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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May 22. 2020

나는 나를 죽여왔는지도 몰라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나는 벌벌 떨었다. 2017년 가을, 신장이 절반만 살아있다는 말을 들은 후로는 금방이라도 죽음이 나를 덮칠까 봐 두려웠다. 새해가 밝았다는 핑계로 사주를 보러 다녔다. 무속인들에게 조심히 그리고 간절히 꺼내놓은 질문은 단 하나였다.

    "올해에 저 죽나요? 아니라면 언제 죽나요?"


    정말 죽는다는 대답 돌아오면 견디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겁쟁이인 나는 '차라리 언제 죽는지 알 수 있다면 이번 생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음 생을 노리리라'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찾아간 세 곳의 모든 점집에서는 "삼십 대부터는 건강할 일만 남았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썩은 동아줄일지라도 꼭 붙잡고 싶었다.      


    샤머니즘 다음은 종교였다. 2019년 여름, 두세 달 후에는 투석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몇 달 전부터 이미 들었던 말이지만, 확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크레아티닌* 수치가 빠르게 높아지면서 의사의 말은 현실이 되어갔다. 여성의 경우 0.6~1.0이 정상 수치인데 나는 8월에 이미 5.19를 넘었다. 당장 투석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치라고 했다. 신장은 낫지 않는 장기인 걸 알면서도 낫기만을, 투석을 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나는 엄마가 다니는 절에 다니기 시작했고 매일 불공을 드렸다. 하루에 네 번 절에 들러 한 시간씩 불공을 하는 스파르타 정진*이었다. 스님은 두 달 정도 불공을 하고 몸 관리를 잘하고 나면 투석을 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기적은 일어나는 법이라고 내 손을 꼭 잡고 말해주었다.     


    나는 절실했다. 뼛속까지 합리주의자인 나는 대학교에서 배워온 과학적 사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사, 나의 건강이 달린 문제에서는 이성적 사고 회로가 작동하지 않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불공을 했다. 하지만 겁쟁이답게 스님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 있던 것은 아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사실을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잘 알고 있었다. 70%는 투석을 당연히 하게 될 거라는 마음, 30%는 낫길 바라는 방어적인 마음을 유지했다. 그마저도 몸 상태가 악화되어 절에 가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자 희망은 고작 10%로 줄어들어 버렸다.   

   

    그런데도 계속 불공을 했던 이유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다. 투석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만 했다. 부처님께 나를 제발 낫게 해달라고 빌기보다는, 고요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몸이 이렇게 힘든데 왜 투석을 하기 싫은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억울하고 속상한 내 마음을 어떻게 달래주면 좋을지 고민했다. 나를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위기가 찾아와서 더 내려놓고, 더 포기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점점 더 대단한 마음을 먹어야만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속상했다. 하지만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정말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러니까 나와 선희는, 사주와 종교 같은 무형의 믿음에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야 겨우 이 질병과 고난과 고통과 장애와 슬픔을 견뎌낼 수 있었다. 내 면역계가 나를 공격하는 병이라니. 내가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 병 루푸스와 나는 닮아 있는 듯하다. 루푸스는 면역계가 과잉 반응을 해서, 다시 말해 지나치게 활성화돼서 외부 침입자뿐만 아니라 내 몸을 공격하는 병이다. 그래서 나는 면역을 억제시키는 약들을 먹는다. 나도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 대학원 시험기간 중 무리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곤히 자고 있던 중 갑자기 손목이 몹시 아팠다. 손목에 손을 대보니 핏줄이 날뛰고 있었다. 나는 놀라고 아팠지만 손목을 부여잡은 채 다시 잠들었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그 자리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멍하니 침대에 앉아 손목을 바라보고 있는데 몸을 혹사시켰던 지난 며칠이 떠올랐다.


놀라서 찍은 당시 손목 사진.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나를 죽여왔는지도 몰라.'

    눈에 확연히 보이는 시퍼런 멍은 꼭 내가 나를 때린 것만 같았다. 나는 목표가 생기면 지나치게 무리하며 나를 죽여가고 있었다. 마치 루푸스처럼.     


    신앙은 마음속 혼란을 진정시켰지만 투석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그토록 바랐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두 달 후 나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각주:

1. 크레아티닌: 혈청 크레아티닌 수치는 콩팥 기능의 지표로 사용된다. 여자의 경우 0.6~1.0 mg/dL이 정상 범위이다.

2. 정진: 불도를 닦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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