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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Feb 10. 2022

나는 과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당연한 하루는 없다> 프롤로그

    “이번에 너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곧 투석을 시작한다는 말에 친구가 답했다. 그 순간 죽음이 내 삶에 날아와 꽂혔다. 당연하지만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던 나의 죽음을, 가까운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고작 스물일곱이었다.


    노인의 몸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루푸스 신염을 만난 열여덟 이후 신장내과 병동에서 나는 언제나 막내였다. 병실 할머니들은 아가가 아파서 어쩌누, 하며 열여덟, 스물, 스물일곱의 내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 거의 십 년이 지나도록 병원만 가면 언제나 아가가 되었다. 할머니들에게 손을 맡긴 채 생각했다. 주름을 제외하면 우리는 거의 비슷한 몸이 아닐까? 금세 바닥나는 체력, 깜빡거리는 기억력, 자주 붓는 무릎, 쓰임을 다한 신장. 내 몸은 또래 친구들보다 병원에서 만나는 할머니들과 더 비슷해 보였다.

    직업이 생기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일이 내게 올까? 수시로 툭, 바닥에 떨어지는 마음을 주워다 친구들에게 꺼내 놓기가 부끄러웠다. 청춘에게 어울리는 청사진. 파아란 나의 미래는 창창해 보이기보다, 뿌연 회색빛일 것만 같았다.


    루푸스를 만난 지 9년째 되던 해, 나의 두 콩팥이 모두 소실되어 투석 준비를 위해 입원해야 했다. 몸의 일부가 수명을 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의 기한을 짐작해 보게 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해맑게 웃으며 병동 이모,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고 다녔었는데. 이번만큼은 커튼을 닫고 형광등 빛조차 잘 들지 않는 구석 자리에 누워 숨죽여 울었다.

    옆 침대 할머니는 매일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내게 사탕과 빵, 과일 같은 것을 슬며시 건네주셨다. 위로도, 동정도 하지 않고 그저 재미난 이야기를 커튼 너머로 들려주시기도 했다. 할머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해? 어느 날 내가 물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줄 알았는데. 고작 스물몇 살에 아파 버려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대답을 바라지 않는 질문이 허공에 흩어졌다.

    할머니는 아직 어리니까 건강해질 시간은 많다고, 내가 견뎌내기만 하면 의사 선생님들이 다 고쳐줄 기술을 만들어낼 거라고, 그러니까 밥 자알 먹고, 햇볕 많이 쬐고, 지금처럼 방긋방긋 웃으며 버티라고. 그러다 보면 무거운 인생이 훌훌 털어지는 날이 온다고 했다. 내 등을 토닥이는 그의 가슬가슬한 손이 간지러워 눈물이 났다.


    아픈 몸은 자주 위태롭다. 삶이 폭탄 같은 불행을 던질 때마다 할머니와 병원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 본다. 커튼 사이로 들려오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무조건 버티고 방긋방긋 웃어! 그 말이 불씨처럼 내 안에 자리 잡아, 내가 웃을 때마다 환하고 따뜻하게 살아났다. 어떤 시간도 결국 나의 삶이니까, 선명한 기쁨들을 마주하기 위해 눈을 더 크게 뜨고 행복의 냄새를 찾아다닌다.


    나이가 들면서 이해할 수 있는 슬픔이 많아지기에 눈물이 많아진다는 말을 보았다. 열여덟부터 몸의 고통을 마주한 나는 사람들이 웃는 장면에서도 혼자 엉엉 우는 사람이 되었다. 눈물 많고 정도 많고 마음이 넘쳐서 풍요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병원 한구석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을 아이의 등을 쓸어줄 수 있기를. 내가 힘들 때마다 달달한 간식과 온기가 스민 위로를 건네던 할머니들처럼.

    어떤 생이든 소중해. 아픈 몸을 살아가는 생도, 무자비한 슬픔을 맞아낸 생도 모두 소중해. 아픈 나를 안아주듯, 어느 날의 힘든 당신을 안아주는 할머니가 되길 꿈꾼다. 그때까지 내 몸은 살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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