곗돈을 붓고 있는 모임이 3개가 있다. 하나는 가족, 하나는 중학교 친구들, 다른 하나는 앗싸 모임이다. 그 중 앗싸모임은 결성된 지 이제 막 1년쯤 되었다. 부산 방송국에서 6년 간 일하며 돈독해진 언니 두 분과 함께 만든 것으로, 내가 부산을 떠나면서 자주 만나기 어렵게 된 상황이라 좀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셋이서 뭉치는 건 일 년에 비록 많아야 두 세 번이겠지만 그래도 만났을 때 맛있는 거 먹고 예쁜 거 보자는 취지로.
그렇다면 이름이 왜 ‘앗싸’인가. 우리 계모임 이름은 중의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아싸!하듯 셋이 뭉쳐 흥나게 놀자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성향에서 비롯되었다. 바로 ’아싸(아웃사이더)‘. 그렇다. 우린 모두 어딘가 성질머리가 있으며 밝기보단 어두운 내면을 갖고 있고 예민한 구석이 있다. 그리하여 사람에 경계가 많고 조직에서 겉도는 성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끼리 계모임을 할 정도로 가까워졌으니, 아싸는 아싸끼리 끌리는 법일까?
우리가 서로 친해진 건 5년 전쯤이다. 먼저 나랑 H선배는 한 프로그램 진행자와 연출로 만났다. 그 당시 내게 H선배는 유일한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다. 어딘가 삐딱하고 마이너한 감성,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순수한 감성이 잘 통했다. H선배가 연출과 구성 일을 겸했으므로 단 둘이서 컴컴한 방송국에 남아 자정 방송을 처음으로 했던 날, 우린 광안리 아무 술집에나 가서 해가 뜰 때까지 기념주를 마셨다. 둘 다 셀카 같은 거 잘 찍지 않는 편인데 바다를 배경으로 깔깔깔 하며 셀카도 찍었던 것 같다.
배우 출신 B언니는 H 선배는 원래부터 꽤 오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친밀해질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가, B언니 남편 분이 교량 역할이 되어 가까워졌다. B언니 남편은 베테랑 방송인인데 내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모시게 되면서 자연스레 B언니도 만날 일이 많아진 것이다. 그러다 내가 B언니 동네로 이사가게 되면서 우리 세 사람의 새벽 회동이 잦아졌다. 새벽 2시에 방송이 끝나면 나와 H선배가 B언니네로 놀러가 끝없이 맥주잔을 기울이는 것이다. 첫 사회생활에 여러 모로 마음이 괴로웠던 나, 강인해 보이지만 한 구석 기댈 곳이 필요했던 H선배, 내면에 엄청난 열정과 끼가 있는 배우로서 어린 딸을 낳고 키우느라 한창 힘들었던 B언니는 네 캔 만원 맥주와 함께 조금씩 돈독해졌다. 같이 여행도 가고, 맛집도 가면서 추억이 두텁게 쌓여갔다.
요리 솜씨가 좋은 B 언니가 뚝딱 뚝딱 만들어내는 안주들이 맥주와 함께 사라지면, 그 자리엔 서로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채워졌다. 얼핏 보면 너무나 다른 세 사람이지만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서로가 꽤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언니들 폭풍 수다 속에서 주로 듣기만 하던 나도 점점 입이 트여갔다. 나보다 삶의 경험이 훨씬 많고 무엇보다 방송일에 잔뼈가 굵은 언니들, 나와 비슷한 마음의 모양을 가진 언니들 덕에 나를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씩 덜어내고 나를 더 믿을 수 있었다.
두 언니들로부터 배운 게 참 많다. H선배로부터는 방송의 기본과 방송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배웠다. 꽤 터울이 많음에도 친구처럼, 선배처럼, 큰언니처럼 지금도 내 마음의 포근하고 든든한 산 같은 존재다. B언니는 내 내면의 우울에 깊이 공감해주고 따뜻한 밥을 기꺼이 내어주셨다. 어떤 말을 해도 이해해주고 들어주고 특유의 깊은 눈으로 현자같이 조언을 해주는 바다 같은 존재이다. 내 곁의 산과 바다 같은 존재이구나, 새삼 깨닫는다.
물론 우리의 유대도 흐름을 탔다. B언니네가 이사를 가고, 나랑 H선배도 다른 프로그램으로 찢어지면서 만나는 빈도가 줄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뭉쳤고, 그럴 때면 공백이 무색하게 셋만의 케미가 다시 나왔다. 몇 년이 흘러 다시 내가 H선배와 프로그램을 런칭하게 되었을 때, B언니(와 그 남편 분)를 월요일 게스트로 모셨다. 그 사이 좀 더 여유가 생긴 세 사람의 방송 케미가 무척 좋았다. 참으로 든든하고 행복한 월요일이었다.
그러다 선택의 기로에 선 내가 어느날 갑작스럽게 서울행을 결정했다. 언니들은 내 선택에 섭섭함을 느끼면서도 응원해주었다. 종종 보자고 얘기를 하면서도 세월의 흐름에 이 관계도 바래지면 어떡하나 앞선 걱정이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서울에 온 지 두 달 만에 우린 뭉쳐서 거제 여행을 했다. 우리 모임의 제 4의 멤버이자 마스코트인 B언니의 딸래미와 함께. 셋이 모이면 좀처럼 제어가 안 돼 폭음을 하는 바람에 거제로 향하는 길 내내 숙취로 괴로워했지만, 그래서 더 재밌었다. 진짜 웃긴 상황이었다.
해맑은 어린이 : “이모! 토 해요?”
숙취에 찌든 이모들 : “어어… 이모한테 말 안 걸어주면 안 될까…”
그리고 그 해 여름에는 충청도에서 다시 만났다. B언니 친정이 시골에 있어 다 같이 시골체험을 했다. B언니 고향이 충청도인데 마침 H언니도 종종 근방에 올 일이 있고 나야 서울에서 충청도는 꽤 가까우니 아주 절묘한 상황이었다. 셋에서 나아가 각자의 친구들까지 데려온 확대 모임이었는데 어색함 없이 평온한 1박 2일이었다. 트럭 뒤에 타고 시골길을 달리고, B언니 어머님표 수제비를 나눠 먹고 B언니 추억이 묻어있는 동네를 함께 걸었다. 언젠가 이런 시골에 농막을 지어 함께 이곳에서 주말을 보내면 좋겠다, 도란도란 꿈을 나누었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그림은 이미 그려진다. H선배는 아마 제일 일찍 일어나 텃밭에서 채소를 따오고 밭일을 부지런하게 하실 것이다. 휴대폰도 놓고 총총총 한적한 시골길산책을 하고 조용히 어딘가에 앉아 동네 구경도 하시겠지. 그러다 다시 돌아올 즘엔 나랑 B언니가 슬며시 일어날 것이다. 감성파인 내가 음악을 틀고 커피를 준비하면 행동력 만렙 B언니는 어느 순간 뚝딱 뚝딱 온 집안을 정리할 것이다. 함께 잠시 노닥거리고 또 각자 공간에서 할 일을 할 테지. H선배는 반듯한 자세로 앉아 글을 쓰고, 나는 비대면 강의를 하거나 유튜브 편집을 하려나? B 언니는 재주가 너무 많아서 예술 활동을 할 것도 같고, 정력적으로 사업을 할 것도 같고… 뭘 하든 잘할 분이고 뭐라도 할 분이다. B언니 남편은 딸래미도 같이 왔다면 둘이서 함께 시골 동식물을 관찰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 같다. 아, 행복한 상상이다.
다시 상상에서 지금으로 돌아온다. 여름 농활 이후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어 만난 게 바로 이번 봄 회동이었다. 이번 모임 장소는 B언니네였다. B언니가 지하철역으로 나와 H선배를 픽업한 순간부터 우리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힙한 동네 술집에 가서 열심히 먹고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새벽까지 얘기를 나눴다. 그래도 다들 5년 전보단 마음의 울화가 덜한지 새벽 1, 2시쯤엔 취침했다. 술 사러 편의점에 몇 번이고 다시 가고 노래방까지 가던 시절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다음 날엔 B언니가 지역 축제에 촬영 일이 잡혀 함께 토마토 축제 곳곳을 기웃거렸다. 셋 다 아싸 기질이 있는 관계로 사실 사람 많은 지역 축제와는 잘 맞지 않는 편인데다 미세 먼지도 뜨거운 봄 햇살도 쉽진 않은 날이었다. 다들 얼굴에 피로가 점점 올라왔지만, 그래도 함께하는 이 시간이 좋아 열심히 서로를 위했다! 그러곤 맛집에 가서 아낌없이 안주를 시키며 곗돈을 펑펑 쓰고 쿨하게 헤어졌다. 그걸로 충분했다.
다음 모임이 여름일지 가을일지 겨울일지 당장은 알 수가 없다. 셋 다 프리랜서라 당장 몇 달 후에 무슨 일하며 있을지 알 수 없기에. 그렇지만 적어도 서로가 이 모임을 고대하고 있음을 이젠 서로 아는 듯하다. 사람들을 잘 안 믿고 때론 어려워하는 우리들이지만 그 정도의 믿음은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다. 한 달 2만원씩 꼬박 꼬박 내다보면 분명 또 만날 일이 곧 생길 것이다. 계절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과 술과 함께 묵은 힘듦을 얘기하고 서로의 존재에 고마워하겠지.
홀로 버스에 오른 지금 마음 어딘가가 개운하다. 아싸로 살며 누적되는 설움(?)이 은근 있는 건지, 서로를 만나야만 풀어지는 한 같은 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H선배가 껴주는 따뜻한 팔짱이, 맛난 술과 음식을 먹었을 때 기뻐하는 그 특유의 반응이, 내 주변에서 나를 제일 크게 웃게하는 B언니의 개그와 툭툭 뱉는 현자 같은 말들이 벌써 그립긴 하다. 다음 모임 땐 모처럼 노래방도 같이 가자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