후의 명곡' 김창완 편에서 밴드 ‘크라잉넛'이 ‘기타를 타고 오토바이 타자’를 부르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데 살짝 찡해졌다. 오래된 자신의 곡을 오래된 발음 그대로 부르는 (약간) 젊은 밴드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김창완 씨의 표정을 보니 더욱 그랬다. 영상에서 원어민(?)으로서 발음을 들려준 큰 역할을 해준 아빠가 즐거워하던 목소리도 떠올랐다.
이번 영상을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부모님 세대와 한층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려는 노력, 그를 깊이 알고자하는 정성은 사랑이다. ‘도마도'라 발음을 쓰며 친구들과 상황극을 하고, 특이하게 발음하는 부모님을 귀여워하고, 이와 관련된 영상을 만들고 열심히 그 이유를 알아보고... 이제는 안다. 이 시간들 속에, 부모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내내 동하였음을.
(22.04.06)
� 도마도 편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