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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un 23. 2020

아픈 몸과 살아가는 법

    슬픔에 중독되어 허우적거리던 때가 있었다. 몸이 아프든 아프지 않든 침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흘렸다. 세상과 나와 부모와 과거를 탓했다. 펑펑 울건 훌쩍 울건 적당히 울건 상관없이 마음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해소하지 못한 감정들을 끌어안고 누군가 나를 위로해주길 기다리거나, 누군가 나의 우울을 방해하기만을 기다렸다. 혼자서는 우울을 가라앉힐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자기 연민의 시간이 가장 편안한 것 같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픈 내게 마음 쓰고 있다고 여길 수 있었으니까.     


    아플 때 드는 생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나는 왜 내 몸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싶은 자책

    -주로 위염이나 장염 같은 소화불량을 겪을 때 드는 생각이다. "뭘 잘 못 먹었나, 그걸 왜 먹었나"를 되뇌며 끊임없이 나를 책망한다.

    두 번째. '왜 나만?' 고작 이렇게 살 거라면 죽고 싶다는 좌절

    -주로 통풍, 두통, 관절염 같은 직접적인 통증이 지속될 때 드는 생각이다. 고통이 멎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기인한다.     


    가만히 앉아 나를 불쌍해하며 울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믿었다. 나와 같은 병을 앓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분명 나와는 다른 좋은 조건이, 그러니까 나보다 증상이 덜하다거나, 예후가 좋은 타입이라거나, 가정이 유복하다거나, 아픈지 얼마 안 됐다거나 그런 조건들이, 그를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일 거라고 제멋대로 단정 지었다. 우울의 꼬리를 열심히 이어가고 있을 때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다.

    "내가 지금 운다고 달라지는 게 뭐지?"     


    어릴 때부터 효율 주의자였던 나는 스스로를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고작 열두 살에도 떼를 쓰지 않고 '운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행동하자'라는 일기를 쓰곤 했다. 반작용인지, 나이를 먹은 후에는 상황을 가리지 않고 눈물부터 흘리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어린 내가 맞았다. 울기만 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지금 울고 있는 이유가 정말 죽고 싶어서가 맞는지 질문을 거듭하며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돌아온 답은, 건강하게 잘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2017년 몸 상태가 바닥을 칠 때, 나는 누구보다 살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 죽을 수도 있던 때에는 그렇게 살고 싶었으면서, 지금은 고작 장염이나 위염, 두통, 통풍 같은 부수적인 잔병치레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기가 찼다. 살고 싶어서 밥 먹는 연습과 걷는 연습을 해서 병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그때도 살아냈다면 지금도 살 수 있었다. 살아야 했다.     


    원칙을 세웠다. 적어도 아플 때에는 이유를 찾거나 죽음을 생각하지 말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다만 믿는다. 이 시간도 어떻게든 지나갈 거라는 것을. 미래에 대한 불안을 곱씹는다고 그 일이 진짜 일어나지도, 안 일어나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생각을 멈추는 힘을 기르기 위해 꾸준히 연습해왔다. 우울한 생각이 들면 우선 창문을 열고 햇빛과 바람을 내게 흘려보낸다. 그래도 생각이 멈춰지지 않으면 잠시 그 생각을 허락하기도 했다. 나아지고 다시 퇴화하고 또 조금 나아지는, 지난하고 지루한 반복을 거듭했다.     


    이제는 다음 행동까지 닿을 수 있다. 할 수 있는 한 우울을 적게 붙잡아 두다가 생각을 멈추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예를 들면 따뜻한 물을 마시거나 약을 챙겨 먹거나, 온수 매트를 틀어 몸을 따뜻하게 하거나 즐거움을 위해 사탕을 하나 입에 무는 행동들을 한다. 그 행동으로 몸이 즉시 나아지지는 않는다. 다만 기분을 조금 낫게 하고, 몸에 골몰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머리가 아프지 않을 때에는 유튜브나 책을 보고, 그러지 못할 때에는 잔잔한 음악이라도 듣는다.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지금, 여기만 집중한다.     


    아플 때 우울한 건 어쩌면 당연하고 그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슬픔에 머물러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나를 아주 낫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한다. 그것이 아픈 몸과 살아가는 나의 원칙이다. 오늘은 원칙을 지킬 수 있지만 내일은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나를 꾸짖지 않고 모레에는 더 잘할 나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각주:

1.예후란 병세의 진행 및 회복에 관한 예측을 의미한다.

2. 루푸스 신염에는 5가지 타입이 있다. 본인은 가장 예후가 좋지 않은 4형에 속하며, 예후가 좋은 경우 투석이나 이식까지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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