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죽기 전에 미국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내가 청년이던 시절, 그러니까 1970년대에는 세계 최대이자 최상의 도시인 미국 뉴욕에 한 번 다녀오는 것이 젊은이들의 가장 큰 로망 중 하나였다. 그때는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도 당시 품었던 꿈이 드디어 이루어져 미국에 간다. 아니, 가야만 한다. 일흔 번째 생일을 맞이한 기념으로 (자칭) 효녀 딸 희재가 뉴욕 여행의 모든 것을 기획했고, 단독 가이드마저 자처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가능하게 한 것은 하늘의 도우심도 있었지만 단연코 딸과 사위를 잘 둔 덕분이다. 비록 사위가 함께 가진 못하지만, 딸과 단둘이 떠나는 여행을 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내와 함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족 모두가 여행에 동참하기를 바랐지만, 아내는 4년 전 덴버에 사는 친척 집에 다녀온 적이 있어 괜찮다며 극구 사양했다. 사실은 경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거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이번 여정은 나와 딸만 떠나게 되었다.
희재가 공부한 학교가 있는 뉴욕 맨해튼을 중심으로 하여 2018년 10월 22일부터 11월 9일까지 약 3주간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로 했다. 자유의 여신상, 브루클린 다리,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주요 관광지 방문도 일정에 넣긴 했지만, 딸은 뉴욕의 문화 체험에 특히 중점을 두고 이 여행을 기획했다. 우리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딸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우리가 함께 다니며 비슷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뉴욕의 문화를 심층 탐방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 군데 이상의 미술관을 방문하고, 타임스퀘어에서 세계적인 브로드웨이 공연을 네 개나 관람할 예정이다. 희재는 뮤지컬 표가 아주 비싸다고 강조하면서, 관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리 공부할 것을 권했다. 나는 바쁜 와중에도 몇 시간씩 집 앞 도서관에 가서 각 뮤지컬에 해당하는 비디오를 빌려 보며 영어 대사를 귀에 익혔고 줄거리도 외웠다. 미술관은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필두로 하여 MoMA, 휘트니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도 최대한 많이 가볼 것이다.
핼러윈 퍼레이드에도 참여한다. 뉴욕의 여러 축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11월에 하는 핼러윈 축제이다. 희재는 나와 함께 이 축제 기간에 하는 가두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분장 도구와 소품을 준비했다. 여행 날짜도 이 시기에 맞춘 것이다.
이 여행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던 딸은 몇 달 전부터 밤늦게까지 잠도 못 자며 준비 중이라고 무진장 생색을 냈다. 거의 반년 이상 많은 시간을 쓴 것 같다. 아내 역시 필요한 물품과 옷을 준비하느라 신경을 많이 써 주었다. 나도 이번 여행을 위해 50년 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아들은 없지만, 아마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면 금연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