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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un 05. 2020

나의 새 신장은 어디에

    "A3309 들어오세요."    

    내 엄마 선희와 나는 진료실의 하얀색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황색 머리를 하고 안경을 쓴 이식 담당의 이 선생님은 이미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선희와 나는 서로를 한 번 흘끔 보고는 의아한 마음으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 선생님의 굳게 다문 입술이 잠깐의 침묵 후 떨어졌다.

    "... 어머니는 치료를 받으셔야 되겠는데요?"

    나는 다시 선희 쪽을 쳐다봤고 선희 역시 나를 보고 있었다. 커다래진 눈동자로. 이 선생님은 그런 우리 대신 모니터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단백뇨가 많이 나오네요. 당연히 공여는 못하시고요."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붙잡아 겨우 내 앞에 놓인 모니터를 바라봤다. 일렬로 줄 서 있는 수십 개의 약어들과 숫자들이 선희 몸의 이상 신호를 알려주고 있었다. 10년 병원 짬밥으로 어느 정도 알게 된 그 약어들 중 ALB이라는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 쓰인 숫자는 다른 숫자들과 다르게 빨간색으로 +3,이라고 적혀있었다. 이 선생님은 단백뇨 정상범위가 하루에 200mg 이하인데 선희는 2000mg이 넘게 나온다고 덧붙였다. 내가 열여덟 살에 발병하던 당시, 똑같이 들었던 말이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희우 씨 어쩌면 좋죠.. 다른 기증자를 구하셔야겠는데요." 

    이 선생님은 내게 잠깐 눈길을 주며 눈썹과 입술을 아래로 휘었다. 그러나 지금은 선희 몸도 걱정할 때라며,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선희가 아파서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기적 이게도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도 함께 들었기 때문이다. 


    선희는 원래 나에게 신장을 공여해 줄 예정이었다. 교차반응 검사에서 엄마 선희와 아빠 성우 모두 나와 피가 맞는다고 했다. 성우에 비해 선희는 건강 관리를 잘 해왔고,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우선 선희와 검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이식 수술을 위해서는 공여자와 수혜자 둘 다 몸에 어떤 이상도 없어야 하기 때문에 선희는 지난달 건강 검진을 받았다. 매 년 선희의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왔고 이제까지 이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달의 결과에서는 단백뇨가 +1로 측정되었다. 또 단백뇨 수치에 이상 징후가 있으니 재검을 권고한다고도 쓰여있었다. 선희는 어차피 3월 초에 핵의학검사로 그의 신장 여과율을 정밀하게 검사할 예정이었기에 검진받은 곳에 재방문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선희는 나보다 먼저 대학 병원에 와서 검사를 했는데 지난번보다 더 단백뇨 증세가 심해진 것이었다. 이 선생님은 선희에게 혈압약과 콜레스테롤 약을 우선 처방해주었고 한 달 후에 다시 보자고 말했다.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만 오간 채 진료는 빠르게 끝이 났고 나와 선희는 떠밀리듯 그곳에서 나왔다.      


    진료실 밖 새하얀 복도에서 선희와 나는 서로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한참을 침묵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왜 지금까지 선희가 공여해줄 수 있다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루푸스와 함께한 이후로 내게 늘 인생과 건강이란 순탄치 않은 것이었는데. 이번만큼은 왜 그렇게 확신해서 이렇게까지 허망한 기분이 들어버리는 건지. 내가 너무나 바보 같았다. 한편으로는 선희가 걱정되었다. 워낙 건강 체질이어서 감기 한 번 잘 걸리지 않던 선희가 단백뇨가 나온다니. 십 년의 투병으로 신장병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선희보다도 내가 더 잘 알았기에 더욱 착잡했다. 우리는 다음 진료 예약에 대해 설명해주러 나온 간호사와 간단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주춤주춤 그곳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선희와 나는 "카드로 결제할까", "화장실에 들렀다 가자", 같은 방금 전의 진료와는 상관없는 말만 주고받으며 걸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선희를 끊임없이 곁눈질했고 아마 선희도 내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이례적으로 텅텅 비어 있는 병원 복도에는 몇몇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 소리, 수납 영수증 팔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진료 후에는 항상 선희의 거친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는데 오늘은 약간은 떨어져서 빠른 발걸음으로 걸었다. 선희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얕은 한숨을 뱉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선희의 표정을 살폈다. 아차, 하는 마음이 들어 선희의 손을 붙잡았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엄마"

    나는 선희의 손을 잡아끌었다. 축 처져 있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내가 처져 있으면 선희는 미안해할 텐데, 사실 이건 선희가 내게 미안할 일이 아니라는 걸 나도 잘 알았다. 이건 우리 두 사람의 불행이지, 서로가 서로를 탓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속상한 마음이 드는 내가 밉고 또 안타까워서 마음을 꾹꾹 눌렀다. 그 마음을 밟고 외려 더 밝은 목소리를 올려 보냈다.      


    "엄마도 이제 싱겁게 먹어야 해"

    나는 팔꿈치로 선희의 허리를 쿡쿡 찌르며 미소 지었다. 그런 나를 보고 선희는 등을 약간 굽히면서 일부러 더 키득거리며 웃었다.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하며 손을 앞으로 모으는 시늉도 했다. 그러자 나는 어깨를 쭉 펴고 양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대며 "병에서는 내가 선배라고!"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어쩌면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선희와 나는 짜지 않은 메뉴를 신중히 골랐다. 잊어버리려고 해도 오늘의 진료 결과는 자꾸만 머릿속에 두둥실 떠올랐다. 선희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밥을 먹다가도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선희에게 나는 말했다.

    "엄마, 한 달 정도 약 먹고 나면 괜찮을 수도 있을 거야. 미리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선희가 사실은 내 걱정을 더 할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의 건강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엄마 걱정을 더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선희는 숟가락을 천천히 내려놓고 내게 시선을 두고 말했다. 

    "네가 걱정이어서 그래. 나는 내 걱정은 안 해. 어차피 늙어가는 몸이잖아"     


    나는 선희의 눈썹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을 천천히 번갈아 보다가 "으응"하고 말았다. 내가 건강한 딸이었다면 이런 때에 오롯이 선희 걱정만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내가 밉고 또 미웠다.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이 상황이 속상해 엉엉 울고 싶으면서도 그러기엔 선희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마음을 숨기고 싶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한숨 자고 나니 밀어두었던 이기적인 마음들이 치고 올라왔다. '나도 참 나다' 하면서 민낯의 마음들을 혼자서 끄집어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한 거라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제일 먼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었다.     


    '이러다 만약, 아빠도 공여할 수 없다고 하면 어쩌지?'

아직 검사도 해보지 않았는데 성우의 건강은 이미 염려스러웠다. 몇 달 전에 끊었지만 수십 년간 피워온 담배, 매일 밤 한 잔씩 걸치고 자는 맥주, 내가 아직 선희 뱃속에 있을 때 성우가 대발작으로 쓰러졌던 일 같은 것들이 연달아 터지는 불꽃놀이 폭죽처럼 터져 올랐다. 루푸스를 잠재우기 위해 일 년 동안 투석을 하고 난 후 이식을 하면 나는 95퍼센트의 정상인이 될 거라고 했는데. 이미 다 계획이 된 줄 알았는데. 그건 내게 이미 정해진 미래였기 때문에 플랜 B는 아직 마련되지 않은 채였다.      


    '그럼 나는?'

    이식을 못하면 나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이식 후에는 친구들처럼 1인분의 몫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풍족하지 않은 집에 더 이상 짐이 되지 않을 거라는 나의 계획, 나의 기대는? 속상한 마음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가족 이식을 못하게 된다면 나는 몇 년이나 투석을 더 해야 하는 걸까? 하루에 두 시간씩, 여섯 시간에 한 번씩 묶여서 지내는 투석액 줄에 얼마나 더 묶여 살아야 할까? 또 신장이 기능을 못해서 생기는 빈혈, 전해질 이상*, 통풍, 만성 피로 등을 달고 살면서 어떻게 남은 삶을 보내야 할까? 나는 이제 스물여덟인데 투석을 오래 하게 된다면 내 몸은 몇 살까지 버텨줄까? 자꾸만 물음표가 떠올랐다. 부정적인 가정을 한 번 시작하고 나면 나는 물음표의 구렁텅이에 빠지고야 말았다. 자주 반복되는 일인데도 물음표 더미에서 벗어나는 것은 매 번 어려웠다.      


    이미 정해진 것만 같았던 이식 수술도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쉬운 건 하나도 없구나 싶어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결국엔 또 하나의 물음. 나에게 건강한 미래는 주어질까?      






*각주

1. A3309: 최근 대학병원에서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명이 아닌 당일 배정되는 번호를 부른다. 

2. ALB: 알부민(Albumin). 소변 알부민을 가리킨다. 소변에 존재하는 알부민의 성질을 가지는 단백질. 

3. +1, +2, +3: 요검사로 알 수 있는 단백뇨의 유무의 등급이다. 소변 스틱을 소변 검체에 담구어 측정한다. 음성, +1(~30mg/dL), +2(~100mg/dL), +3(~300mg/dL), +4(1g/dL) 등의 등급으로 결과가 나뉜다. 정량 검사와 더불어 수치가 측정된다. 숫자가 커질수록 단백뇨가 많다는 뜻이다. 

4. 핵의학 검사: DMSA 신장검사. 신장의 형태 및 기능을 평가하는 검사. 방사성동위원소를 정맥주사 후 측정. (세브란스병원 건강칼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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