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은, 이다울의 <천장의 무늬>를 읽고
나는 병과 내 몸에 관해 쓴다. 하지만 언제나 고민한다.
"이만큼 아픈 걸로 아프다고 말해도 될까?"
나보다 아픈 사람은 더 많을 것이고, 괜찮다가 안 괜찮다가를 반복하는 나의 병은 자주 꾀병으로 보인다. 수많은 오해를 거쳤기에, 말하기 전 자기검열은 자연히 선행된다.
이다울 작가의 책은, 고통으로부터 비롯되는 외로움, 고립감, 경제적 어려움 같은 반드시 따라오지만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적시한다.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을지 고민하는 나에게는, 그의 고백이 큰 위로가 되었다. 너도 말해도 괜찮다고,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프지 않은 순간에 느끼는 초조함과 조급함에서 최근의 나를 읽었다. 아파하는 동안 잃은 시간이 많다고 느끼기에, 언제나 오버 페이스로 행동하게 되는 날들. 혹은 관성적인 무력감 앞에 스러지는 날들.
나도 그처럼, 무적의 여름을 기다린다. 어쩌면 내게도 이미 그 여름이 있는 것도 같다.
[좋았던 문장들]
-다시 시작될 침대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했다. 상상력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로 굳게 마음먹었으나 오랫동안 몸에 달라붙은 상상력은 불안의 충실한 원동력이 되어갔다.
-In the midst of winter, I found there was, within me, an invincible summer. And that makes me happy. For it says that no matter how hard the world pushes against me, within me, there's something stronger - something better, pushing right back.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내 안에 '무적의 여름'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얼마나 거칠게 나를 짓누르든, 내 안에는 곧바로 맞서는, 더 강하고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는 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 요건 제가 번역을 좀 바꿨어요!)
-벤치에 앉아 양 어깨를 주무르며 통증 없는 삶이 기억나지 않음을 알았다. 죽을 때까지 그런 삶은 살 수 없을지도 몰랐다. 많은 사람이 질병을 가지게 된 것은 큰 선물을 받은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이전과 다른 몸을 살며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덜 아픈 삶을 살 수 있다면 선물이고 뭐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덜 아픈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