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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Feb 04. 2018

불길이 지나간 자리

화재 앞에, 고작 글을 쓸 뿐인 날




성냥을 켜거나, 점화 버튼을 누르거나, 오븐 안에 노란빛으로 가둬두었던 것.


불은 꼭 그렇게나 손 안에 존재했는데,

그게 이제껏 보아왔던 '불' 같은 불의 성정이었는데.

'불이 났대. 너 괜찮아?'라는 안부 문자를 받았다. 몸 담은 공간에도 불이 나서.




병원들의 잇따른 화재 기사 앞에서

별 것 없다 싶으면서도 쓸쓸하고 애처로웠던 기억이

척추관을 타고 섬짓하게 흘러내려 갔다.


건조한 문장에 '나라면', '나였다면'이 깃들어서

검은 재를 마시고 시야마저 흐려졌을 사람들이

나 혹은 당신이었을 수도 있다는 상상도.


모두가 곧고 깨끗한 호흡과 청량한 들숨을 사랑했을 거라서,

병실의 하얀 시트조차 얼룩 없이 반듯하기를 바랬을 거라서

내 갈비뼈에도 맺힌 연기가 잘 닦여지지 않는 밤.





어제엔 우리가 두려워하는 상상이 있었다.

가끔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나를 지켜달라고 되뇌는 게 전부인

허무한 상상과 무력한 상실들.



헬기는 분주하게 하늘에 뜨고, 연두색 가로수는 무참히 숯으로 변하고,

스프링쿨러를 믿으며 여린 잠을 자는 게

조금은 슬퍼진 오늘에



차가운 현실과 시소를 탈 수 있는 건 더 따뜻한 꿈이라고 믿으며

강하게 지켜주고, 냉철하게 살려내고, 그래서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쓴다.




남의 것만도 아닌 내일을 앞에 두고 고작 이 글을 쓴다.



성냥을 켜고, 점화 버튼을 누르고, 오븐 안에 노란빛을 가둬두었던 사람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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