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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Nov 29. 2019

뉴욕 별거 아닌데

2018. 10. 22. 첫째 날

 뉴욕으로 떠나기 하루 전, 반드시 끝내야 하는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경주 캘리그래피 초대전 작업을 간신히 끝내고 업로드를 하기 위해서 웹하드와 씨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친한 지인의 전시회 홍보용 포스터를 오늘까지 그려달라는 것이다. 자주 가지도 않는 해외여행을 떠날 때마다 무료 봉사 일감이 떨어지는 징크스가 예외 없이 적용되는 순간이었다. 이미 한밤중인 데다가 조금 전까지 컴퓨터와 사투를 벌였더니 너무 피곤해서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원체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성품을 가진지라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다. 짐을 마저 싸니 3시가 되었고, 잠시 눈을 붙인 뒤 6시 30분쯤 아내와 함께 집에서 출발하여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8시였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오전 11시인데, 요즘에는 미국으로 가는 사람들의 짐 검사를 꼼꼼하게 하므로 출국 세 시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고 해서 일찍 왔다. 아내는 새벽까지 짐 챙기는 것을 도와주느라 피곤했는지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어제는 나한테 갑자기 일을 시켜서 살짝 원망스러웠지만 오늘은 짠한 마음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딸과 함께 사위도 나와 있었다. 회사 다니는 사위가 예까지 어찌 왔나 했더니만 우리의 여행 가방을 들어주고 배웅도 하기 위해 휴가를 냈다고 했다. 곁에서 딸을 살뜰히 챙기고 각종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는 모습이 고맙고 든든했다. 



 뉴욕까지는 꽤 멀어서, 비행기를 타고 13시간이나 가야 한다. 이 정도로 오랫동안 탈것에 앉아서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의자 앞에 달린 모니터로 영화를 세 편이나 보고 화장실 옆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칭을 여러 번 했는데도 시간이 좀처럼 흐르질 않아 괴로웠다. 어젯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건만. 피곤하기만 하고 이상하리만치 잠이 전혀 오질 않아서 힘들었다. 학창 시절에 희재는 이토록 지루한 시간을 혼자 어떻게 보냈는지 안쓰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계속 쳐다봤다. 별거 안 하고 계속 잠을 자더라. 젊어서 잠도 잘 오나 싶어서 부러웠다.


 현지 시각으로 오후 2시쯤, 드디어 뉴욕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입국 심사를 받기까지 1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중간에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은 나머지 줄을 잠시 이탈하여 화장실에 다녀왔다. 요즘 들어 소변이 자주 보고 싶어지는 것을 보니 신장기능이 약해진 것 같아서 앞으로의 여행이 걱정됐다. 희재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최대한 참아 봐야겠다.


 입국 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가방 찾는 곳에서 한참을 기다려 짐을 찾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희재의 여행 가방 2개 중 가장 큰 가방의 바퀴 한 개가 부러져 있었다. 희재는 순간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도 직급이 꽤 높아 보이는 여자 승무원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고맙기도 했고, 뉴욕 공항에 우리나라 비행기 회사의 서비스 센터가 있는 것을 보니 한국의 국력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커졌음을 실감했다. 희재가 들으면 놀라겠지만,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된 것은 1989년도로, 고작 30년여 년밖에 되지 않은 일이다.


 비상용 캐리어 2개를 빌려 짐을 모두 옮긴 뒤, 고장 난 캐리어는 직원에게 전달하고 고장 난 바퀴 수선에 관한 보험금 청구 서류를 받았다. 모든 비용을 항공사에서 지급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잘 해결되긴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지체되어서 희재가 속상해했다.


 가까스로 공항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우버 택시를 타고 드디어 뉴욕 맨해튼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대체로 낡고 지저분해 보였고, 운전기사, 청소부, 도로에서 공사하는 인부들의 국적이 모두 달라 보였다. 미국이라는 곳은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이 다 같이 모여 사는 나라라더니만 정말 그래 보인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첫 번째 숙소인 메트로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호텔은 고전 양식으로 지어진 아담한 크기의 석조건물로, 갈색조로 통일감 있게 꾸민 실내 장식에 노란 조명이 드리워져 포근한 느낌이었다. 벽에는 여배우 메릴린 먼로의 초상과 초기 맨해튼의 시내 모습 같은 것들이 흑백 사진으로 인화되어 붙어 있었다. 오래된 사진이라 촌스러울 법도 하건만 오히려 고풍스러운 호텔의 분위기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희재는 입구에 서 있던 덩치가 산만 한 도어맨에게 우리의 가방을 객실로 옮기게 하더니 팁으로 5달러를 주었다. 그는 'Thank you!' 하며 매우 기뻐했고, 1층 로비 한쪽에 있는 커피 머신으로 공짜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귀띔해 줬다.


 대충 샤워를 하고 나서, 저녁도 먹고 주변도 둘러볼 겸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꿈꿔왔던 뉴욕의 첫인상은 상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고층 빌딩이 늘어선 미래도시 같을 줄 알았는데, 보수용 파이프를 달고 있지 않은 건물이 없을 정도로 오래된 빌딩이 넘쳐났다. 각종 공사 장비가 길을 좁게 만들어서 불편할 법도 하건만 뉴욕 주민들은 늘 겪는 일인 것처럼 별 불만 없이 철봉 사이로 요리조리 지나다니고 있었다.


 도로변의 한쪽 구석이나 지하철역 입구 근처에는 노숙자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길이 넓어진다 싶으면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이 으레 등장했고, 행인에게 대놓고 돈을 요구하는 50대쯤의 남자도 봤다. 지하철은 낡고 지저분했으며 특히 화장실이 없어서 매우 불편했다. 희재 말로는 화장실이 범죄 현장으로 악용되어서 모두 없앴다고 한다.


 희재는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으면서 미국에 온 소감과 첫인상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젯밤부터 한숨도 못 자서 지치고 피곤했기에 조금 부담스럽고 귀찮았지만, 딸의 기분이 상할까 봐 차마 찍지 말라는 말은 못 하고 건성으로 대답해줬다. 아무리 봐도 뉴욕의 밤거리는 명동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건물이 더 크다는 것 정도랄까?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인가 보다.



 시내를 대충 둘러본 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초당골>에서 늦은 저녁을 간단히 먹었다. 밥값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뚝배기 불고기가 18달러, 해물 참두부 찌개가 16달러, 작은 맥주 한 병이 5달러, 팁이 8달러로 1인당 평균 식사비가 약 27,000원쯤 되니 한국보다 약 세 배 정도 더 비싸다. 희재 왈, 미국에서 한국 음식을 먹는 것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인 줄 아냐면서, 자기가 학교 다닐 때는 이런 곳에 와서 밥을 먹는 일이 드물었다고 했다. 두부 한 모도 마음대로 못 먹고 지냈다고 하니 딱한 마음이 들었다.


 산책하면서 사 온 '조니 워커'를 한 잔씩 나눠 마시 내일의 일정에 관 이야기한 후, 호텔 옥상에 함께 올라 야경을 감상했다. 더 오래 있고 싶었지만,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밤이라 그런지 날씨가 쌀쌀해서 나만 먼저 방으로 내려왔다. 희재는 한참 후에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뉴욕을 대하는 심정이 남달랐으리라. 바람이 차서 혹시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을까 걱정되어 따뜻한 물에 차를 한 잔 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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