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문을 나서며 떠오른 단상(斷想)
미용실로 향하는 길은 늘 과도한 심장박동을 수반한다. 남자로서 단순히 한 달에 한 번 꼴로 가는 일종의 월례행사에 지나지 않는 일이지만, 또 대단한 구상을 품고 가봐야 결국은 커트로 수렴하는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산물이지만, 미용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가파르다. 생각해보면 머리 손질 중에 예고 없이 훅 들어오는 미용사의 영업적(난 그렇다고 굳게 믿는다) 멘트 때문일지도.
안경을 벗고 자리에 앉으면 그때부턴 나와의 지독한 싸움이 펼쳐진다. ‘앞머리를 좀 짧게 자르시는 것 같은데’, ‘뒷머리 기장을 거울로 보여 달라고 할까’ 몇몇 미용사들은 나 같은 안경잡이를 배려해 안경을 손수 씌워주거나 종종 기장과 스타일에 관한 말을 꺼낸다. 마음은 고맙지만 결국 ‘괜찮은 것 같아요’로 2차 수렴을 하고 마는 나.
하루에 몇 시간을 서있는 걸까. 들러붙은 머리카락에 손은 또 얼마나 많이 씻을까. 잠시 손님이 없을 때 핸드크림은 챙겨 바르려나. 누군가를 접대하는 일은 퍽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미용실처럼 한 번 행하면 되돌릴 수 없는 작업은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 그 와중에 틈틈이 손님과의 대화를 유지하며 스타일을 파악하기까지.
예전에 선배에게 미용사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영업시간이 거의 끝나가듯 보이는 한 미용실에 도착한 선배는 홀로 남아 가발을 가위질하는 한 미용사에게 가까스로 커트를 받을 수 있었다. 영업이 끝나고도 왜 남아 있냐는 선배의 물음에 미용사는 연습 중이라고 답했다. 일과 시간 중엔 샴푸, 계산, 머리카락 청소 등만 해도 빠듯하기에 모두가 퇴근한 후에야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그제야 커트를 연습한다고 답했다. 당시 선배가 퇴근을 목전에 둔 내게 이 이야기를 한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야근을 하라는 다소 강압적인 회유이겠거니.
각설하면 난 지금 알싸한 사과향의 샴푸 향을 내뿜으며 미용실을 나왔다. 휴대폰 카메라로 비로소 이곳저곳 머리를 세심히 살펴본다. 그리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찾아오라며 건네 준 명함을 한참 보다가 지갑 깊숙이 찔러 넣는다. 내일 몇 시에 오지.
오늘도 미용사의 노고에 대해 숙고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