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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un 09. 2020

당연한 사랑은 없다



   나의 엄마 선희는 애정을 드러내는 편은 아니지만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십여 년을 아프면서 나는 어느새 가족들에게 받는 사랑과 걱정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언제나 아프고 힘든 건 내쪽이었고, 그런 나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보다도 고통 앞에 무기력한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런 선희는 며칠 전 내게 신장 공여를 해주려고 검사를 받았고 희귀암일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항상 내가 누워 있던 병원 침대에 선희가 있는 모습을 보자 몹시 가슴이 시렸다. 조직 검사 후에 곯아떨어진 선희의 거친 손을 맞잡고 한참을 그의 희끗희끗한 흰머리를 바라봤다.     


    "엄마, 아프지 마. 사랑해."

    평소에는 잘하지 않는 말을 잠든 그에게 거듭 말했다. 선희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 그가 내게 신장을 이식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속상해했던 마음이 떠올라 괴로웠다. 나의 아픔에만 정신이 팔려 그의 건강을 돌아보지 못한 날들을 후회했다.   

  

    선희와 나는 원래부터 다정한 모녀는 아니었다. 평범하고 투박한 모녀 사이에 더 가까웠다. 2010년, 2017년 두 차례 나의 긴 입원을 겪으며 우리는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복수가 차고, 요독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 하던 날들에 항상 선희가 내 옆에 있었다. 슬퍼할 때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을 때에도, 때로 병원에서 재미난 일이 생겼을 때에도 언제나 그랬다. 선희는 병원에서 자고 아침이면 출근했고, 저녁이 되면 병원으로 퇴근해 다시 내 곁을 지켰다. 우리는 햇반을 돌려 병원 밥을 나눠 먹었다. 식당에 가서 제대로 밥을 먹으라고 하면 선희는 혼자 맛있는 걸 먹어서 뭐하냐고 답했다.     


    요독이 심해 하루 종일 메스껍던 때에는 먹는 게 고역이었다. 식사 시간에 병실 내를 감도는 음식 냄새에도 구역질이 났다. 퇴근한 선희는 내가 한 술이라도 더 뜨길 바라며 나의 밥을 챙겼다. 선희가 일하는 어린이집에서 저염식 반찬을 조금 덜어 챙겨 왔다. 혹시 병원밥이 맛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이거라도 먹어보라며, 콩나물 무침, 계란찜 같은 반찬을 숟가락 위에 올려주었다. 그러면 나는 그의 걱정을 덜어주고자 꾸역꾸역 한 숟갈이라도 더 먹었다. 그러다 결국 체해 밤새 잠을 못 자고 소화제를 먹고, 오심 방지 주사를 맞고, 등을 두드리고, 간호사 선생님을 호출하는 날들이 반복됐다. 몇 번이나 속을 게워내다가 내가 울면 선희는 따라 눈물지으며 자책했다.     


    새벽에 더부룩한 느낌이 들면 나는 자는 선희 몰래 빠져나와 복도를 하염없이 걸었다. 선희가 나 때문에 속상해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선잠이 든 선희는 이내 나의 부재를 알아차리곤 복도로 나와 내 손을 잡고 함께 걸어주었다. 선희의 손을 잡고 걸으면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도 금세 지나갈 것 같았다.     


    2017년에 내 몸이 바닥을 칠 때 선희는 쉰다섯 살이었다.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해 출근하고 한 달을 내리 딱딱한 보호자 침대에서 자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였다. 나는 새벽에 깰 때마다 선희의 얼굴을 종종 들여다봤다. 염색을 하지 못 한 흰머리, 불편한지 인상을 쓴 표정, 거칠어진 피부, 앙다문 입술. 곤히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낮에 잠깐 앉아만 있기에도 불편한, 딱딱하고 비좁은 보호자 침대 위에서 선희는 겨우 새우잠을 잤다. 어디에서나 곤히 잘 수 있다며 당당히 말했지만 갈수록 그의 눈 밑은 어두워졌다.     


    게다가 애석하게도 나는 병원 자리운이 없어서, 항상 좁은 가운데 자리이거나 화장실 또는 세면대 옆 자리에 배정을 받았다. 그러면 사람들이 용변을 보는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때로는 그들이 양치질을 하다 튀기는 물도 맞았다. 그런 자리에 놓인 우리는 서로를 안타까워했다. 나는 선희에게 보호자 침대를 좀 더 내 쪽으로 붙이라고 말하고, 조금이라도 괜찮은 날에는 집에 가서 자라고 우겼다. 어느 밤에는 치매끼가 있는 옆 침대 할머니가 밤새 선희를 깨워 몸을 일으켜달라, 침대를 조정해달라, 하며 괴롭힌 적도 있었다. 선희는 그런 요구들을 싫은 내색 없이 들어주었다. 내가 그냥 모른 체하고 간호사 선생님을 호출하라고 하면 선희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자기가 없을 때 너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자신이 남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꼭 여행 온 것 같다, 그치?"

    병원 생활이 한 달에 가까워지던 어느 날 선희는 내게 말했다. 늘 그렇듯 보호자 침대에 모로 누운 채. 나는 선희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이 상황은 어떻게든 지나갈 거라고, 병원에 있는 덕분에 우리가 더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둘이서만 호텔에 와서 지낸다고 생각하자고 말했다. 그러면 나는 "치, 이렇게 불편한 호텔이 어딨냐"라고 답하며 등을 돌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맘때쯤 길어지는 병원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걸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힘든 건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선희는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열네 살에 엄마를 잃은 선희는 언제나 내게 "너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알아야 해"라고 말했다. 힘듦을 토로할 때마다 그 말을 듣던 나는 '엄마는 왜 위로를 안 해줘' 하고 더 크게 울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선희는 내게 홀로 서는 연습을 시켜온 것이다. 그가 열네 살 때부터 스스로를 얼마나 위로하고 다독여왔을지 감히 상상해본다.     


    선희는 내게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낸 것만도 대단하다고, 더 이상 무언가를 해내면서 너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 없다고. 나는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선희가 내게 해 준 말들을 기억한다. 이해가 안 되면 외우라고 했던가. 나는 암기하듯이 그 말들을 왼다. 나는 대단해, 나는 괜찮을 거야, 그가 내게 말했듯이 스스로 나를 달랜다. 그것조차 잘 되지 않으면 선희에게 달려가 슬픔을 토로한다.


    선희 없는 나를 여전히 상상할 수 없다. 오늘부터라도 나는 선희에게 더 많은 사랑을 돌려줄 것이다. 엄마, 사랑해. 아프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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