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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May 26. 2020

수술장에서의 위로, 달라진 나

    노란 불빛이 비추는 서늘한 공간, 그리고 초록색 수술복을 입고 분주히 움직이는 의사들. 나는 쿵쿵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그 속에 누워 있었다.

‘어떻게 겨우 부분마취만 하고 배 가르는 수술을 한다는 거지?'

울고 싶은 마음 반, 그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까칠했던 의사 선생님과는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친해졌고, 수술방에 들어와 내 맥박을 확인한 그는 "안 잡아먹어. 심장 터지겠다"라고 장난스레 말했다. 맥박이 100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술 전 날 입원해 복막투석에 대한 교육, 바이러스 검사, 피검사, 엑스레이, 골밀도 검사, 심 초음파 그리고 피하고 싶었던 관장과 제모까지 마치고 나서야 모든 준비가 끝났다. 창 밖을 보니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홀로 병원 침대에 누워 깜깜한 천장을 바라보니 가슴이 저릿했다. 배꼽 옆에 검은 마카로 표시해 둔 수술부위를 자꾸만 만져보게 되었다. 다음 날 눈을 떠서 수술실로 옮겨진 후에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것 같았다. 벌써부터 울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일기를 썼다.     

결국 투석을 하게 됐다. 작년부터 걱정하고, 올해에는 많이 울며 겨우 받아들이게 된 투석.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입원하고 나니 더 체감이 되어 무섭고, 두렵다.
일 년 좀 넘게 내 몸에서 같이 살아가야 할 실리콘 관..
조금 불편하겠지만 나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하며 힘내자!     


    어쩐지 내 일기는 항상 '힘내자'로 끝이 나는 것만 같아 웃음이 나왔다. 모두가 나처럼 억지로 힘을 내면서 살아가는 걸까 궁금했다. 내일 수술에 대한 걱정은 아무리 떨쳐내도 줄곧 떠올랐다. 휴대폰으로 신장병 환우 카페에 들어가, 복막투석 도관 삽입 수술에 대한 후기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제일 궁금한 것은 '얼마나 아픈가'였다. 어떤 사람은 마취할 때에만 따끔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생각보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다 났다고 했다.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다음 날 아침, 나를 수술실로 옮겨 줄 이송 침대를 기다리면서 긴장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물론 잘 되지 않았다.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신장병 환우 카페에서 본 댓글처럼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견디자'라고 굳게 다짐했다. 고통에는 이제 이물이 날 지경이었고 어찌 됐든 아픈 시간들도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술실의 공기는 차가웠다. 긴장된 내 마음을 더 쪼그라트리는 것 같아 서러웠다. 아프냐고 여러 번 묻는 내 질문에 간호사 선생님이 마취만 잠깐 따끔할 거라고 말해주어 안심이 되었다. 그 말과 다르게 마취부터 시작해 배를 째고 도관을 박아 넣는 과정까지 모두 아팠지만 '안 아프다, 안 아프다'하며 주문을 외웠다. 맥박은 계속 떨어지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투석을 시작하면 공부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느냐, 그런 것들이었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며, 투석을 하는 동안은 좀 놀아볼까 생각한다고 말했고 교수는 웃었다. 그리곤 진심을 담아, 투석을 해도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청춘을 잘 보내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내가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는 순간에 나는 언제나 무너졌다. 그것이 두려워 나는 이제 아무것도 결심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꿈꾸는 일이 금기처럼 느껴졌다. 열여덟 살에 처음 발병했을 때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공부를 그만두라고 했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하는 중이었다. 그 말만 들었어도 투석까지는 안 해도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파란색 천 너머로 교수에게 말했다.

    "공부만 하면 자꾸 아프니까요. 아무것도 안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시기가 겹쳤으니까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공부를 해서 아픈 게 아니라, 아프던 중에도 공부를 해낸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음이 더 단단해져서 배가 더는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되새기고 자책하던 날들에 대한 면죄부를 받은 것만 같았다.     


    주먹을 세게 쥐고 손톱으로 손바닥을 눌러가며,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버텨냈다. 수술대 위에서는 모든 생각이 더 또렷하게 떠올랐고 열여덟 살부터 반복된 사투를 곱씹었다. 오늘만큼은 내게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교수의 말처럼, 아프던 중에도 공부를 해낸 나는 대단하다고. 아니, 그저 살아낸 것만으로도 장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이제 호스가 달려버린 내 몸은 다시 이송 침대에 실렸다. 나는 수술장에서 나와 선희와 성우를 마주했다. 꾹 참아내던 눈물이 쏟아졌다. 오늘도 한 손은 선희의, 다른 한 손은 성우의 손을 맞잡고 훌쩍거렸다.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과 다시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할 거라는 서글픔과 배가 욱신거리는 고통스러움이 섞인 눈물이었다. 선희는 "고생했어, 잘했어, 이제 다 끝났어"라고 말하며 내 손을 쓸어주었다.      


    호스가 달린 내 몸이 너무도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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