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나라에서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살기
재미없는 나라에서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살기
나는 매일매일 여섯 시에 일어난다. 알람은 분명 6시 10분에 맞춰져 있는데 주말이든 주중이든 상관없이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살아있는 귀여운 요물단지 알람이 깨운다. 물론 그때 벌떡 일어나지는 않고 안아서 쓰다듬어 주면 골골골 하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알람.
대학교 1학기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이렇게 저렇게 지나갔는데, 2학기가 지나가고 나니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그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독일생활에 3, 5, 7, 10년 차에 권태기가 왔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상황과 맞물려 현실에 거리감이 생기면서 나의 현실을 직시하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든다. 어쨌든 첫 번째 그 기간이 왔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조금 고민을 했는데 정신과는 예약도 어려웠고 내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정확하게 내가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을 못한다는 게 스트레스였다. 종교를 가지기엔 나는 너무 게으른 사람이었는데, 게으름을 차치하고서도 나같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 믿음이 넘치는 사람들과 섞여서 무언가 한다는 게 조금 꺼려졌다.
그렇게 대안 1, 2를 넘기고 찾아온 대안 3은 반려동물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만나게 된 게 내 고양이 까까이다.
크는 내내 개는 가까이 있었지만 고양이는 아주 어릴 때 말곤 키워본 적이 없었고, 내가 주 담당으로 키웠던 게 아니라 데리고 오기 전에 이것저것 공부를 했다. 몇 년 전까지 한국인터넷에 떠돌던 독일의 동물보호소는 안락사를 시키지 않으며 시설이 매우 좋다 하는 글은 누가 퍼뜨린 건지 모르겠는 부풀린 부분이 매우 많은 글이다. 나도 처음엔 동물보호소에서 고양이를 데리고 오려고 알아봤는데 그때 내가 살던 곳의 동물보호소에는 나이 많은 고양이들만 새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미 주택에서 키우던 고양이들이라 집이 넓거나 마당이 있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다른 방법으로 여러 곳에 알아봤는데, 인터넷에서 이사로 인해서 6개월 된 고양이 새 가족을 찾는다는 글이었다. 연락을 하고 데리고 왔는데 전에 키우던 사람들은 고양이를 데려와서 6개월쯤 되면 파양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랬는지 잘못 키운 건지 데려온 날부터 설사를 많이 했는데 6개월 고양이에게 성묘사료 -슈퍼에서 제일 저렴한-를 먹이며 키우고 있었다. 6개월 때까지 접종을 한 번도 안 한 상태여서 병원에 데려가서 접종도 하고 예방수첩책도 만들었다. 고양이가 너무 작아서 중성화수술을 시킬 수 없어서 잘 먹여서 좀 키운 다음에 수술을 하자고 하셔서 9개월이 되던 그쯤 수술을 받았다.
까까는 올해 14살이 되었다.
우리가 같이 산 14년의 시간 동안 한국도 세 번 다녀왔고, 치아흡수병변이 와서 큰 수술도 두 번이나 받았다. 두 번째 수술은 받은 지 2년이 조금 지났는데 그때 처음으로 갑상선 항진증이 발병해서 그 이후로 꾸준히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이고 있다. 내 어린 고양이가 나이 든 고양이가 되어가는 게 조금씩 보일 때마다 가슴한구석이 서늘해질 만큼 무서운데 같이 사는 동안 최대한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 중이다.
내 고양이는 야생성도 별로 없고 사냥도 잘 못한다. 겁이 많아서 점프도 잘 못하고 말도 많은 편이라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다. 외동묘라서 가능한 일이겠지만 편식도 심하고 밥투정도 많이 한다. 내 선에서 들어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밥투정도, 징징거림도 달래주고 있다. 내 고양이가 나랑 만난 그 순간부터 고양이별로 가는 그날까지 응석받이 배부른 고양이로 골골송 많이 부르다 갔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독일의 고양이 키우는 방법의 차이점은 외출냥이로 많이 키운다는 것이다. 각 나라의 사정과 도시냐 시골이냐 차이도 있겠지만, 집안에만 고양이를 두고 키우는 건 고양이 학대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해서 -실제로 예전에 이웃에게 쪽지를 받은 적 있음- 아 나라마다 차이가 있구나 했었다. 내가 석사 하면서 살던 그 집엔 나와 내 옆집만 들어갈 수 있는 뒷마당이 크게 있었는데 그때부터 까까는 산책고양이가 되었다. 취직을 하고 다시 이사를 왔을 때 마당이 없어서 나가지 않았더니 스트레스로 탈모가 와서 동물병원 의사와 상담을 했는데 혼자 외출을 시킬 수 없으면 같이 산책을 나가라고 처방을 내려줬다. 그 이후로 까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나와 산책을 나간다.
조금 더 어릴 땐 산책을 두세 시간씩 하곤 했는데, 요즘은 그럴 만큼의 체력이 안 되는 건지 그렇게 오래, 먼 거리를 걷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스갯소리로 마음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는 말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최고급사료만을 먹여 키우는 건 아니지만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 맞고, 시간과 정성, 마음이 필요한 일이다. 금전적인 부분도 필요하지만 시간적인 부분도 상당히 많이 들여야 하고 자가가 아니라면 집 구할 때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걸 아깝지 않게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내 고양이이다. 나는 가끔 까까가 고양이별로 떠나면 더 이상 고양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라고 하는데 단 하나의 거짓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한번 해 본 길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아니까 다시 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과 가족이 된다는 건 눈으로 봤을 때 귀여워! 하고 끝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이 같이 온다. 혹시라도 반려동물을 입양할 생각이 있다면 오랜 시간 여러 번 생각해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다.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데리고 온 내 어린 고양이는 내 독일생활을 잘 지탱해주고 있다. 내 힘으로 온전히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나의 확실한 일상의 행복이다.
나는 있다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