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다이어리
돌파구가 필요한 때였다.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팀에서 다른 PD들과 차별화되는 나만의 강점을 보여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또 라디오 DJ로서 오랫동안 사람들과 소통해온 경험이 있으니 인터뷰물을 만들면 나만의 매력이 드러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을 하긴 했다. 원래 일상의 장에서 자신만의 루틴으로 크고 깊은 무언갈 이뤄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았다.
문제는 내가 관심이 두는 사람들이 거친 유튜브 세상에서도 관심을 받을까?라는 부분이었다. 이 가혹한 세계는 초반 5초만 보고 이탈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곳이다. 내가 일반인을 모셔 진득이 얘기를 듣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가닿지 않을 수 뜻이다.
이렇게 하고 싶은 형식은 있는데 섭외할 인터뷰이가 마땅치 않았던 그때, ‘이거다’ 싶은 분을 발견했다. 고맙게도 친구가 온라인 화제글을 보내주었는데, 짧은 내용의 글만 읽어도 사랑과 존경이 솟는 분이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제작한 작가들 중 최고령 선생님인데, 60년대 초반에 만화가로 데뷔해 활발하게 활동했던 분이라고 한다. 친구에게 말했다.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인터뷰 같다고. 춘천을 여행하던 중이었는데, 소양강 댐을 바라보는 한 카페에서 잠시 동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발제글을 작성했다(내가 만들고픈 아이템을 온라인 공간에서 팀원들에게 먼저 소개하는 형식이다). 혹여 다른 동료가 먼저 찜할까 봐 서둘러서.
올해로 82세의 고령의 작가님이 여든이 넘은 나이에 도전에 출시에 성공한 이모티콘들은 무척이나 순수하고 따뜻했다. 엄마, 아빠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이모티콘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찡해졌다. 이런 작업을 하는 작가님이라니 필시 나와 통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면 더 큰 감동을 주실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이템이 통과되어 제작에 들어가려면 구성원 과반이 찬성해야 하는데, 역시나 높은 찬성률로 통과되었다. 문제는 섭외였다. SNS를 하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활동을 오래 중단하셨었기에 족적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자료를 뒤지고 뒤져 컨택에 성공했다. 직접 연락을 한 것은 아니고, 모 협회를 통해 섭외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전화를 드리는 건가요? 여쭤보니 담당자분께서는 작가님께서 이메일을 잘 다루셔서 이메일을 발송할 거라 했다. 이메일을 잘 쓰신다니… 역시 범상치 않은 분이시겠다 싶었다.
아쉽게도 섭외 요청은 정중한 거절로 돌아왔다. 얼굴 드러내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다고 한다. 신문 취재 등도 모두 비대면으로만 진행했고, 영상 섭외도 늘 거절해오셨다고 한다. 예상하긴 했다. 드물게 남아있는 옛 인터뷰에서도 어떤 성정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유튜브 팀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으로 정말 만나고 싶은 분이었고, 인터뷰를 해내고 싶은 분인 데다가, 내게 필요한 성취를 가져다주실 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연락처를 달라고 떼를 쓰기엔 어려운 상황. 할 수 있는 뭐라도 하자 마음먹었다. 나는 열심히 타자를 눌러 편지를 썼다. 진심을 전달이라도 해보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왠지 결국엔 응해주실 것 같다는 이유 모를 예감도 들었다.
6년 동안 방송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용기를 주었다. 13분짜리 교양 프로그램 섭외를 위해서 지역 신문을 뒤져 합천의 흥부자 이장님,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시를 쓰는 농부 같은 분들을 찾아내고 오로지 전화로만 설득하고 섭외했던 경험들이 내게 힘을 줬다. 지난해 내가 부산의 한 반건조 생선 전문점 사장님을 섭외할 때도 떠올랐다. 처음에는 섭외에 응하셨다가 번복하셨는데, 담당 PD님이 우선 한번 찾아뵙겠다고 하고는 시장에 찾아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것이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걸 배운 경험이었다. 분명한 의사 전달보다도 너스레라든지 친밀함을 쌓는 거라든지 감정적인 교류나 일단 행동에 나서보는 것이 더 큰 역할을 할 때가 있다는 것. 특히 어르신 분들을 섭외할 때에는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익힐 수 있었던 6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번 뵐 수라도 있게 설득을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메일에 이 영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를 소상히 설명드리고, 출연 부담 갖지 마시고 우선 한번 커피라도 만나주십사 하는 뜻을 전해드렸다. 왜 작가님에 반했는지, 왜 나는 어떤 사람인지도 자세히 마음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예상보다 빠르게 답이 왔다. 작가님으로부터 직접 카톡이 도착한 것이다. 당신이 직접 만든 이모티콘으로 따뜻한 인사를 전한 작가님은 감사하게도 나의 마음을 받아주셨다. 후에 만나서 여쭤본, 메일을 읽고 감동을 받으셨다고 한다. 나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다. 진심이 전해지는 순간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이번엔 내게 행운이 따랐던 것이 분명하다.
며칠 후, 우린 인사동 쌈짓길 한 찻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걸어가면서 주변에 작가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계실까 싶어 잠시 두리번거렸는데 재밌게도 바로 작가님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혹시나 싶어 보내 드린 약도를 스마트폰으로 보고 계셨던 것이다. 고운 푸른빛 스카프에, 예쁘게 단장한 머리 모양… 한눈에 작가님이 너무 좋아졌다. 반갑게 인사하고 찻집에 들어갔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3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 질문지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작가님이 태어난 4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그 긴 기간을 왔다 갔다 하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건 정말 유튜브 세계에, 아니 이 세상에 전해져야 하는 이야기다, 싶은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나는 슬며시 촬영 얘기를 드렸고 작가님이 우려하는 부분들을 잘 고려해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아, 됐다!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