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나라에서 죽을때 까지 재미있게 살기
Tschüss! Bis Morgen ~
-츄스 비스 모르겐, 안녕 내일 봐 - 하고 인사하고 퇴근하면 그때부터 조금씩 활기가 생기고 살아난다.
물론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한국에서 아르바이트 (무려 독일어!) 말고는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독일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유학을 와서 어학부터 학사, 석사를 마치고 났더니 딱 독일 생활 10년 차가 되어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자신도, 독일에서 취직을 해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10년 만에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무소속감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우여곡절 끝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이 한 문장 안에 녹아있는 그 몇 달의 시간은 지금도 일하러 가기 싫다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일을 그만둘 수 없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첫 출근을 하던 날 부서에 Julia -독일어로 율리아- 가 셋이나 있었고, Christian이 둘이 있었다.
지금도 많이 다르지 않지만 외국인들의 이름은 외우기 어렵다. 회사 물류센터까지 싹 돌아서 인사와 소개를 받은 다음 자리에 앉아서 우선 근처에 앉은 동료들 이름을 한글로 또박또박 써서 자판아래에 숨겨 두었다. -이 종이를 버리는데 한 달이 걸렸다- 안타깝게도 나는 눈에 너무 띄는 동료인 데다 이름도 너무 짧아서 (!) 상대적으로 상대방이 내 이름을 쉽게 외운다. 이름을 못 외워서 미안해.
나는 독일의 가족회사에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8년 전에 -10월 초- 지금 회사에 입사를 했는데, 그때도 지금도 사무실동에는 동아시아인이 나 하나다. 아시아인이 많지 않은 독일 시골에 있는 여느 회사와 같이 적은 수의 아시아계 직원들 중 유일한 한국인 1인을 담당하고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계속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가끔 내가 한국어 감탄사를 말해도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고, 가끔은 그들의 문화 공감대를 이해할 수 없기도 하다.
지금은 개편되었지만 원래 있던 부서는 여자가 훨씬 많은 여초부서였는데 -회사전체로 봐도 여초회사- 그래서 간식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잼을 만든 김에 케이크를 좀 구워봤어, 시간이 좀 남길래 케이크를 구웠어, 아이 생일이라 케이크를, 머핀을 구웠어하고 케이크나 머핀을 가져오기도 하고 자기 생일에도 직접 케이크를 구워서 가지고 왔다. 내가 겪은 첫 독일 회사 문화였는데 신선하면서 가깝지 않은 동료와도 스몰토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입사했을 때 보다 회사 직원이 두 배 가까이 늘었는데, 지금 사내에는 22개국의 직원들이 있다고 한다.
회사에서 인종차별을 심하게 받아서 신고할 일은 없었지만, 22개국 중 1개국 1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끔 서운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눈치가 보일 때도 있다. 누가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눈치를 주는 건 아니지만 내 나라가 아닌 외국인으로서 남의 나라에 사는 사람이 느끼는 그런 감정인데 이 감정을 어떻게 소화해 나가야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우리 회사는 트렌드에 발맞춰 6시부터 9시 사이에 출근을 하면 되고 15시부터 퇴근을 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로, 나는 보통 7시에서 7시 10분 사이에 출근을 하고 16시가 조금 넘으면 퇴근을 하는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이른 출근을 하는 게으르고 싶어서 아침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한국인이라 부지런하다 일을 열심히 한다라고 생각을 하진 않지만 적어도 한국인은 게으르고 일을 못한다 하는 인상은 주고 싶지 않아서 노력하고 있다.
회사엔 나 혼자 한국인 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과 내 태도, 행동이 주변 동료들에게 한국인인은 저렇구나 하는 인상을 준다. 물론 내가 한국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으로 인해 그 사람의 나라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을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회사는 한국회사와 일을 하지 않고, 한국이 내가 일하는 업계에서 큰 시장이 아니라 물건이 수출되지도 않는다. 회사 동료들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한국인 동료로서, 한국 이미지를 위해 한국의 긍정적인 면에 대한 주입식 교육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한국인. 그중에서 어디에도 있는 한국인을 담당하며 살고 있는,
가끔 외롭고 조금 재미있고 종종 행복을 찾는 독일 시골 외노자의 삶을 글로 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