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게 됐다.
"넌 참 호불호가 강해."
친구들은 말했다. 일이든 관계든 성격대로 참 확실하다고, 사랑받고 자라온 티가 난다고. 그 말들이 싫지 않았다. 확실하다는 건 내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뜻이었다. 관계에서는 언제나 미묘한 온도 차이가 발생했고, 내가 확실함을 자처한 만큼 상대는 내게 온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신경 쓰기도 벅차다고 생각해서 내 경계 밖의 사람들에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게도 사연이 생길 줄은 몰랐다. 나는 점점 흐릿해졌다. 너 요즘 진짜 이상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뭐가? 아냐"라고 어물쩍 넘겨야 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물어오는 말에도 "그냥, 가족력이 좀 있어서"라고 희미하게 답했다. 전에는 감기에 걸렸다며 할 일을 안 하는 애들을 의지박약이라며 비난했고, 꾀병은 아니냐고 트집잡기도 했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애들이 한심했다. 그런데 그 전부 다 내가 되었다. 내가 되고 나서야 사람들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에게 그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그런데 어디까지 이해하고, 어디서부터는 서운해해도 되는 걸까?
J를 처음 만난 곳은 학원이었다. 하루 종일 해도 다 끝내지 못할 숙제를 유일하게 해 오는 사람이 J였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열정이 좋았다. 아픈 몸이 마음을 따라잡지 못해서일까,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가 멋져 보였다. 처음 만날 때 J는 편입 준비생이었고 내 옆에서 의대생이 되었다.
"괜찮아,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J의 자동 응답기가 되었다. 건강한 몸으로 원하는 곳에 들어갔다면, 나라도 미래에 전념하고 싶었을 거니까. 그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등교 전과 밤에만 연락할 수 있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통에 나는 그 시간에 맞추는 사람이 되었다. J만큼 바쁘게 내 일상에 몰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지친 몸을 침대에 뉘인 채 그를 이해하느라 바빴다. 그 앞에서 내 불호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해에는 한계가 없었다. 그 흐릿함이 갈수록 버거웠다. 이번 시험까지만 이해해줘,라고 하던 J는 어느새 시험이라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취미도 없이, 친구도, 심지어는 가족도 만나지 않고 타지에서 공부하는 그를 나만큼은 아니까.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잘 해내고 싶은 J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마음을 동여맸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게 됐다. 사소한 연락 문제로 서운한 내가 싫어서, 내가 너라도 열심히 달리고 싶을 텐데 너를 질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속상해서. 꾹 참고 참다가 결국 그의 중요한 시험 전날 밤, 모든 감정을 터뜨리고야 마는 내가 한심해서. 나는 내가 싫었다. 예전처럼 내가 먼저 확실하게 선을 긋고 싶었지만, 어떤 중요한 시험이든 밤을 새워서 나를 붙잡고야 마는 너의 앞에서 나는 모든 것이 흐려졌다.
괜찮다는 말은 그를 더 이해해보고 싶은 버둥거림일 뿐이었다. 긴 시간 동안 이해의 한계를 차츰 늘려온 탓에 분명하던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흐려져 있었다. 할 수 있는 선택은 피노키오가 되는 것뿐이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며 코가 길어졌다. 내 길어진 코 때문인지, 잘 감춰진 마음 때문인지 그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도 점점 더 멀어졌다. 우리는 점점 흐려졌다.
다시 첫 만남에서 확실함을 자처해 본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곁에 두지 않는 편이라고, 확실한 걸 아주 좋아한다고 선언한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이해의 한계를 꾸역꾸역 늘려가며 속을 끓인다. 여전히 내 이해의 한계를 실험 중이다.
아픈 몸과 성장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희우 작가의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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