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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un 26. 2020

바닥에서 마주친 나

    남은 신장 55%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켜야만 했다. 체력을 영혼까지 끌어모으며 살아온 나는 내 몸을 지키면서 적당히 살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모든 걸 다 포기했다고 울부짖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 번 더 휘청였을 뿐이지, 내 몸은 곧 회복될 거라고 그러면 꿈꾸던 미래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지난한 시간을 버텼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병원과 집만 전전했던 나의 시간은 멈춘 듯 고요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미웠고 마음에는 질투와 시기가 돋아났다. 루푸스 환우 카페에서 법대를 나온 언니를 알게 됐다. 그 언니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루푸스에 걸렸다고 했다. 그는 바로 시험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자기 몸에 맞는 일을 하면서 블로그에 루푸스와 함께하는 일상을 기록했다. 내가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내 몸을 잃어가는 동안, 그 언니는 몸의 속도를 받아들이고 꾸준히 건강을 회복해나갔다.     


    반대로 아픈 몸과 관계없이 자신의 꿈을 이어간 오빠도 있었다. 로스쿨에 간 후 암이 찾아왔지만, 쉬며 아프며 학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결국 졸업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이 페이스북에 알려지던 날, 나는 그와의 인연은 SNS에서의 대화가 전부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빼곡한 명동의 카페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그의 죽음에게서 나의 운명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두 사람처럼 모든 걸 그만둘 수 도, 계속 꿈꿀 수 도 없었다. 겁쟁이처럼 몸이 조금 나아지길 호시탐탐 기다렸다가 다시 꿈을 꾸고, 열의를 불태우다가 몸이 먼저 꺾여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죽음에 맞설 용기도, 가진 걸 모두 포기할 용기도 없었다.      


    미련이라는 손 안의 모래를 털어버린 것은 투석을 앞두고서야 가능했다. 신장이 완전히 소실되고 나서야, 나의 성취나 먼 미래가 아니라 나의 삶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내게 앞으로 주어진 시간이 짧다면 지금 뭘 해야 할까?'

    질문에 대한 답은 먼 미래에서는 찾아지지 않았다. 기약이 없는 미래의 삶보다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스트레스받을 때는 뭘 하면 좋을지, 쉴 때 어떤 음악을 듣고 싶은지, 혼자 집에 있을 때 적막을 채워줄 취미가 뭔지, 나의 일이 아닌 삶에 대한 질문에는 유달리 망설여졌다. 몸이 아픈 내게 시간은 너무도 희소했고, 그래서 더더욱 취미보다는 성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시간의 절대적 양이 작으니 꼭 해야 하는 일로만 채우곤 했다. 나를 돌아볼 여력도 없이, 힘들어하는 내 몸을 살펴볼 시간도 없이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텅 비어 있었다.     


    순간의 기쁨을 보장해주던 수많은 성취 목표들이 사라지자 견딜 수 없었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몸이 좀 아파도 공부라도 잘하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살았는데, 이제는 꼭 쓰임을 잃은 물건 같았다. 내가 왜 존재해도 되는지 명분을 찾고 싶었다.      


    어느 날 시간을 죽이며 인터넷을 보다가 개그맨 박나래의 말을 보게 됐다.

    "개그맨인 박나래가 있고, 여자 박나래가 있고, 디제잉을 하는 박나래가 있고, 술 취한 박나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그맨으로서 이 무대 위에서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른 내가 있으니까. 우리는 '여러 가지의 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하나가 실패하더라도 괜찮아요. 또 다른 내가 되면 되니까."     


    나는 지금껏 단 하나의 나로만 살아왔다. 공부하는 자아 말고 다른 나는 없었다. 그래서 공부마저 그만두는 것이 무서웠다. 그게 아닌 나를 상상할 수 없으니까,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들과 지금을 살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줄 내가 필요했다. 반절의 신장으로 꾸역꾸역 진학했던 대학원을 끝내 휴학하고, 일 년 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성취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나를 살펴본다. 글을 쓰고, 좋아하는 음식과 향수와 음악의 취향을 고르고, 전공서가 아닌 책을 읽을 때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소진되기 전에도 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둔다. 치열했던 과거의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지난 시간들을 찬찬히 돌아본다. 글을 쓰는 일은 작은 순간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라는 걸 쓰기 시작하고서야 알았다. 목표와 계획에 쫓기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 나를 온전히 바라본다.      


    아직은 이런 일상이 낯설고 때로 조급한 마음도 들지만, 대체로 편안히 나의 시간들을 누릴 수 있다. 나를 살게 하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나를 채워주고 있으니까. 바닥에서 마주친 민낯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계속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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