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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Nov 16. 2019

천설(淺説)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죽기 전에 미국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내가 청년이던 시절, 그러니까 1970년대에는 세계 최대이자 최상의 도시인 미국 뉴욕에 한 번 다녀오는 것이 젊은이들의 가장 큰 로망 중 하나였다. 그때는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도 당시 품었던 꿈이 드디어 이루어져 미국에 간다. 아니, 가야만 한다. 일흔 번째 생일을 맞이한 기념으로 (자칭) 효녀 딸 희재가 뉴욕 여행의 모든 것을 기획했고, 단독 가이드마저 자처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가능하게 한 것은 하늘의 도우심도 있었지만 단연코 딸과 사위를 잘 둔 덕분이다. 비록 사위가 함께 가진 못하지만, 딸과 단둘이 떠나는 여행을 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내와 함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족 모두가 여행에 동참하기를 바랐지만, 아내는 4년 전 덴버에 사는 친척 집에 다녀온 적이 있어 괜찮다며 극구 사양했다. 사실은 경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거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이번 여정은 나와 딸만 떠나게 되었다.


 희재가 공부한 학교가 있는 뉴욕 맨해튼을 중심으로 하여 2018년 10월 22일부터 11월 9일까지 약 3주간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로 했다. 자유의 여신상, 브루클린 다리,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주요 관광지 방문도 일정에 넣긴 했지만, 딸은 뉴욕의 문화 체험에 특히 중점을 두고 이 여행을 기획했다. 우리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딸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우리가 함께 다니며 비슷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뉴욕의 문화를 심층 탐방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군데 이상의 미술관을 방문하고, 타임스퀘어에서 세계적인 브로드웨이 공연  개나 관람할 예정이다. 희재는 뮤지컬 표가 아주 비싸다고 강조하면서, 관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리 공부할 것을 권했다. 나는 바쁜 와중에도  시간씩   도서관에 가서  뮤지컬에 해당하는 비디오를 빌려 보며 영어 대사를 귀에 익혔고 줄거리도 외웠다. 미술관은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필두로 하여 MoMA, 휘트니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도 최대한 많이 가볼 것이다.


 핼러윈 퍼레이드에도 참여한다. 뉴욕의 여러 축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11월에 하는 핼러윈 축제이다. 희재는 나와 함께 이 축제 기간에 하는 가두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분장 도구와 소품을 준비했다. 여행 날짜도 이 시기에 맞춘 것이다.


 이 여행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던 딸은 몇 달 전부터 밤늦게까지 잠도 못 자며 준비 중이라고 무진장 생색을 냈다. 거의 반년 이상 많은 시간을 쓴 것 같다. 아내 역시 필요한 물품과 옷을 준비하느라 신경을 많이 써 주었다. 나도 이번 여행을 위해 50년 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아들은 없지만, 아마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면 금연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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