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고백, 그 사이
보이지 않는 질병, 루푸스 신염과 함께 산다. 때때로 얼굴이 붓고 만성 피로를 달고 살뿐, 겉으로는 잘 티 나지 않는다. 처음 병을 알게 되었을 때는 나의 불행을 꼭꼭 감춰두고 싶었다. 나의 병이 내 약점인 것만 같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곧 나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설명 없이 집에서 아픔을 오롯이 감당하고 있다 보면 뒤에서 들려오는 말들이 있었다. 게으르다, 뺀질거린다, 책임감이 없다 등. 병을 숨기고 싶은 내가 치러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서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오해의 역사는 길다. 휴학과 늦은 과 진입 덕에 고요히 보내던 대학교 3학년이었다. 남자애들은 군대에 가 있었고 여자애들은 취업 준비며 복수 전공이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방황이라고 생각하며 흠모해왔던 타과 전공 수업들을 신청했다. 이번 학기도 역시나 혼자겠지, 생각했는데 들어가 보니 같은 인문계열 반 언니였던 은영과 수현이 있었다.
은영과는 오랜 시간 비슷한 관심사를 주고받으며 친해진 사이였다. 살가운 그와 친구가 되어 속마음이나 고민을 터놓기도 하고, 종종 학교 밖에서도 만나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는 사이였다. 내내 고시를 준비해와서 새내기 이후로 거의 본 적이 없는 수현과 단둘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셋이라면 오히려 다 같이 친해질 기회인 것도 같았다.
우리 셋은 A수업을 함께 듣고, 나와 은영이 B수업을 함께, 나와 수현이 C수업을 함께 들었다. 셋이서 듣는 수업은 화, 목 오전에 열리는 강의였다. 150명 단체 강의여서 출결은 각자 서명을 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우리는 셋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각자 수업에 못 올 때 대신 서명을 해주기로 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대학병원 외래 진료가 있어서 학기 중 세 번은 결석해야 했다. 진료확인서를 떼어 가면 되지만 언니들이 있었기에 번거롭게 확인서를 떼지 않아도 되었다. 은영과 수현도 한 번씩 각자의 사정으로 결석을 했고 우리는 대신 서명을 해주며 키득거렸다. 수업이 끝난 후 결석한 사람에게 필기 파일을 바로 전송해주기도 했다.
세 번째 외래를 갔던 11월 12일 목요일, 나는 집에서 8시에 나섰다. 어젯밤에 병원 진료가 있어서 출석을 부탁한다고 보내 놓은 카톡을 언니들이 읽었는지 열어보았다. 한 명은 읽고 한 명은 읽지 않아서 내 카톡 옆엔 1이라는 숫자만 있었다. 화면 위쪽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였다. 수업이 1시간 남아 있었다. 매번 칼같이 답장해주던 이들이라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화면을 껐다. 다음 주 화요일 수업이 있을 때까지 1은 사라지지 않았다.
11월 17일 화요일, 셋이서 함께 듣는 수업에 갔다. 은영과 수현이 이미 와 있었다. 늘 그렇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흔들어 보였는데 둘이 갑자기 귓속말을 하며 내 쪽에서 시선을 뗐다. 지워지지 않은 카톡 옆 숫자 1이 떠오르며 심장이 뛰었다. 그들의 옆자리에 가서 앉아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지만, 아무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게 확실했지만, 나는 아무 행동을 하지 못했고 언니들만 곁눈질하다가 수업이 끝나버렸다. 내게는 말을 걸지 않는 두 사람은 둘이서만 키득거렸다. "저 먼저 가볼게요"라고 말하려고 입을 뗐다가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만 강의실에 남겨둔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인 수요일. 2시부터 은영과 둘이서만 듣는 B 수업이 있었다. 나는 전 수업이 일찍 끝나서 미리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망설이다가 은영의 자리도 내 옆에 맡아두었다. 은영이 강의실 앞문으로 들어오며 아주 반갑게 인사를 했다.
"희우 안녕!"
하룻밤 사이에 오해가 풀린 걸까, 생각하며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옆자리에 두었던 가방을 치워 은영이 앉도록 해주자, 은영은 자기가 어제 명동에 있는 가게에 가서 직접 사 온 것이라며 반짝이는 팔찌를 보여주었다. 나는 은영을 흘끗거리며 애써 예쁘다고 했다. 곧 수업은 시작했고 어찌어찌 쉬는 시간이 왔다. 나는 은영에게 물었다.
"언니, 혹시 제가 지난 목요일에 수업에 못 간 게… 기분 나빴어요?"
그러자 은영은 내가 그걸 물을 줄 몰랐다는 듯 입술을 움찔거리더니 시선을 내 눈에서 자신의 노트북으로 옮겼다.
"아니, 나는 괜찮은데… 수현이가 좀 싫어하더라고…."
그는 끝내 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다음 날, 다시 셋이서 듣는 수업이 있었다. 수현이 이미 강의실에 와 있었고 나는 그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둘이서라면 상황을 좀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현은 내게 눈짓으로만 아는 체를 하고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눈치만 보고 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은영이 강의실로 들어왔고, 다시 지난 목요일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모두 앞만 보며 수업을 듣고 나를 빼고 둘이서만 슬쩍슬쩍 말을 주고받았다. 수업이 끝나고서도 아무도 내게 잘 가란 말도, 이따 보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혼자 점심을 먹으며 이 식당 어딘가에 있을 수현을 생각했다. 이따 수업에서 수현을 마주치면 무슨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까, 먼저 사과를 해야 할까, 아니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하다 보면 풀리는 걸까, 어쩌면 풀 것도 없는 것은 아닐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턱턱 막히는 숨을 골라가며 밥을 삼켰다.
2시 C수업 강의실에 들어섰다. 수현은 언제나처럼 이미 와 있었다. 그는 해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는 수현마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굴 줄은 몰랐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따라 인사하며 손에 있던 프랜차이즈 커피를 하나 건넸다.
“언니, 이거 언니 거예요."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사 온 커피를 건넸다. 수현은 고맙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간은 흘러갔다.
수업을 마친 후 집에 가면서 은영과 수현에 대한 생각을 계속 굴려보았다. 둘이 있을 때는 잘해주고 셋이 있을 때는 아는 체도 하지 않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말을 해주면 좋을 텐데."
생각이 너무 커져서 입 밖으로까지 튀어나왔다. 괜히 길바닥에 혼자 굴러다니는 일회용 컵을 발로 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주일이나 지속되고 있는 친한 언니들과의 어색함을 이렇게 학기가 끝날 때까지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한 달이 남아 있었다. 그날 밤 속이 상해 꺼이꺼이 울다가 결국 수현에게 카톡을 보냈다.
"언니, 저는 사실 루푸스 신염이 있어요. 그래서 매달 병원 진료를 받는 것이고요. 언니들이 불편했다면 제가 병원 진료확인서를 떼서 제출했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게 더 편하다고 생각해서 출석을 부탁했어요. 꾀병을 부리거나 한 것은 아닌데,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현에게서 답이 왔다.
"그랬구나, 우리가 출석을 자꾸 대신해주니까 네가 수업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선배로서 그러면 안 되는데 철없이 굴었던 것 같아. 미안해, 희우야."
휴대폰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비 오듯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울었다.
눈물을 다 흘려보내고 나서 은영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했다. 은영은 이미 내 병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수현에게 그 말을 전해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같이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충분히 서로 이해해줄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오해했다. 수현에게는 적절한 사과를 받고 끝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내 상황을 알고 있는 은영에게는 아니었다. 은영과는 더 친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심지어 그는 자신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다고 했으면서, 셋이 듣는 수업에서는 내게 일언반구 건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그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지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적당한 처세술로 상황을 넘기려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그와 맛집을 찾아 다니지도, 서로의 고민을 나누지도 않았다.
오해는 반복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주면 좋으련만. 이십 대 초반의 친구들은 그렇게 속이 깊지 않았다. 또 다른 오해를 샀던 날 카톡을 보다가 엉엉 울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몸이 아픈 게 뭐가 그렇게 죄야!"라고 소리쳤다. 나의 울음소리에 놀란 선희와 성우는 빠르게 노크를 두 번 하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엄마 아빠를 보자 더 서러운 마음이 들어 훨씬 큰 목소리로 울었다. 성우는 티슈를 가져다주고 선희는 내 옆에 앉아 내 등을 쓸어 주었다. 그리곤 훌쩍훌쩍, 물 머금은 내 사정을 듣더니 슬며시 말했다.
”모두 널 이해할 순 없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은 일어날 거야, 희우야."
나는 너무 울어서 코끝이 찌릿한 채로 선희를 올려다보았다. 절망적인 말이었다. 선희는 덧붙였다.
"네가 말하기 싫으면 안고 가야 해. 그 마음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어. 오해를 사기 싫으면 말해야 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맞는 말이었다. 속으로는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어, 아픈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걸.
병을 고백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괴롭다. 투석을 시작하게 된 후로 시간과 이동의 제약이 생겨서 나의 불행을 고백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이전처럼 말없이 숨어버린다면 오해가 쌓일 것을 알기에, 이제는 아픔을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질병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 고백에 대한 답이 연속된 질문으로 돌아오면 더더욱 힘들다. '말하고 싶은 만큼만 말할 수는 없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오해와 고백 사이를 넘나 든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언제 말해야 할지, 누구에게는 말해도 괜찮고 누구에게는 그렇지 않을지, 나의 고백이 그럴듯한 변명으로 들리지는 않을지. 만남을 시작하기도 전에 혼자 예상 시나리오를 짜며 나를 축낸다. 관계는 시작도 전에 사그라든다. 나의 병은 나의 관계까지 옭아맨다.
오해 없이 모든 게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