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촬영 전에 이미 시작된다.

by 희안 Heeeahn

작품은 연출자의 거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그 영화를 보면 이 영화를 연출한 사람이 보인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내 머릿속의 한편을 내보인다는 말과도 같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연재에서 누누이 말하는 것처럼, 기획자와 영화감독은 결을 같이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자의 서비스 혹은 제품 또한 그 기획자의 시선을 많이 담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창작자의 머릿속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된 그 질문이 뿌리가 되어, 줄기를 치고, 그로부터 열매를 얻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제품은 론칭 전부터 이미 시작된다.

기획자의 생활에서 혹은 기획자의 시선에서 시장의 결핍을 느꼈다. 그리고 소비자의 반응이, 이 제품을 필요로 한다면 제품이 론칭되기 전부터 이미 그 제품은 시작된 것이다.


필자는 시장조사를 그래도 좋아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편이라 말하는 것은, 뭐랄까. 기획자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좀 편협된 시장조사를 하는 것 같다. 기획자 또한 자신의 서비스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만든다. 그렇다 보니, 결점이 되는 것들은 피하고 장점이 되는 것들만 일부로 나열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사실 서비스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정말 못할 짓이다. 결핍으로부터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되려 그 결핍을 숨기고 있는 꼴이니 말이다. 제로썸 게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늘 견제하려고 하고 있다. 시장조사를 하며, 내가 보고 싶은 정보만 보는 것은 아닌가? 에 대한 질문도 꾸준히 던져가며, 제품을 론칭하곤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나의 결핍에만 초점을 맞추어 글을 쓰고 연출하게 되면 그 작품에 공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예술은 특히나 영화는 소통하는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빈 숲 속에 제 아무리 외쳐봤자, 돌아오는 것은 내 목소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대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잘 섞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중요하다고 느낄지라도, 상대가 알고 싶지 않다면 그 이야기는 그다지 매력 있지 않은 이야기이다.


물론 이야기가 무작정 매력적이 여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예술일지라도,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예술이 되는 것이다. 요 근래 화제인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며 또 한 번 느꼈다. 이 작품을 어떻게 봤을지, 각기 다른 평이 존재하더라도, 그 평이 존재할 수 있는 건 '봐준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장 크게 고치고 싶기도 한 것이 '고집'이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직관적으로 팍팍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이 직관적 임도 매체를 가려서 해야 한다.

서비스와 제품은 기획 단부터 쉽고 소비자 친화적이게 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직관적으로, 흔히 '대사로부터 직관'적인 것이 가장 피해야 하는 것 중 하나이다.

관객은 직관적인 대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직관적인 그림을 보고 싶어 한다.

즉, 듣는 이야기가 아니라 보는 이야기가 중요한 셈이다.



이 점을 명심하다 보면,

영화는 촬영 전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객이 보고 싶은 이야기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적당한 교집합이 필요하다.

그 중첩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시나리오를 쓴다.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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