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호르 탐방기 (상)
#내리고 싶지 않았던 버스와 따스운 낯선 이웃들
파키스탄에 도착한 다음날, 곧장 라호르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었다. 역시나 버스 터미널에서 극동아시아 여성은 나 홀로였고, 나의 존재는 사람들의 시선을 강탈했다. 호의적인 시선이면 좋겠지만 백혈구들 사이에 있는 어떤 바이러스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쯤 되니 그냥 시선을 즐겨보자고 생각했지만 나 홀로 여행 첫날이다 보니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간간히 파키스탄의 카톡인 ‘왓츠앱’으로 번호를 물어보는 남자 현지인들이 있었는데, 엄마가 교보문고 액세서리 코너에서 사준 가짜 웨딩링을 보여주며 이미 애가 셋이라고 자연스레 거짓말을 쳤다. (이는 효과가 굉장했다)
버스는 사실 제때 이동할 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원래 출발 시각보다 10분 정도만 지연되었다. 기본 30분 지연되는 인도와는 달랐다. 이슬라마바드-라호르까지는 약 버스로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좌석별로 영화나 게임을 할 수 있는 모니터도 있고, 자세가 조절 가능한 푹신한 의자가 세팅되어있었다. 게다가 35도가 웃도는 바깥날씨와 달리 시원하고 빵빵한 에어컨까지 작동을 하고 있어 이 쾌적한 버스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남녀 칠 세 부동석이 각별한 이슬람 문화권이다 보니 버스를 타면 항상 옆자리는 여자분이 앉곤 했다. 참 신기했던 게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버스 안에서 누군가의 엄마, 할머니가 아닌 내 나이대의 젊은 여성이 홀로 버스를 탄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아직은 여성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는 곳이구나라고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라호르행 버스 안 내 옆자리에는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께서 타셨는데, 어떤 사연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라호르로 가는 동안 코란을 읽으며 간헐적으로 눈물을 흘리셨다.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 하시는 걸까. 궁금했지만 우루두어를 하지 못하는 나는 조용히 할머니에게 사탕을 건넸다. 할머니는 어떤 말을 하시더니 이어서 라면땅 같은 과자를 한 움큼 내 손바닥에 올려주셨다. 처음 먹어보는 과자라서 조금 걱정되었지만 땅콩도 들어간 라면땅이라 맛있었다.
손바닥에 있는 과자를 다 먹은 내 모습을 흐뭇하게 보시더니 과자를 탈탈 털어 내 양손 가득 담아주셨다. 어딜 가든 손자 손녀에게 먹을 것을 계속 주시는 게 할머니들의 국룰인 걸까. 할머니의 기대에 부흥해 더 맛있게 과자를 먹고 나니 이번에는 말린 대추야자를 주시면서 나에게 기도도 해주셨다. 할머니의 기도는 현지어로 이루어져서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입 안에 들어간 달콤한 대추야자처럼 이방인인 나를 위한 할머니의 마음이었기에 감사했다. 할머니의 기도를 받은 뒤, 냉담자인 나는 오랜만에 야훼를 통해 할머니의 안녕을 빌었다.
라호르행 버스에서는 옆자리 할머니와 같이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
라호르행 버스를 기다리던 대기실에서부터 나를 안내해 주던 남자 승객분이었다. 5살 정도 되는 아이의 아버지였는데, 탈 때부터 휴게소에 들르는 내내 내가 버스를 놓치지 않게 알려주시고, 다른 사람들이 혹시나 나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올까 봐 곁에서 계속 가이드를 해주셨다. 심지어 휴게소에 들렀을 때 매점에서 내가 먹으려 고른 과자와 음료조차 계산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흑흑. 라호르에 도착해서도 한마디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묵묵히 내가 짐을 찾고 택시를 타기까지 기다려 주셨는데, 계속 무뚝뚝한 얼굴을 지으시다가 떠나는 내가 손인사를 하자 그제야 싱긋 나에게 웃어주셨다. 39도가 웃도는 날씨만큼이나 숨 막히는 낯선 시선으로 여행 초반이 힘들었지만, 따뜻한 선의를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했다.
#찾았다 인생 치킨 비리야니
닭요리를 너무 좋아하기에 파키스탄의 전통음식인 ‘치킨 비리야니’를 포기할 수 없었다. 9시 넘어 도착한 숙소에서 간단하게 짐을 풀자 배가 고팠다. 파키스탄 전통음식이 먹고 싶었다. 당장 구글 검색을 해보니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치킨 비리야니’ 맛집이 있었다. 평점은 4.1점에 코멘트는 무려 600개가 넘는 가게를 찾았다. (이런 곳은 찐이다) 비리야니는 팔레스타인에서 먹은 마크루바 (냄비 안에 층층이 고기, 야채, 밥을 쌓고 찐 음식)와 비슷했는데, 카레와 같은 양념이 마크루바와 다른 지점이었다. 택시 어플로 택시를 불러서 다급하게 간 비리야니 맛집에는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가게에는 비리야니 이외에도 메뉴가 몇 개 있었는데, 가장 유명한 치킨 비리야니와 콜라를 시켰다. 이상하게 한국에 있을 때에는 저속노화 어쩌고 때문에 최대한 탄산음료를 피하는데, 외국만 나가면 액상과당인 탄산음료는 꼭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이 되곤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은 뜨끈뜨끈한 항아리를 가져오셨고, 익숙한 듯 내가 동영상을 찍을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이어서 항아리에 가득 담긴 비리야니를 플레이트에 와르르 쏟아주셨는데, 이날 제대로 한 끼 식사도 못한 나에게는 정말 최고의 순간이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양념이 잘 벤 유독 맛있는 포슬포슬한 감자와 치킨, 그리고 밥은 입 안에 계속 들어갔다. 그리고 사장님이 비리야니에 섞어먹으라고 건넨 요거트가 있었는데, 생경한 느낌에 조금씩 비리야니에 섞어 먹으니 맛의 풍미가 확 살아났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곳의 비리야니가 그립다. 와구와구 먹으면서 ‘이 비리야니도 마라탕처럼 한국에 유행한다면, 늦은 밤 배민으로 비리야니를 시켜 맥주에 비리야니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별로 없기에 일단 눈앞에 있는 비리야니를 양껏 즐기며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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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야니 맛집 주소
#아름다웠기에 첫사랑은 다시 만나지 않는 법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사랑을 다시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면 처음 만났던 그 감정을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장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몇몇 장소들은 마음에 남에 그때 느꼈던 첫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잊지 못할 강렬했던 장소는 처음 느꼈던 여운을 그대로 마음에 간직하기 위해 영원히 방문하지 않곤 한다.
라호르에서는 나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 장소가 있었다. Wazir khan 모스크가 그랬다.
사실 훈자 마을을 주로 방문하기 위해 여행 계획을 짰던 나에게 라호르는 잠깐 하루정도만 할애할 도시였다. 부처 고행상 이외에는 별 기대 없이 방문한 도시여서 더 그랬을까. 이 모스크는 나에게 잊지 못할 장소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에 방문한 Wazir khan 모스크에는 나와 비쩍 마른 고양이를 제외하고는 방문객이 없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모스크는 전날 뜨거운 태양에 달아오른 벽돌 냄새가 가득했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선선한 때에 모스크를 방문한 나는 햇살이 비추는 곳들마다 가득히 아라베스크 양식으로 채워진 아름다운 벽들을 눈에 담았다. 호젓한 이곳에서는 나는 구경하는 시선 없이 아름다운 문양과 햇살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다. 벽면마다 그려진 덩굴문양들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하나하나 눈으로 담아두고 싶었다. 기하학적인 면들마다 가득 채워진 색색의 화려함은 고요함과 상반되었다. 맘 같아서는 그늘진 곳에 앉아서 더 머물고 싶었지만 다른 문화재들을 봐야 할 빡빡한 시간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해 아쉬웠다.
이후 라호르를 떠나 훈자에서 머물렀다가 다시 라호르에 와서 3일을 더 지냈지만 Wazir khan 모스크는 다시 가지 않았다. 그때 느꼈던 감정들에 새로운 감상을 덧씌우고 싶지 않았다.
#정국의 입대와 사모사 맛집
파키스탄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 집중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나에게 말을 걸었던 사람들은 1020 여성분들이었다. 신기하게도 최신 K팝과 드라마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K배우의 추문까지도 이미 알고 있어서 창피할 정도였다. 당시 나름 케이 콘텐츠로 밥벌이를 하고 있던 나로서는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뉴스로만 봐오던 한류를 이렇게 내가 누리고 있구나 싶었다.
한류 덕분에 라호르에서 ‘라비아’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리비아는 라호르 박물관에서 영어로 도슨트를 하는 친구인데, 부처 고행상을 바라보던 나에게 살며시 와서 한국인이냐고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라비아는 BTS 정국의 팬으로, 홈화면이 입대하는 정국 사진이었다. 사실 BTS에 대한 정보는 잘 모르는 나에게 정국의 전역을 처음 알게 해 줬다. 그리고 파키스탄의 사모사를 먹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라호르 박물관 근처에 있는 시장에 안내를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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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사를 먹은 가게 부근
인도에서 먹었던 사모사는 사모사 그 자체로만 먹었었는데, 여기에서 먹는 사모사는 위에 요거트와 양파, 병아리콩을 곁들인 음식이었다. 나름 불닭 생산국 출신의 맵부심이 있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하얀 매콤한 후추 같은 향신료가 은은한 얼얼함을 느끼게 해 줬다.
사모사를 으깨어 병아리콩이 들어간 요거트와 같이 먹으니 고소하면서 양파가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매운 향신료가 깔끔하게 뒷맛을 잡아줬다. 35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땀 흘리며 먹기 딱 좋은 음식이었다.
하루면 라호르를 모두 다 구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새로 사귄 라비아와 할 말도 많았고, 가지 못한 곳들도 많아서 나는 일단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을 기약하고 훈자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