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4. 셋째 날
아침부터 UN 견학 일정이 있어서 9시 30분쯤 호텔을 나섰다. 더 일찍 나왔어야 했지만, 늦잠을 자서 너무 늦게 출발해 버렸다. 목적지를 향해 둘 다 열심히 뛰는데 희재가 계속 나보다 앞서 나갔다.
"이상하다. 난 남자인데 내가 너보다 못 뛰네."
희재는 이해가 안 되는 듯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예전에 훈련받을 때는 100리를 쉬지 않고 뛰었거든. 지금은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숨도 차고 너한테 뒤처진다!?"
"아빠! 50년 전 얘기를 하시면 어떡해요? 아빠는 지금 70이 넘었어요."
뜨악한 표정으로 야멸치게 받아치는 희재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내가 벌써 70이 넘었구나. 사람들은 겉모습이 할아버지면 속마음도 할아버지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본인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마음은 늘 청춘인데, 몸만 어느새 늙어버렸다.
아무리 뛰어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결국 택시를 탔다. 희재는 택시 운전기사와 몇 마디 주고받았다. 영어를 잘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차를 타니 금세 UN 본사 앞에 도착했다. 이 건물은 1945년경에 그 당시의 최신 공법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70여 년의 세월을 견디다 보니 조금 낡기는 했어도 구조적으로는 매우 튼튼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앞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방문인 신청서를 작성해야 했다. 사무실에 들어가려는 순간, 문 앞을 지키던 경찰이 희재에게 '너 참 예쁘구나.'라며 말을 걸었다. 동양인인데도 불구하고 뚜렷한 이목구비와 큰 키 때문에 미국인들의 눈에는 희재가 매력적으로 보이나 보다.
UN 본부의 입구는 마치 공항 입국 심사장 같았다. 우리를 포함한 입장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모든 짐을 꺼내놓고 휴대품 검사를 받았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테러의 위협에 늘 시달리는 것 같다.
10시 30분쯤, 젊은 한국인 여성 가이드가 나와서 우리를 맞이했다. 알고 보니 UN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는 직원이라고 했다. 직원의 해설을 들으면서 UN에서 하는 일과 주요 현안들을 갖가지 게시물과 함께 관람했다. 안전보장 이사 회의실, 신탁통치 회의실, 총 회의실 등도 들어가 보고, 곳곳에 설치된 벽화와 조각 작품도 구경했다. 한국인 작가의 벽화도 있었다. 1층에는 역대 UN 사무총장의 초상화들이 걸려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의 초상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한국인의 긍지가 피어올랐다.
투어가 끝나고 지하로 내려가니 기념품 상점이 여러 개 있었다. 나는 외롭게 지내고 있을 사위에게 선물하기 위해 열쇠고리 1개를 7달러에 샀다. 자그마한 우체국이 있길래 엽서도 한 장 사서 희재와 함께 아내에게 안부 편지를 써 부쳤다.
견학을 마친 후, 다섯 블록쯤 떨어진 유명한 베이글 가게로 갔다. 베이글은 유대인이 많이 먹는 음식으로, 밀가루 반죽을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서 끓는 물에 데치고 구워서 만든 빵이다. 이 빵을 반으로 잘라서 그사이에 치킨 또는 연어와 함께 야채 등을 곁들인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희재는 옛날에 학교 다니면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이런 베이글을 자주 사 먹었다고 했다. 오늘 먹은 것 같은 고급 샌드위치는 아니었고, 1달러짜리 베이글에 크림치즈만 발라 먹었다면서 그땐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웃음 지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외로운 미국 땅에서 동그란 빵만 먹으며 공부했을 딸의 모습을 떠올리니 더 풍족하게 지원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시련을 이겨내고 이렇게 잘 돌아와서 지내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기도 했다.
반쯤 남은 베이글을 포장해서 가방에 넣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허드슨강 선착장으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는 다른 승객이 이미 타고 있었다. 희재한테 말을 걸었더니 '한국말로 크게 말하지 말라'면서 주의를 줬다. 운전기사나 합승 승객은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자기네들 흉을 보거나 욕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실례라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희재 말대로 조용히 있었다. 조금 지나니까 희재가 그 미국인이랑 신나게 영어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도 대화에 가끔 끼어들어서 '브루클린 브리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사람은 나보고 뉴욕에 많이 와 본 것 같다면서, 자긴 뉴욕에 처음 왔다고 하길래 나도 딸 덕분에 처음 와본다고 말해 주었다.
어느새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는 표를 사서 승선 대기 장소로 들어갔다. 미국은 일하는 사람의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인지, 웬 할머니가 검표를 하고 있었다. 배에 오르기 전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위치를 물으니, 이곳에는 화장실이 없다고 했다. 뉴욕에서는 지하철은 물론, 일반적인 건물이나 공공장소에서도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찾기 힘들다. 가뭄에 콩 나듯이 공공 화장실이 있긴 하지만 거의 다 유료라서 25센트짜리 동전을 여러 개 넣어야 문이 열린다. 이런 걸 보면 한국의 지하철이나 화장실 문화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허드슨강 한복판의 작은 리버티섬에 서 있다. 섬으로 향하는 배가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속도가 더해질수록 강바람이 세게 몰아쳐서 내복을 입었는데도 춥고 볼이 시렸다. 희재는 세찬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서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손이 시렸지만 마지못해 핸드폰을 받아 들고 화면 속에 희재를 담았다. 빨간색 상의를 입고, 목에 감은 검은 마후라와 머리카락이 강바람에 휘날리는 딸의 모습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마치 허드슨강의 붉은 요정처럼 밝고 환하게 빛났다.
추위를 피해서 기둥 뒤에 기대어 서 있는데, 앳되어 보이는 청년이 다가오더니 승선하기 전에 우릴 찍은 사진으로 만든 자유의 여신상 합성 사진을 보여주며 20달러에 사라고 했다. 그럴싸하게 잘 나왔길래 큰맘 먹고 지갑을 여는 찰나, 그 사진사 역시 희재에게 예쁘다고 하면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 듣는 말인지. 내 딸은 미국 사람들 눈에 정말 예쁘게 비치는 모양이다.
저 멀리 에메랄드색으로 빛나는 자유의 여신상과 맨해튼 철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난 뒤 배에서 내렸다. 직접 본 자유의 여신상은 미적으로 큰 감흥은 없었지만, 그래도 뉴욕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므로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선착장 건너편, 퍼런 유리창으로 둘러싸여서 50층 정도 되어 보이는 최신식 건물에 화장실이 있다길래 같이 가 보았다. 1층은 시민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어서 아무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뉴욕에 와서 처음 본 실내 공공장소로, 인테리어가 세련되었고 분위기가 현대적이었다. 커피와 빵을 파는 카페도 있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테이블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거나 컴퓨터를 하기도 했다. 과외공부를 하는 선생님과 학생으로 추정되는 무리도 종종 보였다. 벽에는 현대 미술 작품이 걸려있어서 한동안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서인지 피곤했다. 희재는 이제 좀 나의 생체 리듬을 알겠다면서 택시를 타고 나음 목적지로 가자고 했다. 비싼 앞자리로 예매한 뮤지컬 공연을 졸지 않고 감상하려면 잠깐 쉬어야 할 필요가 있다길래 네 말이 맞다고 냉큼 맞장구를 쳐주었다.
우버 택시 안에서 깜빡 졸다가 중간에 9.11 현장에 내려서 고인을 추모한 뒤, 지하철을 타고 타임스퀘어 역에서 내렸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이언 킹'을 보기 위해서다. 희재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고 하길래 무척 기대됐다. 공연이 오후 7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저녁 식사 시간이 애매해서, 희재가 사준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된장국과 함께 아까 포장해 온 베이글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저녁을 때웠다.
극장 안에는 어림잡아 봐도 1,500명이 넘어 보이는 관객으로 꽉 차 있었다. 일반석이 18만 원 정도 된다는데, 전 세계인들이 매일같이 오기 때문에 대부분 연일 매진이라고 한다. 무대 규모는 상상했던 것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짜임새가 있었고 야무져 보였다.
뮤지컬 '라이언 킹'은 원래 만화영화였던 것을 각색하여 리메이크한 것으로,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의상, 분장, 소품, 배경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완벽하여 공연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그중 단연 백미는 연극에 출연하는 각종 동물의 특징을 살려서 만든 가면(가면이라기보다는, 반 입체의 동물 형상)이었다.
라이언킹의 배경은 아프리카이므로, 무대에 등장하는 가면은 모두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의 본을 따서 만들었다. 가면에는 각 동물의 특성이 과장되고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었다. 배우들은 가면을 뒤집어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면 뒤에 있는 손잡이를 붙들고 움직이면서 섬세한 연기를 펼쳤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통과 꼬리도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 신기했다.
이 공연을 원활하게 상연하려면 뛰어난 연출가는 물론이고 화가, 디자이너, 전기 기술자, 건축 공학자, 조명 기술자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협업이 잘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희재가 최고의 작품이라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막을 내린 극장 앞에는 자전거를 개조해서 만든 인력거 수십 대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력거꾼은 대부분 젊은 청년이었다. 인력거꾼들을 지나 타임스퀘어 광장으로 나오니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화려한 전광판을 뒤로하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희재와 나도 이에 질세라 기념사진을 몇 장 찍은 후 허름한 가게에서 피자 한쪽을 사 들고 지하철을 이용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많은 일정을 소화하느라 길고 힘든 하루였지만, 처음보다 희재가 밥시간도 잘 챙기고 화장실도 잘 데려다줘서 참고 다닐 만했다. 그런데 희재가 계속 늦게까지 잠을 안 자고 있어서 건강이 염려된다. 적당히 하고 자라고 아무리 말해도 다음날 일정을 짜야한다고 끝까지 우기면서 말을 안 듣는다.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