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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Oct 13. 2021

조금 얄밉긴 해도 과연 내 딸이 효녀로구나

2018. 10. 29. 여덟째 날

 나이아가라 폭포를 본격적으로 유람하는 날이다. 폭포를 관람하는 방법은 총 세 가지이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폭포 전면에서 그 웅장한 외관을 감상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유람선을 타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 바로 앞까지 깊숙이 들어가 체험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뒤로 돌아가서 폭포와 연결되는 동굴을 통과한 후에 폭포의 뒤쪽을 감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제 폭포의 외관을 보았기 때문에 오늘은 두 번째와 세 번째 감상법으로 폭포의 속살을 보기로 하고 조금 일찍 호텔에서 나왔다.


 폭포를 관광하기에 썩 좋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어제보다는 맑은 편이었으며 몹시 춥지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는 그곳에서 일회용 비옷을 받았고, 나는 집에서 가져온 비옷을 그 위에 껴입었다. 비옷을 겹겹이 입지 않으면 폭포의 물보라 때문에 옷이 완전히 젖어 감기에 걸릴 것이고, 감기에 걸리면 딸에게 짐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람선을 타고 폭포 앞쪽으로 다가가니 세찬 물보라와 바람 때문에 눈을 뜨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도 희재는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부녀간의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동영상을 찍으면서 나에게 다가와 인터뷰를 했다.



아쉽게도 마이크에 물이 들어가서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

 

 말굽 모양의 큰 폭포가 주인공이라고 하던데,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가로로 길게 뻗은 작은 폭포가 더 마음에 들었다. 보면 볼수록 평소에 즐겨 그리던 한국이나 중국의 폭포 모양과 비슷해서 친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남기면 좋을 것 같아서 다양한 구도로 여러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희재는 남들이 잘 안 찍는 폭포를 집중해서 기록하는 내가 신기한지 사진을 찍는 나를 계속 찍었다.


 내게는 스스로 세운 작은 규칙이 하나 있다.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해당 여행지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다. (해외여행이라고 해 봤자 1~2년에 한 번씩 가는 중국 여행이 전부긴 하지만) 돈을 많이 들여서 다녀오는 여행이 아깝지 않게 뭐라도 남겨야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타국의 특별한 정취와 감상을 그림으로 기록하여 기억하기 위함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서양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동양의 기법으로 한번 그려봐야겠다.


 유람선 투어를 마친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서 체크아웃을 했다. 오후 1시가 되었지만, 점심을 제대로 챙겨 먹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호텔 1층 라운지 한쪽 구석의 빈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아 어제 식당에서 포장해 온 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웠다. 테이블도 없이 엉거주춤 앉아 음식을 먹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안 됐어 하는 눈빛으로 흘금거렸다.


"어째 우리 모습이 썩 품위 있어 보이는 것 같지는 않구나."

"저는 좋은데요!? 낭만적이지 않아요? 배낭여행 온 것 같고!"

"요즘에는 낭만의 의미가 좀 달라졌나..? 나 때는 호텔에서 스테이크 먹는 걸 낭만적이라고 했는데.."

"아빠는 낭만이 아니고 불만이 많으시네요! 나보다 더 섬세한 것 같아."

"불만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다. 오해 말아라~"


 여하튼 점심을 그렇게 거지(?) 같은 품새로 때운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위쪽인 말굽 폭포 근처로 갔다. 폭포의 뒷면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뒷면 관람소에서도 일회용 우비를 한 장씩 나눠 주었고, 그것을 입고 동굴로 들어서니 폭포 뒤쪽으로 향하는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첫 번째 동굴을 통과하여 폭포의 우측 뒷면에 도달했다. 바위 옆의 공간이 제법 넓었다. 쉬지 않고 세차게 내리꽂는 거대한 물대포를 코앞에서 보고 있자니 대체 어디서 이 많은 물이 자꾸만 생겨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곳에서 희재와 한동안 폭포를 감상하며 사진을 찍은 뒤, 다시 돌아 나와 폭포의 바로 뒤로 연결되는 두 번째 동굴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우람한 물줄기만 보였다. 거대한 물줄기와 그것이 질러 대는 포효! 나는 그 가운데 서서 존재의 미미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 3단계를 모두 끝낸 후,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희재는 버펄로 공항까지 타고 갈 택시를 부르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택시 회사와 연락이 통 닿지를 않았다. 공항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터라 희재와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으로 택시 회사 한 곳과 어렵사리 연락이 닿았고 마침내 검은색 왜건 우버 택시가 우리 앞에 와서 멈췄다. 칠흑같이 까만 차의 경적이 우리를 향해 울리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희재도 마음이 놓였는지 비로소 얼굴색이 밝아졌다.


 택시를 타고 한참 가다가 나는 뒤늦게 내가 범한 실수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까 호텔에서 희재는 시간 맞춰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먼저 방을 떠났고, 내게 두고 나오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내 딴에는 방안을 샅샅이 둘러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콘센트에 꽂혀 있는 희재의 휴대폰 충전기를 보고서도 호텔의 물건인 줄 알고 그냥 나왔던 것이다. 희재가 아끼고 또 필요한 물건인데, 되돌아가서 가져오기에는 비행기 시간이 너무 촉박해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희재에게 정말 미안했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슴이 미어지기까지 했다. 아비로서 딸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참기 어렵다.


 급하게 택시를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얼마쯤 가다 보니  안에서 디젤 기름 냄새가 나는  같았다. 그리고 내가 앉아 있던 뒷좌석에 쓰레기가 두어 개 떨어져 있었고 시트는 끈적거렸다. 그래서 희재에게 택시가 조금 지저분하다고 했더니, 실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 차도 천우신조로 간신히 잡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가는데,  행복한 불만을 하시느냐?’ 하는 눈빛이었다. 같이 여행을 다니다 보니,  딸은 생각보다 무던한 데가 있고, 의외로 나는 귀족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뉴욕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작은 레스토랑에서 그곳에서 유명하다는 ‘버펄로 치킨 주문했다. 맛은 소문에 비해 그저 그런 평범한 치킨인  같은데, 희재는 맛있다고 했다. 역시,  딸은 나에 비해 너그럽다.



 오후 6시에 뉴어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전에 묵었던 메트로 호텔로 가서 맡겼던 짐을 찾았다. 뉴욕에 온 첫날부터 묵었던 이 호텔은 고전적인 멋과 나름의 품격이 있어서 꽤 마음에 들었으나, 마지막 날 불친절하게 굴던 종업원으로 인해 좋은 이미지가 깨져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다음 숙소와 여정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멋있는 폭포를 보고 와서인지 문밖으로 한 걸음을 떼는 순간, 이 호텔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소금에 물을 끼얹은 듯 녹아버렸다.  


 새로운 택시를 불러서 오늘부터 일주일간 묵게  아발론(AVALON) 호텔로 향했다. 가는 도중 아발론 호텔 직원으로부터 입실하기 전에 반드시 자기를 먼저 만나야만 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우리는 호텔 건너편 왼쪽에 있는 은행 앞에서  직원을 만나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들었는데, 왠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위에서 호텔 직원한테 이런저런 주의 사항을 듣는다는 것은 마치 간첩끼리 접선하는  같기도 하고, 왠지 정상적인 일이 아닌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직원의 주의 사항을 대충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다.


 호텔에 들어가더라도 호텔 로비의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는 직원들과는 눈이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왜냐하면 어리숙하게 굴다가 이것저것 영어로 묻는 말에 빨리 답변 못  하면 곤란해진다. 숙소에서는 옆방 사람들과 쓸데없이 아는 체를 하지 말고, 간단히 인사만 해라. 방 안에서는 가급적 목소리를 낮춰라. 옆방에 말소리가 들리게 되면 서로 좋지 않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도난을 당할 수 있으니 문단속을 철저히 잘해라. 현관 열쇠는 절대로 잃어버리지 마라. 분실 시에는 10만 원을 내야 한다, 등이었다.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떼어 놓다 보니 어느덧 우리는 아발론 호텔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오늘 우리가 투숙하는 호텔의 주인, 아니 엄밀히 말해서  방의 주인은 한국인이었다. 뉴욕 중심가의 호텔 방값은 가히 살인적이라  만큼 무척 비싸다. 그래서 이곳 사정을  아는 현지인이 빌딩의  하나를 임차한 , 칸막이로 공간을 여러  만들어 싼값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그런 곳인데, 아마도 불법으로 운영하는  같았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이 건물 27층에 있었다. 단면 구조를 보면 화장실과 욕실이 딸린 큰 방 하나와, 작은 방 둘, 그리고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방과 화장실이 있다. 주방에는 한국의 펜션처럼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프라이팬 등의 간단한 주방 기구가 갖춰져 있었다. 공동 화장실은 작은 방 투숙객들만 쓸 수 있었다.


 희재는 화장실 사용이 잦은 나를 위해 화장실과 욕실이 붙어있는 가장  방을 예약했다. 방의 크기는 지난번에 투숙했던 메트로 호텔보다 조금  컸고,  안에 냉장고와 TV 없어서인지  넓어 보였다. 숙박비는 하루에 20 원으로 메트로 호텔에서의 35 원보다는 훨씬 저렴했다.  안에는  침대 하나와 보조 침대가 있는데, 내가 보조 침대를 쓰려했더니 희재는 한사코 자기가 그것을 쓰겠다고 했다.


 밤이 늦어 자려고 하는데, 칸막이가 얇은 탓인지 옆방에서 어렴풋한 목소리가 들렸다가 곧 잦아들었다. 그래서 우리도 소리를 낮춰 대화해야만 했다. 계속 목소리를 낮춰서 말하려니까 신경도 쓰이고, 독립군이 일본 형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조용히 밀담을 나누는 것 같아서 조금 답답하다고 했더니, 희재는 “아빠는 참 불만이 많다.”며 핀잔을 준다. 그리고 급기야는 카톡으로 제 엄마한테 불만투성이 아빠라고 고자질까지 하였다. 그런 일을 엄마에게까지 일러바치는 딸이 살짝 얄미웠지만, 나를 위해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는 번거로운 여행을 기획하고, 큰 침대도 양보하는 희재는 효녀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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