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자주 건네는 말이 있다.
"이식하고 건강해지면, 지금 이 시간을 '그럴 때도 있었지'하고 웃으며 추억하게 될 거야."
과연 그럴까? 이식을 하면 95% 일반인이라던데. 매일 여섯 시간마다 투석 줄에 묶여 살고, 샤워할 때마다 내 몸에 붙어 있는 호스(도관)를 바라보는 나는 그런 미래를 꿈꿀 수 없었다. 너무도 먼 미래일 것만 같았다.
"1차 검사는 모두 괜찮으시고요. 오늘 이식 수술 날짜 잡고 가시면 될 것 같아요."
이식 담당 의사 선생님은 마스크 너머의 기쁨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어쩌면 이 좌절의 순간을 추억할 때가 곧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지도 꿈꿀 수 없던 마음이었다.
워낙 건강 체질이던 엄마의 공여자 검사가 부적합으로 판명 난 것은 두 달 전의 일이었다. 이상 수치가 발견되었다며, 희귀 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순간의 진료실 안 공기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누구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고 내가 용기를 내어 나을 수 있는 병이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지만 어쩐지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선희가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3주간 우리는 많은 계획을 세웠고 무수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희귀 암이 맞을 경우, 선희의 직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계를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에 대해 계획을 세웠다. 나는 선희의 희귀 암 가능성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했다. 말을 해버리면, 그리고 누군가에게 걱정을 받아버리면, 그게 곧 사실이 될 것만 같아서. 우리는 두렵고 간절했다.
다행히 선희는 다발성 골수종이 아니었고, 혈압약과 콜레스테롤 약으로 관리하면 전과 같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아빠는 그 답이 돌아오고 나서야 매일같이 출근하던 당구장에 다시 가기 시작했다.
다음은 아빠 성우 차례였다. 그는 내가 엄마 배 속에 있던 때에 원인 불명의 고열로 사흘간 의식불명인 적이 있었다. 학생운동과 2년가량의 수감 생활, 그리고 수많은 고문 때문에 후유증도 앓고 있었다. 나는 많은 기대를 할 수 없었고 엄마의 일을 겪으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부모님이 아프지 않은 것에 그저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성우의 소변검사에서도 미세 단백뇨가 관찰되었고 의사는 조직검사를 권했다. 일상생활을 하기에 무리가 없는 수치이지만, 공여를 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성우는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말끝을 흐려가며, 나지막이 말했다. 미안하다고.
"누나, 이식 날짜 잡으래!"
다시, 내 앞의 웅이가 말했다.
이미 엄마와 아빠 모두 이식 검사에서 공여 부적합 판정을 받고 난 후, 세 번째의 상담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것을 이미 두 차례나 겪었기 때문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잠재운 채 진료실에 들어갔었다. '이식 수술 날짜 확정'이라는 말이 들려오자마자 억눌렀던 감정들은 마음 곳곳을 비집고 올라왔다.
'이제 살았어!'
오빠도 아니고 동생에게는 신장을 받을 수 없다고, 투석에 익숙해지고 있으니 뇌사자 이식을 기다려보겠다고 말해왔음에도, 막상 이식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니 환희가 차올랐다. 진료실에 들어오기 전까지 동생에게 하염없이 미안하던 마음은 어딘가 숨어버린 듯했다. 옆에 앉은 웅이의 얼굴을 다시 보고서야 나는 얼마나 나밖에 모르는 인간인가, 창피함이 뒤늦게 몰려왔다.
내가 온갖 감정에 뒤섞인 눈물방울을 훔칠 때, 내 동생 웅이는 그저 씩씩했다. 잘됐다며, 자기도 건강 관리를 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 애의 다부진 표정이 더 애틋하게만 느껴졌다. 그 애의 손을 가만히 쓸어보았다.
아직 우리에게는 몇 가지 변수가 남아 있다. 이 선생님의 말씀대로 스물여섯 살의 젊은 공여자인 웅이에게 큰 이상은 없겠지만, 그래도 2차 검사들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는 이 조심스러운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더 이상 스스로 실망하지 않기 위해, 또 그 실망으로 가족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
아직 아무것도 장담할 수는 없다. 지금껏 세워왔던 계획은 모두 틀어졌고 이제는 더 실망할 마음이 내게는 남아있지 않다. 이식 수술을 하더라도 혈장 교환술, 루푸스 활성도, 거부 반응 등의 문제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자꾸만 새어 나오는 희망과 생에 대한 의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 살고 싶다. 간절하게도. 이기적이게도 건강하게 살고 싶다. 투석 줄에 그만 매여서, 자유롭게 몸을 돌보며 살고 싶다.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왔을 때 병원에 다니는 이야기, 몸 컨디션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때로는 장기하의 노래 가사처럼 이렇게 말하고 싶다.
"별일 없이 산다"라고.
별일 없는 삶을 꿈꾸며, 그저 평범하고 사소해서 아름다운 일상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언젠가 나도 지금 이 순간을, "그때 그렇게 힘들었지"라고 추억할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