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 피크민이 있다?!
#파키스탄에 피크민이 있다?!
이슬라마바드에 온 첫날밤.
따뜻한 짜이를 마시고 난 뒤, 여유로워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크민 앱을 열었다.
‘파키스탄에 피크민이 있으면 버섯 초대해 줄게’라고 주위 피크민 친구들에게 말을 했다만 진짜 여기에도 피크민이 있을까?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피크민을 켜자 숙소 근처에 있는 중형버섯들과 간간히 심어진 꽃들이 맵에 나타났다. 그렇다! 파키스탄에도 피크민 버섯이 있다!!!
사실 ‘파키스탄’을 가기 전에는 전기도 안 들어오는 엄청난 오지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나의 두 발로 거닐었던 파키스탄은 상상과 달랐다.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는 지하철이 다니고 있고, 번화가를 가면 큰 쇼핑몰이 있는 주상복합 건물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라호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으로만 찾았던 라호르는 간다라 문명이 시작된 오래된 유적지로만 알려져 있어서 경주와 같은 지역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를 처음 반겼던 라호르의 모습은 가로등마다 설치되어 있는 LED WALL에서 나오는 반짝이는 광고였다.
그리고 팀홀튼 카페, KFC와 같은 외국계 체인점도 거리마다 있었고(외딴 나라에서 마주하는 체인점들은 언제나 먹었던 약속된 익숙한 맛을 보여줘서 푸근했다… SPC 묻지 않은 배스킨라빈스도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실컷 아몬드 봉봉을 먹었다) 심지어 피부 에스테틱 전문점과 성형외 과로만 이루어진 블록들도 있었다.
어플로 음식 딜리버리도 가능한 시스템이 있는 도시들을 오지라고만 알고 있었던 나의 무지가 조금 부끄러웠다.
이렇게 나이가 들수록 더욱 미지의 존재에 대해 실체 없는 낯선 두려움이 먼저 올라올 때가 많다. 그런데 막상 진짜와 마주하면 내가 상상하던 두려움은 대부분은 허상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아마 파키스탄을 여행 오지 않았다면 나는 할리우드 영화에 나온 탈레반의 이미지로만 파키스탄을 떠올렸을 것이다.
<샬와르 카미즈와 카모플라쥬>
파키스탄의 전통옷으로는 긴 바지인 ‘샬와르’와 상체를 덮는 긴 상의 ‘카미즈’가 있다. 여성은 여기에 스카프 ‘두파타’까지 장착한다.
파키스탄 여행동안 춥지 않은 날씨를 제외하고는 세벌의 현지 옷을 입으며 여행을 다녔는데, 파키스탄 문화를 존중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나름의 카모플라쥬였다.
파키스탄에서도 번화한 지역인 이슬라마바드, 라호르, 그리고 훈자를 다녔지만 대낮에 홀로 다니는 여자는 정말 없었다. 그 와중에 초 레어한 극동아시아 여자가 거의 대부분 전통옷을 입고 다니는 파키스탄에서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다닌다면?
시선 강탈이다.
(사실 내가 현지인이라도 나를 신기하게 볼 것 같다)
하지만 카모플라쥬를 노리고 입은 파키스탄 전통옷은 나를 숨기지 못했다.
나름 대문자 E라고 자부하면서 살아왔고 인도 여행조차 잘 다녀온 나였지만 파키스탄의 전통시장이나 버스터미널 같이 인파가 몰리는 장소를 거닐 때 받는 시선들은 조금 고역이었다. <트루먼쇼>처럼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질감 있는 모습으로 바라본다. 게다가 아들뻘로 보이는 6~7살짜리 남자아이가 휘파람을 불며 나에게 캣콜링을 했을 때의 현타란…
고작 며칠 전만 해도 한국에서 나름 주류를 이루는 북방계 한국 국적을 가진 비장애인 이성애자로 살아왔던 나는 이곳에서 소수자가 되어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과 가끔 몰아치는 ‘치노’, 캣콜링으로 조금 주눅이 줄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 가더라도 따뜻한 사람 총량 법칙은 적용되는 것 같다.
내가 혹시나 위험할까 봐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나의 곁을 지켜주던 아저씨, 더운 날씨에 베이커리 앞에서 친구를 서서 기다리던 나에게 자신의 의자를 내어준 가드 할아버지, 버스 옆자리에서 나에게 과자를 내어주신 꾸란을 읽으시던 할머니와 같이 파키스탄에서도 나에게 선의를 베풀어 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결과적으로 카모플라주를 노리고 입은 살와르, 카미즈는 나를 군중 사이로 숨기지는 못했지만 전통옷을 입은 외국인에게 현지 분들은 많은 호의를 베풀어 주셨다.