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내고 벼리는

버텨내고 존재하기

by 다이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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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2023)>를 영화관에서 봤다. 1930년대에 개관한 광주의 '광주극장'의 곳곳에서, 그 공간이 그러했듯 뮤지션들이 '버텨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의 '존재'를 노래하는 영화였다. 인디 씬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내고 존재하는 그들의 뜨겁고도 잔잔한 사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삶이 버텨내는 것이라는 걸 나 또한 서른이 넘어서 하루하루 느낀다. 서른이 넘으며 오히려 삶에 노하우가 생기고 마음의 근력도 좋아졌는데도 이렇게 생각하는 건, 비관주의에 젖어들었다기보단, 삶에 대한 환상이 조금 벗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는 행복하고 충만함을 누리는 것이 인생의 본질일 줄 알았다. 행복과 충만함을 추구하는 것.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어느 정도는 늘 버텨내야 하는 것이 삶인 것 같다. 염세주의랑은 다르다. 한 개인의 성장만 놓고 봤을 때도 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 누구에게나 깨고 나가야 하는 알이 있다. 거기에 외부에서 오는 고통은 또 얼마나 성실히도 또 예측 불가능하게 찾아오는가. 고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행복하고 충만한 순간이 얼마나 찾아오는지와는 별개로.


프리랜서로서 앞날을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압박감, 스스로 창작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야 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 위축감... 내가 주로 버텨내고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코어에는 나에 대한 혐오와 체념이 존재한다. 나를 가장 쉽게 무너뜨리는 것들이다.


나는 자기 혐오와 체념에 자주 항복하며 살아왔다. 무한한 기회를 걷어 차며 아침에 그냥 더 자버린다. 내가 올린 콘텐츠의 댓글창을 보지 않는다. 남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또 습관적으로 뱉어버린다. 나에게 경우 없이 대하는 이에게 저자세가 된다. 과하게 남을 챙기려 한다. 엄마, 아빠의 활력과 행복에 과몰입한다. '좋게 가는 게 편하지'하며 했어야 할 말을 속으로 삼킨다. 나의 발전을 위해 꼭 해야할 일을 무기한 미룬다.


특히 근 몇 개월 사이에는 특정 인물들에게 지속적으로 항복해왔다. 내가 더 당당할 수 있는데, 나의 생각을 더 단호하게 전달할 수 있는데, 계속 어깨가 앞으로 굽었다. 쿠션어가 나오고, 미루고 미루다 겨우 연락했다. 항복하면서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런데 <버텨내고 존재하기>에서 응원을 받은 덕분일지 왜인지 용기가 나서 미뤄두던 문자를 발송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 직후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렇게 되면 굽히지 않는 자세로 싸워야 하는데 그것도 스트레스, '상대방 측에서 화를 내면 어쩌지' 무서워 두려운 마음, 나를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 하는 희한한 불안까지 여러 감정에 압도되었다.


그래도 주변의 멋진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며 기를 좀 받아 정신을 차리고 저녁으로 파스타를 간단히 해먹었다. 소화가 좀 안 되어 집 근처 트랙을 걸었다. 라디오를 듣는데 수 십 년 전 록밴드의 명곡이 흘러나왔다. 그 단호한 밴드 사운드를 들으며 프론트맨의 강인한 목소리를 들으니 어깨가 좀 더 펴졌다. 침착하게 할 일을 조금 하다 요가 수업엘 갔다. 동작을 하는 게 아주 고통스러웠다. 요가 선생님은 성장을 위한 가르침에는 얄짤 없는 분이라 계속 푸쉬를 하는 타입이신데,그 에너지 덕분에 고통을 인내하며 동작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말했다. "버텨내셔야 해요. 버텨내야 합니다." 그 말에 속절 없이 마음이 동하면서 꿋꿋히 힘을 주고 버텨내고 싶어졌다.


어렵고 힘든 일들은 그만큼 버텨낼 가치가 있는 건데, 나는 쉽게 항복하고 나를 내어주었다. 겉으로는 꽤 멀쩡하게 지내서 내가 매일같이 항복하며 살고 있다는 걸 주변에서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항복하지 말고 일어나 싸우라고 나에게 억지로 갑옷을 입혀 전장으로 내보내는 이도 당연히 없었다. 이렇게 내 안엔 나조차 오랫동안 포기하고 체념한 부분이 있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단호하게 버텨내라고 말해주었다. 나에 대한 믿음,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그 말에 있었다. 버텨내고 싶다는 의지, 버텨낼 수도 있겠다는 전망이 작게나마 내 코어에서 느껴졌다.


위험에 처했을 때 동물들이 보이는 반응은 주로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투쟁하거나 도피하거나(Fight or Flight). 앞으로도 나는 도피하고 싶어질 때가 훨씬 많고, 도피하는 경우도 자주 있겠지만, 그래도 그 사이 사이 꿋꿋이 버텨내면서 투쟁하고 싶다. 투쟁의 흔적을 확실하게 남기고 싶다. 그 흔적들이 나를 점점 더 잘 버텨내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버텨내고 존재하기>에서 싱어송라이터 정우는 '철의 삶'이라는 곡을 라이브로 연주하며 노래한다. 상당히 우울하고 비관적인 이야기-물론 작은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를 경쾌하게 노래하는 곡인데, 중간에 냅다 내레이션으로 정우는 말한다. "당신, 녹슬면 끝이라 했지만, 천 번을 두드리는 삶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었다." 영화와 더없이 어울리지 않은가. 녹슨 부분을 껴안고 나를 단호하게 벼리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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