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은 없었다. 투석만 하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더니. 흐려진 머릿속도 깨끗해지고 몸도 가뿐해질 거라더니, 어쩐지 내 컨디션은 하강 곡선을 그렸다. 투석이 몸을 낫게 해주는 치료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기대를 했었나 보다. 나를 기다리는 건 루푸스를 가진 내 인생의 또 다른 연장선뿐이었다. 도관이 자리 잡고 아무는 2주 동안에는 투석을 시작하지 못하는데, 그동안 나는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1. 도관 삽입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실리콘 도관을 몸에 넣는 수술은 몹시 아팠다. 뱃가죽을 째서 기다란 도관을 몸 안에 넣는 수술을, 부분 마취로 맨 정신에 견디자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처음 몸속에 들어온 도관이 자리를 잡기까지 몸 안을 할퀴고 다니는 바람에 밑이 빠지는 것처럼 아프고, 하혈을 하고, 자궁 근처가 깜짝깜짝 놀랄 만큼 아파서 자다 깨 울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병원에 일주일에 두 번 들러 시험 투석을 해보는 과정에서 자꾸 골칫거리가 생겼다. 투석액을 넣은 만큼 액체가 다시 도관을 따라 나와야 하는데 그게 말썽이었다. 나처럼 오랜 기간 다량의 스테로이드를 먹었던 환자도, 도관 주위를 막고 있는 섬유소* 때문에 재수술을 했다며 투석실 간호사 선생님들은 걱정을 했다. 그들의 걱정은 나의 불안으로 번졌다. 부분 마취로 하는 수술을 어떻게 견뎠는데, 도관을 넣고 배가 찢어질 것 같은 이틀 밤은 또 어땠는데. 그걸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일주일 후, 섬유소가 헤파린*으로 녹아 재수술은 면했다.
#2. 변비와 장염
태어나서 한 번도 변비를 겪어보지 않았다. 수학여행이나 남의 집에 가서도 쾌변을 하는 멋진(!) 몸을 가졌었는데! 거대한 도관이 몸에 들어와서 위장이 겁을 먹은 건지, 도무지 변이 나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도관 재수술을 면한 기념으로 엄마, 아빠와 거하게 먹은 한우가 소화되지 않고 가스만 차서 배가 부풀었다. 간호사 선생님과 전화 상담을 하고 약국에서 변비약을 사다 먹었다. 적정량을 섭취했는데도 몸에 맞지 않았던 건지 장염에 걸려버렸다.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니어서, 굶으며 견딘 주말 동안 나는 3킬로그램이 빠졌다.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3. 갑자기 찾아온 통풍
장이 서서히 움직일 쯤부터 오른쪽 팔꿈치에 열이 나고 꼭 거기에 심장이 있는 것처럼 찌릿찌릿 울렸다. 팔꿈치에 머리카락만 스쳐도 아팠다. 주말이 지나고 찾아간 정형외과에서는 엑스레이를 찍어보더니 뼛조각이 나왔다며, 어딘가에 크게 부딪혔냐고 물었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지만 동네 정형외과 의사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뼈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하고 가라고 했다. 의아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집에 갈 때는 팔꿈치가 더 부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왼쪽 팔꿈치에도 같은 증세가 생겼다. 이제는 양 팔이 접히지도, 올라가지도 않았다. 선희는 아무래도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병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접히지 않는 팔로 간신히 티셔츠를 입고 병원으로 향했고, 그 길로 통풍으로 이틀 밤을 입원하게 됐다. 엑스레이에서 보이던 뼛조각은 요산 결정체*였다. 장염으로 갑자기 굶은 몸에 전해질* 수치 변동이 생겨 통풍이 생긴 거라고 했다. 통풍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증의 스테로이드도 다시 먹었다. 팔이 접히고 얼굴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을 치울 수 있게 되자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4. 샤워를 할 수 없어
도관 수술 후 두 달 동안 샤워를 할 수 없었다. 아직 수술 자국이 아물지 않은 탓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몸통 부분만 빼고 씻거나 물수건으로 등을 닦는 게 전부였다. 따뜻한 물줄기를 맞으며 하루의 노곤함을 풀어내던 때가 몹시 그리웠다. 왜인지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누군가 내게 가까이 오면 냄새가 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다. 두 달 뒤 샤워를 하게 되었을 때 느꼈던 기쁨을 생생히 기억한다. 투병은 당연했던 일상을 조금씩 깨트렸다.
"투석 초기에 이렇게 한 바탕 신고식 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투석실 간호사 선생님이 내 도관을 투석액에 연결해주며 말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그렇군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샤워를 하게 되었을 쯤에는 변비도, 통풍도, 도관이 몸 안을 긁는 통증도 없었다. 몸은 조금씩 투석에 적응해갔다.
좋아질 거라고만 믿었던 컨디션이 하나 둘 무너질 때마다 겪는 좌절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차피 투석까지 하게 된 마당에, 쉬운 일이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작은 기대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투석을 시작하면 이제 영락없이 장애를 가진 몸이 되는 것이라는 절망감과 상실감을 삼키려면, '그래도 컨디션은 나아지겠지'라는 기대라도 해야 했다.
나는 절취선을 긋듯이, 절망의 한계를 마음대로 주욱 그어놨었다. 고통이 한계를 늘려갈 때마다 나는 선을 그었다. 여기서 더 아파지고 슬퍼할 일이 생긴다면 견딜 수 없다고 마음속으로 선언했지만, 몸은 뜻대로 되지 않고 야금야금 내게 더 많은 이해와 인내를 요구했다. 절취선을 긋고 반대쪽 몫을 잘라버리는 것처럼, 기대와 희망을 반토막 내며 견뎠다. 2017년 긴 병원 생활에서 거의 내 몸뚱이의 절반은 내어준 것이라고 생각했고, 투석을 시작하면서 또 나머지 반을 떼어주었다. 나는 이제 고작 4분의 1만큼 남아 있다. '더는 나를 양보할 수 없어, 여기까지가 내 한계야'라고 마음을 잡지만 병은 계속해서 나를 좀먹었다. 평범한 삶은 이제 틀린 것 같았다.
각주:
1. 섬유소: 피브린. 혈액을 응고시키는 당단백질이다. 무색 또는 노란색을 띠며, 탄성 있는 고체의 형태다.
2. 헤파린: 혈액 응고를 억제하는 분자. 주사제처럼 투석액에 섞어 몸에 넣는다.
3. 요산 결정체: 요산이 신장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으면 몸 안에 쌓여 결정을 만든다. 날카롭고 딱딱하게 굳은 조각이 된다.
4. 전해질: 몸속 수분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이온을 말한다. 나트륨, 칼륨, 칼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