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남들처럼 할 수 있을까?
지난 주말에는 심리 관련 한 워크샵에 참여했다가 아주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세상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인식이 어떤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건데, 내가 마음 깊이 바깥 세상을, 사람들을 무섭고 위협적인 곳이라 믿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부 세계에 대한 나의 왜곡된 믿음이 생각보다 아주 깊었다.
그러고 보니 트라우마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안 좋은 기억들을 슬라이드쇼하듯 촤라락 회상하면 대체로 웅크린 나, 위축된 나의 이미지가 있다. 마치 바깥으로 나서면 안 된다는 듯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 마음이 불안하지만 한 편으로는 약에 취한듯 아늑하기도 하다. 불안한 평안이라고나 할까?
바깥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어도 그 장면 속 나만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외부와 나를 단절시키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장면에서는 그 사람과의 거리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장면의 구성은 다양한데 단절된 채로 혼자 있는 이미지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워크샵 강사님은 강의와 저서를 통해 '뱃속 트라우마'라는 것이 존재함을 여러 선행 연구 결과와 함께 주장했다. 태중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우리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 않는 만큼,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의 마음 상태와 환경이 어땠는지, 임신 중단의 위협을 겪진 않았는지 등이 아이에게 평생 가는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왜, 출생 후 2년이 아기의 애착 형성에 결정적 시기라고 하지 않는가? 어린 나이일수록 환경으로부터 얻는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태아일 때는 그 위력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갸웃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니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우선 몸 컨디션 때문에 엄마는 의사로부터 임신을 하면 위험하다, 더 이상 출산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를 가지게 되었고, 의사의 위협적인 말을 들었겠지만 그래도 낳기로 결심을 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엄마는 결혼 직전 큰 트라우마적 사건을 겪었고 나보다 2살 위인 오빠를 임신했을 때도 나를 임신했을 때도 심한 우울이 있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태아였던 나에게 위협이 되는 조건들이 더 있었다.
엄마의 상태와 상황이 이러하니 태중에 있는 나는 어땠을까? 불행하고 우울한 엄마. 만류했던 임신. 아마 태아는 혼란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환영받지 못하고, 내 존재를 없애진 않을까 공포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바깥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겠는가? 바깥으로 나가기 너무 무섭고 두렵지 않을까? 아기일 때 엄마와 한 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울고 보채고, 스무살 때 처음 가족과 떨어져 서울로 갈 때에도 큰 분리불안을 겪었던 것-다른 또래들은 그래도 설렘도 같이 느끼는데 나는 설렘은 전혀 없었다-이 설명이 되는 느낌이었다. 연애를 할 때에도 상대에게 깊이 빠져 마치 둘이서만 섬에 있는 것 같은 고립된 느낌에 안락함을 느꼈고 그런 밀착감만이 사랑이라고 여겼었다.
외부 세계는 두려운 곳이다.
나를 집어삼킬 수 있다.
바깥으로 나가면 나는 끝장날 수도 있다.
물론 태중의 경험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 후로 내 마음 깊은 곳에 이러한 신념이 쌓이고 쌓여 지층처럼 굳어져버렸다. 바깥이 무서우니 고립된 채로 있는데 바깥 세상이 그렇다고 사라진 건 아니니 늘 혼자 있으면 또 불안하다. 저 문 밖에 그토록 무서운 외부 세계가 있으니. 그러니 커리어를 확장하고 나를 외부 세계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세상은 나를 환대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철저히 혼자이고 도움 받을 곳이 없고, 외부 세계는 위험하고 무서운 곳인데 내가 어떻게 담담하게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가 있었을까.
그리하여 늘 내 발목엔 족쇄가 채워진 듯 버거웠던 것이다. 하다 못해 인스타그램에 글 올리는 것도 어렵고, 블로그로 내 일을 홍보하는 것도, 내가 해낸 성취를 세상에 전시하는 것도, 내 일을 체계적을 키우는 것도 모두 너무나 힘들었다. 어디에 소속돼 일하거나 타인의 일을 돕거나 팀으로 일을 할 때에는 잘만 하던 것도 나의 일만 되면 힘들었다. 무기력해지고 힘이 주욱 빠지면서 다 놓아버리곤 했다.
상담도 받고 자아 탐구를 하면서 나름대로 이유를 찾으려 하긴 했었다. 불안도가 높고, 바운더리 설정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자아의 중심이 서지 않아서 그렇다... 이 정도로 생각은 했지만 어딘가 명쾌하진 않았다. 하지만 외부 세계에 대한 나의 신념을 깨닫고 나니, 내 지난 날이 선명하게 설명되어서, 한 날은 명상하면서 많이 울었다. 후련했다. 무섭고 두려웠을 나를 꼭 안아주고 위로해주었다. 나에게 힘이 되는 존재들을 소환해내어 함께 안아주었다. 비로소 나로부터 깊이 이해받는 기분이었다.
세상은 그리 무서운 게 아냐, 이미 다 겪어왔잖아.
누구나 삶에서 기쁨이 누릴 자격이 있어.
자유롭게 세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도 돼.
곁에 너를 도와주고 아껴줄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지금은 수시로 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큰 두려움을 느꼈을 과거의 '나'들을 위로하고 이 슬픔을 애도하고 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다. 수시로 치고 들어오는 불안의 정체를 알겠고 나에게 필요한 위로가 뭔지도 아니까. 앞으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걸음도 가벼워지지 않을까?
이유 없이 계속 무언가를 피하고 있고, 어떤 패턴에 갇혀있다면 그곳에 바로 내가 공략해야 할 이슈가 있다. 자아상이든, 나처럼 외부 세계에 대한 왜곡된 신념이든 간에 아주 큰 불안이나 공포가 마음 깊은 곳에 뿌리처럼 심어져 있을 수 있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을 피하고 있는가? 아픈 과정이 되겠지만 살면서 꼭 돌아보아야 할 부분이 아닐까.
참 재밌게도 10여년 전쯤 한 기관에서 심리 검사를 받았을 때 나에게 시 처방이 함께 왔는데-심리 검사 내용과 함께 피검자에게 잘 맞는 시를 함께 첨부해주는 것이다- 그때 시가 도종환 시인의 '열쇠'라는 시였다.
세상의 문이 나를 향해 다 열려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열어보면 닫혀 있는 문이 참 많다.
(...)
그러나 두드리는 일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
사는 동안 내내 열리지 않던 문이
나를 향해 열리는 날처럼 기쁜 날이
어디 있겠는가.
문이 천천히 열리는 그 작은 삐걱임과
빛의 양이 점점 많아지는 소리...
희망의 소리도 그와 같으리니.
내 주변 지인들은 말한다. 나는 꾸준히 시도하는 사람이라고.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늘 꾸준히 미련하게도 부딪힌다고. 한 친구는 곧 무너질 모래집을 계속 지으려는 비버 같다고도 했다. 그래서 다행이다. 내가 요령이 없어서. 왕도를 좇으려 하지 않아서,. 바깥 세상이 무서워서 쉽게 무너지면서도 또 일어나 눈 질끈 감고 문을 두드려온 내가 장하다. 자, 지금까지 문을 두드리면서도 정작 문이 열린 틈을 외면하고 있었다면 이젠 문을 열고 나갈 차례다. 분명 별 거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