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앞에, 고작 글을 쓸 뿐인 날
성냥을 켜거나, 점화 버튼을 누르거나, 오븐 안에 노란빛으로 가둬두었던 것.
불은 꼭 그렇게나 손 안에 존재했는데,
그게 이제껏 보아왔던 '불' 같은 불의 성정이었는데.
'불이 났대. 너 괜찮아?'라는 안부 문자를 받았다. 몸 담은 공간에도 불이 나서.
병원들의 잇따른 화재 기사 앞에서
별 것 없다 싶으면서도 쓸쓸하고 애처로웠던 기억이
척추관을 타고 섬짓하게 흘러내려 갔다.
건조한 문장에 '나라면', '나였다면'이 깃들어서
검은 재를 마시고 시야마저 흐려졌을 사람들이
나 혹은 당신이었을 수도 있다는 상상도.
모두가 곧고 깨끗한 호흡과 청량한 들숨을 사랑했을 거라서,
병실의 하얀 시트조차 얼룩 없이 반듯하기를 바랬을 거라서
내 갈비뼈에도 맺힌 연기가 잘 닦여지지 않는 밤.
어제엔 우리가 두려워하는 상상이 있었다.
가끔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나를 지켜달라고 되뇌는 게 전부인
허무한 상상과 무력한 상실들.
헬기는 분주하게 하늘에 뜨고, 연두색 가로수는 무참히 숯으로 변하고,
스프링쿨러를 믿으며 여린 잠을 자는 게
조금은 슬퍼진 오늘에
차가운 현실과 시소를 탈 수 있는 건 더 따뜻한 꿈이라고 믿으며
강하게 지켜주고, 냉철하게 살려내고, 그래서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쓴다.
남의 것만도 아닌 내일을 앞에 두고 고작 이 글을 쓴다.
성냥을 켜고, 점화 버튼을 누르고, 오븐 안에 노란빛을 가둬두었던 사람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