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진 Apr 17. 2018

03. 예민해도 괜찮아

예민해서 외로운 너를 사랑해





애써 웃으며 넘기라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무뎌질 거라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고. 애정을 담은 부드러운 목소리에 너는 너를 괴롭게 했던 의문들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지. 그리곤 푹신한 이불을 끌어 당겨 지친 몸을 덮었어. 바깥에서는 소란한 목소리들이 들려오고 서서히 잠이 들면 아침에는 담담해질 거란 희망이 생겼어.


한 두 번, 아니 한 두 달 쯤은 그런 말을 꽤나 좋아했던 것 같아. 나만 가슴이 쿵쿵 뛰고 화가 나고 슬픈 일인줄 알았는데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니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된다고 하니까.


그런데 너는 얼마 전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습관처럼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하다가도 눈동자는 계속해서 타인의 눈동자 그 너머를 보려 애를 썼어. 그때부터 너는 네가 무리를 잘못 찾아온 아기오리는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지.


   그리고 골목길에서 여전히 너는 혼자인 자신을 발견. 그 사실이 꽤나 편안하면서도 끝에는 나무랄 데 없이 초라해져. 그렇게 너는 습관처럼 혼자서만 괴롭고 네 가슴에는 꺼내지지 못한 숱한 울분과 적대감들이 그렇게나 많이 맺혀있어. 이제 다 나은 줄 알았는데 계속 병이 든 채로 썩은 말들을 삼켜내고 또 삼켜내.



그래, 예민해서 네가 겪는 숱한 불안과 남루한 댓가들. 다분히 의도적인 경멸과 조롱의 말들. 이빨을 감춰놓고 아닌 척 건네는 훈계와 핀잔들. 그게 너를 무척이나 괴롭히고 생계와 멀어지게 하고 운석 위에 혼자 남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렸구나. 그런데 예민하다는 건 이렇게 받아들여보면 어떨까. 우린 죽은 채로 흐르는 일상들을 살려내는 사람들이야. 그 곤두선 아픔들로 계속해서 교신하고 있는 중인거야.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존재들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는 거야. '넌, 괜찮니? 그렇다면 반응해줘.' 하고. 과거의 따뜻했던 촉각들을 떠올려봐. 네가 예민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아챌 수 없었던 행복한 기억들이 있지 않니.



아르바이트 면접에 늦어 택시를 타던 날, 택시비를 깍아주었던 운전기사. 계속해서 희망을 노래할 거라고 개구리처럼 합창하던 천사원의 아이들. 실패한 사람이 되어 고향에 돌아갔을 때, 아무말 않고 앞장 서서 걸으시던 나의 부모님. 처음으로 글을 쓰고 누군가 달아준 댓글에 방 안을 구르며 기뻐하던 어린 너의 환호성. 하다 보면 되리라고, 알아줄 거라고 더 순한 미소로 웃어버렸던 꿈을 꾸던 여린 너와 나의, 그 따뜻했던 공간의 감각들. 그 고달프고 착한 누군가의 목소리들이 울리고 스미고 감돌아서 너는 결국 이번에도 무뎌지지 못하고 울고 있지만, 우린 분명히 이번에도 서로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잖아. 그렇지 않니.


이 곳의 길목마다 서 있을, 바르고 착하기만 한 어떤 이들이 아직도 너의 예민함을 사랑하고 있어서

슬픈 가운데서도 글을 쓰고 온 힘을 다해 초라한 밤을 돌봐주고 있으니까

계속해서 꿈을 꾸고 신념을 곤두세우고 발길을 재촉하며 그릇된 것들을 향해 올바름을 외치면서 가렴.


'나는 왜 이렇게 나고 자랐을까' 더 이상 예민한 너의 감각들을 서러워만 하지 말아.

네가 외롭고 낯설기 때문에 더더욱 뒤에 걸어올 자들의 빛이 되어줄 수 있다고 믿으며 넘어지고 또 일어서.

그렇게 나아가는 삶을 살으면 되는 거야.



예민해서 외롭고, 그래서 고결한 너의 삶을 나는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있어.


매거진의 이전글 02. 나라도 나를 아껴주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