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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un 02. 2020

장애인이 되었다

모든 것이 달라진 것만 같던 날

    "희우 씨, 투석한 지 3개월 됐으니까 장애 등록하실 거면 서류받아 가세요."
    대학병원의 복막투석실 간호사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마치 수납 영수증을 떼어가라는 말처럼 굴곡 없이 일정한 톤으로.
    "벌써 그렇게나 됐어요?"
    나도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3개월 간 투석을 했다는 의무기록을 떼고 제증명을 받았다. 장애심사 신청서는 밀봉되어 "제출 전 열람하지 말 것, 재발급 불가"라고 파란 글씨로 도장이 찍혀 있었다. 장애 진단을 받을 것은 내 몸인데도 나만 볼 수 없는 신청서를 들고 병원 안 딱딱한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밀봉된 종이봉투의 끝자락을 구깃구깃 매만졌다. 잔뜩 구겨진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처방전, 수납 영수증, 도착 확인서, 다음 외래 설명서, 의무기록 사본, 장애심사 신청서 등 갖가지 종이 더미들이 가방에 쑤셔 넣어진 채 지하철에 올랐다. 덜컹덜컹, 마음도 같이 덜컹이면서. 평소에는 눈을 붙인 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역들을 지나쳐오지만 오늘은 왠지 창밖만 내다보았다. 지하를 지나느라 껌껌한 전경만이 보였다. 아무리 지나도 밝은 구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며칠간은 심사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아직 마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는 말은 별로 힘이 없었다. 투석을 시작할 때부터 곧 장애인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그리고 사실은 이미 루푸스를 가지게 된 때부터 나는 세법상으로는 장애인이었다. 아빠는 아직 그 정도로 어려운 형편은 아니라며 회사에 세법상 장애인 증명서를 제출하기를 꺼렸지만, 나는 몸이 약해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병원비가 항상 더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국가에서 이미 인정해준 터였다.

    분명히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배꼽 옆에 30cm가 넘는 호스를 꽂고 매일 투석액을 열두 시간씩 몸에 넣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데, 내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라는 것은 어쩌면 자명한 사실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가끔은 엄마나 친한 친구들에게 깔깔대면서 나는 곧 장애인이 되니까 휴대폰 할인 혜택도 받을 거라고 말했다. 장애 전형으로 취업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고 내 몸에 맞는 회사에 가는 것을 우선순위로 계획도 세웠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서류를 받아 들고 나니, 이 활자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서류를 갈가리 찢어버리면 없던 일이 될까?' 생각했다. 나는 이틀을 꼬박 침대나 소파에 붙어 끊임없이 티비나 유튜브, 넷플릭스를 봤다. 가상공간에 나를 욱여넣어서라도 마음을 지금 이 자리에서 피하게 해주고 싶었다.

    어차피 할 거라면 빨리 해서 혜택을 받자는 실리적인 마음을 끄집어내고 끄집어내서 주민센터로 향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는데 막상 창구에 가니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은 전용 창구 이용하셔야 해요."
    '저 장애인 아닌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단지 "아"하고 짧게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장애인 전용 창구로 가니 이미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는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전에는 타인을 자세히 쳐다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드니 어떤 사람들 일지 궁금해졌다. 이제야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모녀인 듯했다. 머리를 묶은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엄마에게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는 약간은 힘겨운지 때론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은 그의 엄마겠지, 그의 엄마는 딸을 자신의 허리춤에 붙들고 서 있었다.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서류를 주고받고, 사인을 하고,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등록의 마지막 단계 즈음인지 그들은 앞으로 받게 될 복지 혜택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나는 불현듯 다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별 거 아냐. 아무것도 아냐'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나도 누군가와 같이 올 걸. 후회가 됐다.

    모녀가 떠나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서류 뭉치를 들고 직원 앞에 앉으며 작게 "안녕하세요"라고 읊조렸다.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대신 오셨어요?"
    직원은 내 신청서와 신분증을 번갈아 보더니 물었다. 나는 탁자의 점박이 무늬를 세다가 황급히 "아, 아닌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역시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거겠지, 나는 억울하면서도 기쁜 마음이 들었다. 내 아픔을 오롯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나 아픈 사람인데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멀쩡한 한 사람의 몫을 해내라는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주어지는 서류의 동의란에 체크를 하고 서명을 해서 건넸다. 몇 가지만으로 간단히 신청이 끝났다.
    "다 되셨고요. 심사가 한 달쯤 걸리니까, 그때 다시 오시면 돼요."
    나는 "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돌아섰다. 터덜터덜 걸어 나와 애꿎게 예쁜 하늘을 보고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아프다가 아픈 나에게 지쳤다가 하면서 한 달을 보냈다. 잊어버려갈 때쯤 내 앞으로 등기가 하나 도착했다.


    수신: 희우 귀하
    제목: 장애정도 심사결과 안내
    귀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국민연금공단에 의뢰한 귀하의 장애정도 결정 심사가 완료되어 붙임과 같이 『장애정도 결정서』를 송부하오니, 결정서 상의 내용을 확인하시고 동 주민센터로 방문하시어 장애인등록증을 발급받으시기 바랍니다.
       ▶ 판정 결과: 신장 - 심한 장애


    나는 '심한 장애인이구나, 심한 장애인은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곁에 있던 아빠에게 종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빠, 나는 심한 장애인이래. 말이 심하지 않아?"

    나름의 라임과 깔깔 거리는 과장된 웃음을 덧붙여 말했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을 붙들어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아빠는 내가 혼자 큰소리를 쳐놓고는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들썩이자 조용히 가까이 와 등을 토닥여 주었다. 딱딱한 글씨들이 적힌 서류는 손가락 사이에서 팽팽하게 흔들렸다.      


    신분증을 들고 주민센터에 찾아가니 결정서를 보여주지 않았는데도 직원은 이미 내가 '심한 장애인'이 된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서류가 많았다. 미혼인 데다 일을 하고 있지 않아서 사회보장급여를 신청할 수 있었다. 그를 위해 소득과 재산을 신고하고 금융정보 제공에 동의해야 했다. 여러 장의 종이 뭉치, 동의하라는 네모 박스가 눈 앞에 줄지어 있었다.      


    생각보다 우리나라 복지는 잘 마련되어 있었다. '심한 장애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지하철비 무료, 가스비·수도세 감면, 통신비 감면, 장애인연금 수당도 받을 수 있었다. 25만 원쯤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내가 지난 학기 대학원에서 연구 조교를 하며 20만 원을 받던 것보다 많이 받는 것이었다. '25만 원어치나 몸이 아픈데 고작 20만 원 받으면서 공부를 하고 교수님 연구실 쓰레기통을 비웠나'싶어 너털웃음이 나왔다.      


    이제 와서 달라질 거라곤 하나 없는데 모든 것이 달라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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