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마이크를 써본 적 있는 사람만이 어쩌고…

마인드셋 말하기

by 다이앤

누구나 일하다 한 번씩은 눈물을 꾹 참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다만 좀 더 서러웠던 부분은 눈물을 참으면서 말을 해야 했다는 점, 그것도 여백이 많고 템포가 느린 자연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작업을 해야 했다는 점이다.


라디오 DJ 3, 4년 차쯤 되었을 것이다. 방송에 자신감이 슬슬 붙는 시점이었고 때마침 내레이션 의뢰가 들어왔다. 방송국에서 새롭게 런칭하는 7~8분 분량의 자연 다큐멘터리인데, 담당 감독님이 내 목소리가 프로그램에 잘 붙을 것 같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저녁 황금 시간대에 방송하는 매거진 프로그램(생생정보통 같은 유의 프로그램)에서 이미 내레이션 작업을 해오던 터였기에, ‘어느 정도는 하겠지…’하며 첫 미팅에서 내레이션을 제작진분들 앞에서 선보였는데… (나 포함) 모두가 당황하고 말았다. 지나고 보니 이런 유의 내레이션이 사실 내레이션 계의 보스몹과도 같아서, 많은 훈련과 내공이 필요한데, 당시의 나는 그 어느 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때까지 내가 해왔던 건 주로 설명이나 감정을 묘사하는 내레이션이었다. ‘그때 다희 씨의 눈길을 사로잡은 음식이 나왔는데요!’라거나 ‘공과금도 연체된 지 어느새 석 달…’ 같이 느낌이 분명하고 또렷한 내레이션들이었다. 이런 것들만 하다가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감싼 적란운’, ‘붉은 매화가 마음을 감싸주는데요’ 같은 문장을 읽으려니 느낌이 영 살지 않았다.


다행인 건, 제작진분들께서 내 목소리가 가진 잠재력을 높이 사주셨다. 실제 말할 때의 목소리나 방송할 때 목소리는 중저음에 호흡이 많이 섞여 좋은데, 왜 내레이션만 하면 톤이 어색해지는 건지 제작진 분들도, 나도 의아했다. 안 해본 작업을 아무 개념 없이 하자니, 또 오랜 습관이 나온 게 틀림없었다.


이때 처음으로 목소리 훈련을 꾸준히 시작했다. 불안이 많아질 때는 지독한 회피형 인간이 되기에, 사실 부끄럽지만, 그전까지는 원고 리딩이라든지 발음 발성 등을 더 향상하고자 노력을 기울인 부분이 적었다. 못하는 나를 직면하는 게 어려워서 초반에는 내가 한 방송을 다시 듣는 것도 어려워했다. 생방송을 진행하는 라디오 DJ로서 오래 지내다 보니 ‘즉흥적으로 적당히 해내면 오케이’ 같은 마음가짐이 생겼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꼭 잡고 싶은 기회였다. 어려서부터 ‘인간극장’ 같은 휴먼 다큐멘터리나 자연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꼭 해보고 싶었었고, 나를 믿고 기회를 주고자 하는 제작진분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전문가로부터 훈련받기로 했다. 부산 지역 성우 학원들에 문의하다가, 마침 지상파 공채 성우분께서 주말마다 내려오는 곳이 있다고 해서, 단기로 1:1 레슨을 받았다.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기본적인 발성 발음의 취약점도 알게 되었고, 목소리 연기에 필요한 요소들을 익혔다. 내레이션을 할 때에는 그 현장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느낌으로 하라는 부분이 특히나 주요하게 다가왔다. 사실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 두 달 교육 받은 것 이외에는 체계적으로 코칭을 받은 적이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배울 수 있었는데 ‘그간 무책임하게 나를 방치했구나…’ 싶었다. 나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나의 부족한 점을 직면하기,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노력하기, 전문가의 코칭 받기 이 세 가지가 필수임을 깨닫게 되었다.


훈련한 덕에 이상한 조는 조금씩 덜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가 찾아왔다. 담당 PD님, 작가님과 음향 감독님을 밖에 둔 채로 혼자 부스에 들어가면 압박이 무척 커지는 것이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자신이 없거나, 약한 발음이 원고에 무더기로 나온다거나 하면, 어김없이 말이 빨라졌다. 차라리 내레이션 양이 많고 텐션이 높은 성격이면 내레이션 속도가 빨라져도 묻혀갈 수 있는데, 여백 많은 자연 다큐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장면은 긴데 자꾸만 내 내레이션이 빨라져서 여운을 남기지 못했다. 천천히 해달라고 요구받고, 머리로는 인지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발성 발음 힘이 약했고, 내 몸을 컨트롤하는 역량이 부족했기에, 긴장도가 높아지는 상황이 되면 속수무책이 되었던 것이다. 스태프 분들이 다 좋은 분들이셔서 ‘잘해야 하는데…’하는 부담과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작용해서 더욱 심해졌던 것 같다.


그래도 오며 가며 마주치는 직원분들로부터 호평도 듣고, 조금씩 나아지는 부분도 생기고 있었는데, 어느 날 회사 경영진이 교체되고, 프로그램에 대한 개입 방향이 달라졌다. 나의 내레이션이 지적 당한 모양이었다. 이후에 서울에서 활동하는 남자 성우로 교체된 걸 보니, 서울에서 제작되는 프로그램 느낌을 내고 싶었던 듯하다. 지적을 당하니 제작진분들도 조금 경직되고,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와 어떤 때는 정말 눈물을 참으면서 작업을 했다.


물론 나는 공채 성우는 아니지만, 성우의 일이란 게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녹음실에 들어가 있으면 홀로 적군을 상대하는 전사가 된 것 같다. 즉각적으로 오는 피드백, 수정을 다 쿨하게 수용하고 바로 반영해야 하고, 목소리에 영향이 가면 안 되기에 감정 컨트롤도 잘해야 한다. 몇 년 전 더 어렸던 나에게는 이 모든 게 아마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자기 검열도 크고, 주변 의식도 많이 하는 성격이기에, 녹음실에서 느끼는 압박감이 얼마나 컸을까 싶다.


얼마 전, 담당 PD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프로그램이 2년여의 대장정을 마치고 종영하게 되어서 뒤풀이를 하는데 내가 생각났다며 연락을 주신 것이다. 나는 멀리 떠나왔기에 참석은 못 했지만 무척이나 감사했다. 나서서 스스로 어필하는 것에 취약한 어리석은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기회를 준 고마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실력 있는 분들과 작업해서, 멋진 영상에 여운 있는 문장이 포개지고 거기에 아름다운 음악이 더해졌다. 마지막 문장을 뱉고 나면 영상과 음악이 오래 이어졌다.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 탁월한 아름다움에 진심으로 감동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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